주유소마다 기름을 넣으려는 차량 행렬이 1.6km나 늘어선 곳이 있다. 이곳은 아이러니하게도 OPEC 회원국 중 석유 매장량 1위인 베네수엘라다.
미국 우주기술 업체인 맥사 테크놀로지스는 마라카이보 상공을 지나는 위성이 주유소 앞에 1마일(1.6km)이나 줄지어 선 자동차 사진을 촬영했다고 16일(현지시간) 밝혔다. 이후 AP통신은 베네수엘라 제2 도시인 마라카이보에서 긴 차량 행렬이 여러 주유소 앞에서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고 1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미국의 제재로 인한 주유 대란은 최근 며칠 사이 수도 카라카스에서도 서서히 나타나는 등 베네수엘라를 덮치고 있다.
차에 기름을 넣기 위한 긴 기다림에 지친 베네수엘라 시민들의 불만이 터져 나왔다. 일부 운전자들은 거의 24시간을 기다렸다고 말했다. 트럭 짐칸이나 승용차 위에서 쪽잠을 청하며 한없이 기다려야 하는 풍경이 나타났다.
현지 전염병 담당 의사인 욜리 우르다네타는 주유 줄을 서는 바람에 교대 근무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우르다네타는 "휘발유를 넣으려고 4일간 안간힘을 썼지만 결국 주유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한편 운전자들은 이 상황을 경찰이 이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차량 줄을 감독하는 경찰관들이 일부 운전자들에게서 3.60달러(베네수엘라 월 최저임금의 절반이 넘는 금액)씩을 받고 이들을 더 짧은 줄로 안내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경찰관들의 제안을 받아들여 새치기한 호세 유스타키오(65)는 "나는 너무 늙어서 도저히 이 긴 줄에서 더 기다릴 수가 없었다. 기분은 나쁘지만 빨리 여기서 벗어나고 싶어서 그랬다"고 말했다.
미국 마이애미에 본사를 둔 증권회사인 카라카스 캐피털 마켓의 러스 댈런 파트너는 미국의 강력한 제재가 베네수엘라를 강타하기 시작했다고 분석했다. 댈런은 베네수엘라 정부가 석유 생산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희석제 등과 같은 핵심 물질을 수입할 현금이 없다고 지적하며 국영 석유 기업 PDVSA가 총 생산능력 중 10∼15%만 생산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했다.
베네수엘라산 원유의 상당량은 타르와 같은 중질유다. 중유를 희석하기 위한 희석제를 수입할 돈이 부족해지자 중유를 희석하지 못한 채 160㎞ 떨어진 정유시설로 옮겨야만 하는 상황이다.
앞서 미국은 임시 대통령을 자처한 뒤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 축출을 추진한 후안과이도 의장에게 힘을 실어주려고 지난 1월 자국의 관할권이 미치는 지역에서 마두로 정권의 돈줄인 PDVSA의 자산을 동결하고 미국인과의 거래를 금지하는 등 경제제재 조치를 발표한 바 있다. 또 PDVSA의 미국 내 정유 자회사인 시트고가 수익을 마두로 정권에 송금하는 것도 금지했다. 미국은 시트고 송금 제재로 올해 약 110억 달러 규모의 수익금이 마두로 정권에 전달되지 못할 것으로 추계했다.
김경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