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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은 목재 대신 철근 써 진화, 사회 뼈대는 혁신 안돼 퇴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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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6호 22면

도시와 건축

코끼리는 체중이 몇t이지만 고래는 수십t에 달한다. 대체적으로 수중 포유류 동물은 육지 포유류 동물보다 덩치가 훨씬 크다. 과학자들은 그 이유가 차가운 바닷물에서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신진대사가 많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 몸집이 커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래서 가장 큰 수중 포유류는 가장 큰 육지 포유류보다 체중이 25배 정도 크다.

소뼈가 닭뼈보다 더 단단하듯 #철근콘크리트 생겨 빌딩 건축 #기술발전으로 시공간 제약 줄며 #가족·교육 등 사회 뼈대 흔들려 #저출산은 20세기 가치 붕괴 현상 #100세 시대 맞는 사고 혁신 필요

여기에 구조적인 이유가 추가된다. 길이가 두 배가 늘어나면 체적은 8배가 늘어나서 체중은 8배가 된다. 늘어나는 무게는 오롯이 뼈가 지탱을 해야 한다. 그렇다고 뼈의 단면적이 8배가 될 수는 없다. 단면적은 면적이기 때문에 4배만 늘어난다. 그래서 동물은 몸집이 커질수록 뼈가 단단해져야 한다. 우리는 몸집이 작은 닭뼈는 씹어 먹을 수 있지만 몸집이 큰 소뼈는 씹어 먹지 못한다. 뼈의 밀도가 늘어나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육지동물의 몸집은 무한대로 커지기 힘들다. 반면 바다 속에서 살면 늘어나는 체중을 물의 부력으로 감당할 수 있다. 그래서 고래는 코끼리보다 몸집이 수십 배 큰 것이다.

길이가 늘어나면서 뼈대의 단면에 가해지는 스트레스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는 문제를 심각하게 느끼는 분야는 건축이다. 건물의 높이가 늘어날수록 기둥의 단면이 견뎌야하는 무게는 급격하게 늘어난다.

목재로는 최대 5층 건축만 가능

[일러스트=이정권 gaga@joongang.co.kr]

[일러스트=이정권 gaga@joongang.co.kr]

우리나라는 과거 건축에서 목재를 주재료로 사용했다. 목재는 단위면적당 견디는 힘의 강도가 낮기 때문에 건물을 높이 짓기 어렵다. 일본의 경우를 보면 목구조로 지은 건축물은 5층 정도가 최대치인 것 같다. 5층보다 높은 건축을 하려면 기둥단면의 단위면적당 받아낼 수 있는 무게가 목재보다 큰 재료가 쓰여야한다. 철이나 콘크리트는 목재보다 단위면적당 압축력을 받아내는 힘이 크다. 철근 콘크리트 기둥이 나오고 나서야 수십 층 높이의 건축물이 가능해졌다.

이처럼 동물의 몸집의 크기나 건물의 높이는 구조체의 강도에 의해서 결정이 난다. 우리의 사회도 마찬가지다. 한 사회의 규모가 커질수록 그 사회를 받치는 뼈대가 튼튼해져야 한다. 수십 명의 원시사회가 수백 명 규모의 사회가 될 수 있었던 데는 원시종교의 역할이 컸다. 현재 거대한 인간사회를 구조적으로 지탱하는 여러 가지 뼈대가 있다. 가족, 민족, 애국심, 국가, 교육, 연금제도 등이 그러한 뼈대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그 뼈대가 붕괴되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

2018년 대한민국의 출산율은 0.98로 세계 최저치다. 인구학자들과 정부는 사태를 심각하게 생각하고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2019년에만 23조의 예산을 책정했다. 저출산이라는 현상이 생겨난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근본적인 이유가 기술발전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사회조직은 각종 사회시스템이 발전하면서 커져왔다. 최초에는 종교가 그 역할을 했다. 유발 하라리 교수에 따르면 사피엔스는 공통의 이야기를 믿으면서 조직이 커질 수 있었다고 한다. 시간이 지나서 ‘민족’ 이나 ‘국가’ 개념이 집단을 더 크게 만들었다. 20세기에 들어서 ‘이데올로기’라는 민족국가의 국경을 넘는 개념이 생겼다. 집단은 점차로 커져왔다. 이렇게 만들어진 조직들은 멀리 떨어져 있으면 문제가 안된다.

그런데 교통수단이 점점 발달하면서 각각 집단의 공간이 확장되면서 서로의 공간이 겹쳐지게 됐다.

이 교집합에서 융합의 발전도 있지만 반대로 갈등도 생겨난다. 종교는 과거 집단의 크기를 키워서 집단내부의 분쟁을 줄이고 안전을 보장해주었다. 그런데 시간거리가 줄면서 서로 다른 종교집단의 교집합이 생겼다. 그 중복지역에서 십자군 전쟁이 발생했다.

