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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 - 음악] 쇼스타코비치, 패르트 그리고 삶의 현실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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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6호 31면

오희숙 서울대 음대 작곡과 교수

오희숙 서울대 음대 작곡과 교수

“음악이 삶과 너무나 동떨어진 듯하면서도 동시에 삶에 밀착되어 있다는 기묘한 현상”에 주목한 철학자는 루카치다. 그는 음악이 현실을 ‘반영’하는 예술이라고 강조한 마르크스주의자였지만, “그 어떤 매개 과정도 거치지 않고 극히 주관적이고 내면적인 인간 본성을 표현”하는 음악의 고유성을 존중하였다. 교조적인 사회주의 리얼리즘에서 벗어나 인간의 감정을 드러내면서도 음악이 현실을 반영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 점이 루카치 미학의 매력인 것이다.

행사도 많은 5월,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두 음악회는 이런 루카치의 미학을 다시 떠올리게 하였다. ‘시대의 소음. 책으로 듣는 쇼스타코비치’라는 주제로 열린 콘서트(5월 8일)에서는 쇼스타코비치(1906~1975)의 ‘교향곡 5번’이 연주되었다. 쇼스타코비치를 소재로 한 줄리언 반스의 소설 『시대의 소음』을 연계시켜 스토리텔링을 시도한 음악회였다. 코리안쳄버오케스트라의 정기공연(5월 14일)에서는 에스토니아 출신의 작곡가 패르트(1935~)의 ‘프라트래스’(1977)가 연주되었다. 이 두 작품에서 20세기 소련의 정치적 격변기를 경험한 작곡가가 그린 사회를 느낄 수 있었고, 개성적인 예술성으로 ‘삶의 현실’이 사뭇 다르게 표현된 점이 인상적이었다.

책으로 듣는 쇼스타코비치 음악회 포스터. [예술의 전당 홈페이지 캡처]

책으로 듣는 쇼스타코비치 음악회 포스터. [예술의 전당 홈페이지 캡처]

20세기 소련의 대표적 작곡가로서 성공 가도를 달리던 쇼스타코비치는 오페라 ‘레이디 멕베스 므젠스키’(1934)를 계기로 운명이 바뀌었다. 1936년 1월 공연에 방문했던 스탈린이 중간에서 자리를 뜬 이후, 정부 기관지 ‘프라우다’에는 이 오페라를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글이 실린 것이다. 당시 소련은 사회적 리얼리즘 노선에 벗어난 많은 예술가들을 탄압하였고, 쇼스타코비치 역시 신변의 위협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때 그는 “정당한 비판에 대한 한 소비에트 예술가의 창조적인 응답”으로서 ‘교향곡 5번’(1937)을 발표하며 소련의 애국적 영웅으로 부상하게 된다. 때문에 ‘교향곡 5번’은 시대에 순응한 예술이며, 그는 ‘정권의 충직한 신하이자 아들’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하지만 동시에 작품 내면에 숨겨진 특징을 토대로 ‘압제 받는 예술가이자 비밀 저항자’로 조명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상반된 평가가 보여주듯 이 교향곡은 정치적 격변기 속의 작곡가 개인의 고뇌가 담긴 음악이라 할 수 있다.

반면 소련의 지배 속의 척박한 환경에서 성장한 패르트는 서구의 아방가르드적 현대음악으로 창작 활동을 시작했지만, 곧 방향전환을 하여 자신의 고유한 정체성을 종교성과 영성에서 찾았다. 그의 음악은 단순한 소리와 화음의 반복, 지속을 통해 영적인 세계를 구현하며 침묵을 대거 활용한다. ‘종소리 양식’이라고 불리는 그의 음악은 코리안쳄버가 연주했던 ‘프라트레스’에서 잘 느낄 수 있었다. 잔잔히 반복되는 파도의 너울이 연상되는 이 곡은 “하나의 음이 아름답게 연주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패르트 미학, 그리고 험난한 현실을 정신세계로 승화시키고자 했던 예술적 의지를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두 연주를 들으며 루카치의 이야기를 곱씹어 보았다. 그는 말했다. 음악이라는 “미메시스적 구성물 속에서 삶의 진실이 부단히 간직될 뿐만 아니라, 삶 자체에서는 어쩔 수 없이 가로막히기 마련인 온전한 실현 가능성을 얻게 된다.”

오희숙 서울대 음대 작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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