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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 퍼레이드 참가? 거 참" 6월1일이 두려운 민주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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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인싸’는 국회 안(inside)에서 발생한 각종 이슈와 쏟아지는 법안들을 중앙일보 정치팀 2030 기자들의 시각으로 정리합니다. ‘여의도 인싸’와 함께 ‘정치 아싸’에서 탈출하세요.

지난 13일 SNS에 올라온 더불어민주당 서울 퀴어 퍼레이드 참여단 모집 공고 [트위터 캡쳐]

지난 13일 SNS에 올라온 더불어민주당 서울 퀴어 퍼레이드 참여단 모집 공고 [트위터 캡쳐]

“2019 서울 ‘퀴퍼’에서 민주당 깃발을 휘날리자!”

[여의도 인싸]

지난 13일 ‘더불어민주당 서울 퀴어 퍼레이드 참여단’이란 트위터 계정에 올라온 글입니다. ‘퀴퍼’는 퀴어(queer, 게이ㆍ레즈비언ㆍ트랜스젠더ㆍ양성애자 등 성 소수자를 일컫는 용어) 퍼레이드의 준말입니다. 이 게시글은 6월1일 열리는 서울 퀴어 퍼레이드에 참여할 민주당 당원을 모집한다는 내용입니다.

퀴어 퍼레이드는 21일부터 6월9일까지 열리는 서울 퀴어 문화 축제(이하 문화 축제)의 행사 중 하나입니다. 문화 축제는 올해로 20년째를 맞는 나름 유서 깊은 행사입니다. 첫 행사가 열렸던 2000년엔 50여명만 참여했지만, 지난해엔 5만명 이상(주최 측 추산)이 몰릴 정도로 규모가 커졌습니다. 문화 축제 동안 서울 곳곳에서 다양한 행사가 열립니다. 그중에서도 단연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는 건 퀴어 퍼레이드입니다. 서울 한복판인 서울 광장에서 퍼레이드가 진행되는 데다, 일부 참여자들의 의상을 놓고 선정성 시비에 휘말린 적도 여러 번 입니다. 가장 논쟁적인 행사란 얘기죠.

작년 7월 14일 오후 성(性)소수자 축제 '서울퀴어퍼레이드' 참가자들이 서울광장에서 종각 방향으로 행진하고 있다. [연합뉴스]

작년 7월 14일 오후 성(性)소수자 축제 '서울퀴어퍼레이드' 참가자들이 서울광장에서 종각 방향으로 행진하고 있다. [연합뉴스]

트위터에 퀴퍼 참여 독려 게시글을 올리는 등 이번 모임을 주도하는 민주당 대학생 당원 김민석(23)씨는 “당내에도 성 소수자를 지지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자는 취지에서 글을 올렸다”고 합니다. 실제로 당의 공식 행사는 아니지만, 민주당원의 이름을 걸고 성 소수자 이슈에 목소리를 낸 보기 드문 경우입니다.

하지만 민주당은 어떤 입장일까요.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성 소수자 인권을 차별해선 안 되지만, 축제에 사람을 모집해서 행진하는 건 아닌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이렇다저렇다 말은 못 한 채 속앓이하는 건데요. 민주당이 조심스러운 건 동성애에 대한 국민 정서가 아직 닫혀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7월 청와대 국민 청원 게시판에 ‘서울 시청 앞 퀴어 축제를 막아달라’는 요청이 올라오자 20만명 이상이 동의했을 정도니까요.

문재인 대통령도 대선 후보 시절이던 2017년 2월, 한 성 평등 포럼에 참석해 연설하던 중 갑작스럽게 차별금지법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답은 없이 “나중에 말씀드릴 기회를 드리겠다”며 넘어간 적이 있습니다. 성 소수자들은 “문 후보자가 대답을 회피한 것”이라고 주장했고요. 이후 문 대통령은 두 달 뒤, JTBC의 대선 후보 토론회에서 “동성애에 반대하느냐”는 홍준표 한국당 후보의 질문에 “그렇다. 차별은 반대하지만, 합법화에 찬성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작년 7월 14일 서울 중구 남대문로 일대에서 동성애 반대를 주장하는 남성들이 '서울퀴어퍼레이드' 참가자들의 행진을 가로막고 있다. '퀴어(queer)'는 성소수자를 의미하는 영어단어로, 퀴어문화축제는 지난 2000년부터 해마다 개최되고 있다. [뉴스1]

작년 7월 14일 서울 중구 남대문로 일대에서 동성애 반대를 주장하는 남성들이 '서울퀴어퍼레이드' 참가자들의 행진을 가로막고 있다. '퀴어(queer)'는 성소수자를 의미하는 영어단어로, 퀴어문화축제는 지난 2000년부터 해마다 개최되고 있다. [뉴스1]

실제로 성 소수자 이슈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이슈입니다. 미국에서는 소위 진보냐 보수냐를 나누는 핵심 잣대 중 하나가 성 소수자 이슈를 대하는 태도이기도 하고요.

한국 정치에서도 성 소수자 이슈가 공론화될 조짐을 보입니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는 지난 17일 세종시에서 열린 한 간담회에서 퀴어 축제를 두고 “우리 사회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측면들이 수십 년째 이어지고 있다”며 공개적으로 반대 의사를 드러냈습니다. 성 소수자 문제를 공론의 장으로 끌어들이려는 의도도 읽히는데요.

독실한 기독교인인 황 대표 입장에서 이 이슈는 간명합니다. 황 대표는 “개인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동성애에 반대한다”고 선을 확 그었습니다. 주류 기독교 교리에 충실한 발언이지요. 황 대표 발언이라면 사사건건 포화를 퍼붓는 민주당이 유독 이번 ‘동성애’ 발언에 대해선 가타부타 공식 반응이 없는게 흥미롭습니다. 여론이 어떨지 ‘간’을 보는 것일까요. 이에 비해 정의당은 이정미 대표가 2016년부터 매년 축제에 참석하면서 퀴어 이슈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민주당의 조심스러운 태도에 대해 김민석씨는 “당 강령상으로는 소수자 차별 금지와 성 평등을 명시적으로 지향하면서 현실에선 유보하는 태도를 보인다”고 지적했습니다. 그가 말한 더불어민주당의 강령 11장엔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인권을 존중하고 안전을 보장하며, 어떠한 차이도 차별로 이어지지 않는 사회를 만든다”고 돼 있습니다.

민주당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어정쩡한 상태를 벗어나기 위한 치열한 내부 논쟁이 필요해 보입니다.

이우림 기자 yi.wool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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