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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간 8명 사망, 유증기 유출···허무해진 김승연 4년전 약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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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오후 충남 서산시 한화토탈 공장 내 옥외 탱크에서 유증기가 분출하고 있다. 이 사고로 직원과 지역 주민 200여명이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연합뉴스]

지난 17일 오후 충남 서산시 한화토탈 공장 내 옥외 탱크에서 유증기가 분출하고 있다. 이 사고로 직원과 지역 주민 200여명이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연합뉴스]

한화그룹이 잇따른 안전사고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올해 들어 한화 대전공장에서 폭발 사고로 직원 3명이 숨진 데 지난 17일 충남 서산시 한화토탈 공장에서 유증기 유출로 직원과 주민 200여명이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동일 공장에서 같은 사고 반복돼 #"재발 방지 마련에 최선 다하겠다" #김승연 회장 2015년 약속도 공염불 #아시아나항공 인수에도 적신호 #"그룹 차원 안전 대책 마련해야"

소방당국은 사고 발생 지점으로 스티로폼 제품을 만드는 스티렌모노머 공정 이후 남은 기름을 보관하는 탱크를 지목했다. 한화토탈 관계자는 “기름 보관 탱크 내부 유류 고체화를 막기 위해 섭씨 50도 정도를 유지하는데 이보다 온도가 상승해 원료가 유출됐다”며 “자세한 원인은 조사 중”이라고 말했다. 유출된 유증기는 석유화학 물질로 사람이 마시면 어지럼증이나 구토를 유발할 수 있다.

스티렌모노머 유증기 유출 사고로 한화토탈 직원 1명과 협력업체 직원 7명이 부상을 입고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뒤 퇴원했다. 공장 인근 마을 주민 200여명도 어지럼증과 두통을 호소하며 치료를 받았다. 환경부 등에 따르면 18일 오후 6시 기준으로 마을 주민 262명이 인근 병원 등에서 진료를 받았다. 다행히 입원 환자는 발생하지 않았다.

지난 17일 오후 1시 17분쯤 충남 서산시 한화토탈 공장 내 스틸렌 모노머 공정 대형 탱크에서 유증기가 분출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7일 오후 1시 17분쯤 충남 서산시 한화토탈 공장 내 스틸렌 모노머 공정 대형 탱크에서 유증기가 분출되고 있다. [연합뉴스]

이번 사고로 인명 피해가 발생하진 않았다. 하지만 한화그룹 내 같은 공장에서 비슷한 사고가 반복되고 있다는 점에선 한화그룹에 뼈 아픈 사고로 기록됐다. 앞서 올해 2월 직원 3명이 숨진 한화 대전공장에선 지난해 5월에도 폭발사고로 5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번에 유증기 유출 사고가 난 한화토탈 공장에서도 지난해 4월 폭발 사고가 발생했다. 폭발 사고는 사고 발생 4개월이 지나서야 뒤늦게 알려져 사고 은폐 의혹이 일기도 했다. 정의당은 “폭발 사고가 발생했음에도 관계 기관에 신고하지 않은 게 문제”라고 주장했다. 한화토탈 관계자는 “4~5초간 불이 났지만, 인명이나 재산 피해가 없어 신고하지 않았다”며 “행정 절차에 소홀했던 점은 인정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5월에는 한화케미칼 울산 2공장에서 염소가스 누출로 27명이 병원 치료를 받았다. 한화케미칼에선 지난 2015년 폐수처리 저장조에서 폭발 사고가 발생해 협력업체 직원 6명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한화그룹은 2015년 직원 사망 사고 직후 “작업자의 안전을 최우선사항으로 고려해 다시는 이와 같은 불행한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각종 안전사고가 이어지면서 사고 다발 기업이란 불명예를 안았다.

한화토탈은 유증기가 유출된 공장 가동을 멈추기로 결정했다. 한화토탈은 18일 대표이사 명의의 입장문을 통해 “전문기관으로부터 정확한 진단을 받고 재발방지대책을 마련하겠다”면서 “지역주민과 협력업체, 주변 공단에 심려를 끼쳐드린 점에 대해 머리 숙여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한화토탈 관계자는 “합동 방재센터가 스티렌모노머의 대기 중 오염도를 측정한 결과 기준치 이하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올해 2월 한화 대전공장에서 화약 폭발 사고가 발생해 직원 3명이 숨졌다. 당시 소방당국이 사고 발생 경과 등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중앙포토]

올해 2월 한화 대전공장에서 화약 폭발 사고가 발생해 직원 3명이 숨졌다. 당시 소방당국이 사고 발생 경과 등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중앙포토]

잇따른 안전사고에 대해 그룹 차원의 안전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앞서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2015년 한화케미칼에서 사망 사고가 발생하자 “이 같은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그룹의 국내외 모든 사업장에서 철저한 안전 점검과 사고 예방 노력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하지만 지난해와 올해 한화 대전공장에서 사망 사고가 반복되면서 김 회장의 약속이 공염불이 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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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대전공장 폭발 이후 한화그룹 차원에서 안전대책을 마련해 내놓기로 했지만, 아직 구체적인 계획을 내놓진 않았다. 박충화 대전대 안전방재학부 교수는 “대기업은 안전관리 전문가를 고용하고 있지만, 규모가 작은 협력업체는 안전 관리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을 수 있다”며 “그룹 차원에서 안전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지적했다.

재계에선 한화토탈 유증기 유출 등 한화그룹의 잇단 안전사고가 향후 아시아나항공 인수전에 뛰어들 경우 마이너스로 작용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안전이 무엇보다 우선인 항공사 경영에서 안전 관리가 필수 평가 항목이 될 것이란 전망이 깔려있다.

강기헌 기자 emck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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