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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가족] 습관성 유산에 우는 여성, 출산율 높이는 약물 덕에 웃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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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목받는 면역글로불린 요법 국내 상당수의 가임 여성이 난임으로 고통받고 있다. 아기를 갖고 싶은 마음이 절실하지만 임신에 성공하지 못한다. 이런 난임자 수는 이미 20만 명을 넘어섰다. 국내 난임률은 꾸준히 증가해 이제 미국의 두 배(13.2%)에 달한다. 하지만 이들을 더 힘들게 하는 것이 있다. 어렵게 임신에 성공해도 반복적으로 유산을 경험하는 ‘습관성 유산’이다. 다행히 약물로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이 제시되고 있다. 임신부의 면역 환경을 개선해 임신을 돕는 ‘면역글로불린 요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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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관성 유산은 임신 20주 이전에 연속적으로 3회 이상 자연유산이 반복되는 경우를 말한다. 전체 임신의 0.3%에 해당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산 경험 횟수가 증가할수록 확률은 높아진다. 세 번 유산하면 그다음 임신이 유산할 가능성은 30%, 네 번 유산 후엔 40~50%에 달한다.

면역학적 요인이 습관성 유산 주원인
원인은 다양하다. 염색체 이상으로 생기기도 하고 자궁 기형이나 자궁근종, 자궁내막 유착 등 해부학적 요인으로 발생하기도 한다.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원인은 바로 면역학적 요인이다. 습관성 유산을 초래하는 원인의 20~50%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체내 면역시스템이 임신 유지를 방해하기 때문이다. 마리아병원 주창우 가임력보존센터장은 “습관성 유산이 생기는 데는 다양한 원인이 있지만 주된 원인 중 하나가 바로 면역학적 요인”이라고 말했다.

습관성 유산이 생기는 과정은 이렇다. 자궁은 의외로 체내 어떤 장기보다도 면역시스템이 약한 곳이다. 태아는 임신부의 일부지만 엄밀히 말하면 절반(정자)은 외부에서 유래한 것이다. 면역체계가 이를 단순히 외부 물질로 인식하면 태아를 공격 대상으로 삼는다. 주 센터장은 “흔히 태아는 제3의 생명체라고 하는데 자궁은 우리 몸에서 ‘면역 관용’이 적용되는 곳으로 태아를 면역적으로 공격하지 않도록 설계돼 있다”며 “하지만 면역력(세포성 면역)이 과한 임신부의 경우 면역체계가 태아에 반응해 태아 성장을 억제하고 태반으로 들어가는 혈류를 방해해 유산을 초래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런 경로로 발생한 유산은 면역글로불린 요법(주사)으로 치료할 수 있다. 면역글로불린은 원래 자가면역질환 치료에 사용되는 혈액제제다. 면역력을 일부 완화해 자신을 공격하지 않게 하는 원리에 착안해 면역학적 요인에 따른 습관성 유산 치료에 적용되고 있다.

효과는 주목할 만하다. 임상 연구에 따르면 2회 이상 연속적으로 유산을 경험한 환자 중 세포성 면역 이상을 동반한 환자에게 임신 4~6주부터 30주까지 3주 간격으로 면역글로불린 제제를 체중(㎏)당 0.4g씩 투여한 결과, 출생률이 84.7%에 달했다.

면역글로불린 치료를 받지 않은 환자와 비교하면 효과는 더욱 뚜렷해진다. 반복적으로 유산한 환자에게 임신 3개월까지는 3주 간격으로 체중 당 0.4g씩, 이후 36주까지 4주 간격으로 0.2g씩 면역글로불린 제제를 투여한 결과 출산율이 96.3%로 투여하지 않은 그룹(30.6%)과 큰 차이를 보였다.

“정부 난임 치료 지원 대상에 넣어야”

반복적으로 착상에 실패하는 난임 환자에게도 효과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연구에서 이들에게 배아 이식 전 24시간 내, 임신 15일, 이후 매주 3주 간격으로 체중 당 0.4g씩 투여한 결과 임신 성공률이 93.8%에 달했다. 반면 미투여군의 임신 성공률은 26.2%에 그쳤다.

면역글로불린 요법은 면역학적 요인으로 인한 습관성 유산의 사실상 유일한 치료법이다. 주 센터장은 “면역 문제로 유산이 반복되는 경우 ‘백혈구 면역법’이라는 치료도 있지만 이는 면역글로불린 요법보다 환자 몸에 무리가 더 많이 가는 데다 거의 실험적으로만 쓰인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난임 치료 지원 대상에 면역글로불린 요법을 포함시킬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달 10일 난임 치료 지원 확대 방안을 담은 ‘제1차 국민건강보험 종합계획’(2019∼2023년)을 발표한 바 있다. 기존 만 44세 이하 여성에게 체외수정 시술 신선배아 4회, 동결배아 3회, 인공수정 시술 3회에 한해 건강보험을 적용하던 것을 연령 제한은 폐지하고 신선배아 7회, 동결배아 5회, 인공수정 시술 5회까지 적용 횟수를 늘리는 방안이 담겼다. 하지만 습관성 유산 치료에 대한 지원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 한국난임가족연합회 박춘선 회장은 “습관성 유산도 결국 아이를 갖기 어렵다는 점에서 넓은 범위에서는 난임”이라며 “이에 대한 지원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환자들이 원하는 것은 면역글로불린 처방 조건 완화와 본인 부담 경감이다. 현재 면역글로불린 요법은 3회 이상 자연유산 경험자에 한해 처방이 가능하고 비용은 전액 환자 부담이다. 박 회장은 “난임 치료로 임신에 성공한 사람 중에서도 습관성 유산을 경험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정부가 습관성 유산도 저출산 정책의 일환으로 접근한다면 정책의 효과가 더 커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다”고 덧붙였다.

류장훈 기자 j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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