우리의 경우 대륙에서 온 사회주의와 바다에서 온 자유주의 두 가지 이데올로기가 충돌한 한국전쟁이라는 역사가 있다. 이처럼 인류사의 큰 변화나 갈등은 기존의 사회유지 시스템이 기술발전으로 인한 시공간의 변화와 충돌했을 때 일어난다. 조직은 커지고 시공간은 축소가 될 때 기존의 사회를 받치는 시스템은 붕괴되고 새로운 가치 시스템으로 교체된다.

기술 발달로 세계는 하나로 연결되면서 지구사회로 커졌다. 그런데 가치 시스템은 20세기에 머물러 있다. 닭의 몸집에서 가로, 세로, 높이가 각각 두 배가 늘어나 체적이 8배가 되면 닭뼈가 부러지듯이, 현재 우리 사회시스템이 붕괴가 되어가고 있다. 그러한 현상이 지금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저출산, 가족의 붕괴, 난민의 대규모 인구이동, 브렉시트, 트럼프의 당선이다. 우리는 지금 뼈대가 부러지고 있는 상황을 보고 있다.

가족제도는 과거에 농업생산 공동체를 구성하는 최소단위로 작동했다. 효도와 부모공경은 노후대책 시스템이었다. 근대에 도시로 이사를 오면서 더 이상 농사를 짓지 않는다. 그래서 가족은 애정공동체로 재정립이 됐다. 그 많은 연애소설과 드라마, 영화는 그런 개념을 공고히 하는 데 사용되었다. 20세기 후반에 어느 누구도 노동력을 위한 아이를 낳기 위해서 결혼을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대신 결혼은 사랑의 완성이라고 생각한다. 효도는 연금제도가 대체했다. 그런데 수명이 길어지고 집값과 교육비는 비싸지고 교통수단의 발달로 갈 수 있는 곳이 늘어나면서 결혼이 장애로 느껴지기 시작된 것이다. 리차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적인 시각에서 본다면 내 수명이 길어지니 내가 죽고 난 다음에 유전자를 남기는 방식이라는 의미의 자식의 가치도 줄어들었다.

SNS의 발달로 현대인의 문화적인 현상도 바뀌어가고 있다. 80년대 이후에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는 전화보다는 문자를 더 편하게 생각한다. 이들은 배달음식도 전화주문보다 스마트폰 스크린을 통한 앱을 선호한다. 사람을 대면하는 경험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 그렇다고 이들의 원초적 욕구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촉각이라는 감각이 있다. 무엇인가를 만지고 만져져야만 한다. 현대인은 사람은 적게 만나고 만지는 모든 물건은 매끄럽다. 우리가 가장 많이 만지는 스마트폰 스크린은 차가운 유리재질이며 아주 매끄럽다. 그렇다보니 따뜻하고 거친 질감을 가지는 무언가가 필요하다. 그래서 따뜻하고 거친 털이 있는 애완동물을 과거보다 더 많이 찾는 것이다. 혼자 살수록 더욱 만질 대상이 필요하다. 반려동물 시장은 점점 커지고 있는데 이는 출산율 및 혼인율과 반비례한다. 저출산은 기술혁명이 만들어낸 현상이기 때문에 정부가 얼마간의 보조금을 준다고 해서 절대로 해결되지 않는다.

닭의 몸집 8배 되면 닭뼈 부러져

그렇다면 저출산은 정말로 문제일까. 재레드 다이아몬드 같은 세계적인 석학은 저출산은 재앙이 아니라 축복이라고 말한다. 미래의 자원부족문제에 저출산이 답일 수 있다는 것이다. 저출산을 문제라고 하는 논거는 대부분 연금제도와 소비시장의 붕괴를 이유로 든다. 이는 농경사회때 자식을 노후대책으로 보던 시각과 마찬가지로 근대에 와서 젊은이를 연금제도를 받치는 피라미드의 하부구조로 보기 때문이다. 그런 근대적인 시각으로 저출산을 보는 것을 탈피해야 한다.

몸집이 너무 커져서 뼈가 부러지면 새로운 재료의 뼈대가 필요하다. 10층짜리 건물을 지으려면 목재가 아닌 철근콘크리트 기둥을 써야 한다. 목재에서 철근 콘크리트로 바뀌는 정도의 사고의 혁명이 필요하다. 특히 철학적 종교적 개념의 혁신이 필요하다. 존엄사같은 민감한 사안들도 허심탄회하게 말할 수 있는 사회분위기부터 조성될 필요가 있다.

100세 시대에 맞는 결혼의 새로운 제도와 정의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퇴직 후 40년을 사는 60세 정년퇴직도 바뀌어야 한다. 정보흐름의 비용이 ‘0’(제로)가 되는 수퍼플루이드 사회가 되면 디지털에 근간을 둔 새로운 화폐시스템과 공간시스템이 나온다. 그런 미래에 현재의 사회시스템이 맞는 것인지 지금부터 생각해보지 않으면 사회가 붕괴되는 모습만 안타깝게 지켜보게 될지도 모른다. 이미 시작되었다.

유현준 홍익대 건축학과 교수
하버드·MIT에서 건축 공부를 했다. 세계적인 건축가 리처드 마이어 사무소에서 실무를 익혔다. 젊은 건축가상 등을 수상했고 『어디서 살 것인가』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등 저술활동도 활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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