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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당신들의 천국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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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6호 31면

이에스더 복지행정팀 기자

이에스더 복지행정팀 기자

그 섬에서 분홍색은 절망의 색깔이었다. 섬사람 누구나 분홍색과 분홍색을 띤 벚꽃을 저주했다. 병이 처음 모습을 드러낼 때, 얼굴 주변에 벚꽃의 분홍색 반점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섬사람 누구나 절망스러운 분홍색을 경험했다.

이청준 작가는 소설 『당신들의 천국』에서 소록도와 그 섬에 사는 한센병 환자들의 상처를 이렇게 묘사했다. 한센병은 한센간균 감염으로 발병하는 질환이다. 완치할 수 있고, 일상 접촉이나 수직 감염으로 전파되는 병이 아닌데도 불치의 유전병이란 오해와 편견이 오래갔다. 한센인과 그 가족들은 멸시와 차별의 대상이 됐다. 소록도에서 생을 마감한 한센인은 1만1000명이 넘는다. 1950~1970년대 ‘단종(斷種)’ 조치라는 이름으로 국가가 강제 낙태·정관 수술에 나서기도 했다. 2017년 대법원은 이런 비극을 겪은 한센인 19명에게 국가가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저도 아이를 낳아 기르고 싶었죠. 하지만 여기서 살려면 규칙상 낙태를 할 수밖에 없었어요. 남편은 정관수술을 당했어요.” 소록도에서 평생을 보낸 A씨는 다 자란 아이를 강제 낙태로 잃은 경험을 이렇게 털어놨다.

소록도에는 낙태를 피해 극적으로 태어난 아이들도 있었다. 아이들은 출생 직후 감염을 막기 위해 부모와 생이별당했다. 아이들은 보육소에 격리됐다가 한 달에 한 번 부모를 만났다. 멀리 떨어져 2~3분, 그나마도 감염될까 걱정한 부모들은 바람을 안고, 아이들은 바람을 등지고 섰다. 그날은 섬 전체가 눈물바다가 됐다. 화사하게 피어나는 벚꽃에 가슴이 선득해지는 소록도 사람들의 아픔은, 소설이 아닌 현실이다.

엊그제 김현아 자유한국당 의원이 한센병 환자에 빗대 대통령을 비판했다. 그는 “상처가 났는데도 고통을 느끼지 못한 채 방치해 상처가 더 커지는 병이 한센병이다. 문 대통령이 본인과 생각이 다른 국민의 고통을 못 느낀다면 이를 지칭해 의학 용어를 쓸 수 있다”고 했다. 이정미 정의당 의원이 황교안 한국당 대표를 ‘사이코패스’라 표현하자 응수한 것이다. 당 대표를 향한 막말을 받아치자고, 비난의 소재로 사회적 약자를 이용하는 건 어린아이도 하지 않을 일이다. 김 의원은 여론의 몰매가 쏟아지자 하루 만에 한센병 환자와 가족들에게 사과했다. 그런다고 상처 입은 사람들 마음이 달래질까 싶다. 달창과 사이코패스, 한센병. 막말이 막말을 낳는 당신들의 천국을 국민은 언제까지 지켜봐야 하나.

이에스더 복지행정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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