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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세 캔버스 수행자 박서보 “내 모든 걸 발가벗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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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박서보 화백은 ’예술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시대를 꿰뚫어보는 통찰력과 식을 줄 모르는 열정"이라고 말했다. 서울 연희동 작가의 스튜디오에서 촬영했다. [강정현 기자]

박서보 화백은 ’예술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시대를 꿰뚫어보는 통찰력과 식을 줄 모르는 열정"이라고 말했다. 서울 연희동 작가의 스튜디오에서 촬영했다. [강정현 기자]

색채가 두드러지는 후기 묘법 시기의 작품들이 걸린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전시장 .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색채가 두드러지는 후기 묘법 시기의 작품들이 걸린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전시장 .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혹시라도 이번 전시 개막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을까 봐 가슴을 졸였습니다. 제발 개막만은 보고 떠나게 해달라고 맘으로 빌었죠.”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 박서보(88) 화백은 서울 삼청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개막하는 자신의 회고전을 앞두고 조마조마했던 심정을 이렇게 털어놨다. 그는 “언젠가 떠난다는 것은 분명한 일이다. 분당에 내가 묻힐 자리도 다 준비해 놨다”며 “내 비석에 쓸 말도 정해놨다. ‘변하지 않으면 추락한다. 그러나 변해도 추락한다’고 새겨넣을 것”이라고 했다. ‘삶을 통찰하며 앞으로 계속 나가야 한다’는 그의 신념이 담긴 글이다.

한국 추상화 개척자 대형 회고전 #화업 70년 망라한 160여점 나와 #“비우고, 또 비우니 나를 찾게 돼” #패배자·낙오자 쏟아내는 21세기 #“그림은 사람들 고통 빨아들여야”

박 화백의 70년 화업을 조명하는 대규모 회고전 ‘박서보-지칠 줄 모르는 수행자’가 오는 18일 개막해 9월 1일까지 열린다. 16일 오전 기자들과 만난 그는 “1991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전시 이후 28년 만에 여는 회고전”이라며 “지금 내가 발가벗고 서 있는 것 같다. 이번 전시야말로 내 모든 것, 숨겨두고 싶은 것까지 다 드러내는 자리”라고 말했다.

이번 전시는 구순을 앞둔 작가의 회고전이지만, 화려했던 과거에 방점을 찍는 데 머물지 않는다. 2000년대 이후 시도한 새로운 변화를 풍부하게 보여주고, 올해 작업한 신작까지 총 160여 점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 묵직함이 남다르다. 자신을 스스로 ‘독종’이라는 작가가 도도하게 전진해온 여정이다.

2019년 완성한 박서보 화백의 신작. 연필묘법과 색채묘법을 결합한 작품이다.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2019년 완성한 박서보 화백의 신작. 연필묘법과 색채묘법을 결합한 작품이다.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전시장에서 그는 지난 4개월 동안 완성했다는 신작 2점을 가리키며 “수신(修身)과 치유를 동시에 잡은 그림들이다. 이 작품은 1000만 달러를 줘도 팔지 않겠다”고 했다.

박 화백은 평생 ‘묘법(描法)’ 연작을 통해 독보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해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묘법이란 그린 것처럼 긋는 방법으로, 그는 캔버스에 유백색의 밑칠을 하고 채 마르기 전에 연필로 수없이 반복되는 선을 그어가는 방법으로 작업했다.

"묘법은 도 닦듯이 하는 작업이에요.  화폭에 내 생각을 담는 게 아니라, 나를 비우고 또 비워내는 겁니다. 그 과정이 일종의 수행입니다. 엇비슷해 보이는 묘법 안에서도 저는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해 왔다고 단언합니다. "

아들의 서툰 글쓰기에서 영감을 받아 시작된 묘법 연작에 대해 박서보 화백이 설명하고 있다.[사진 이은주]

아들의 서툰 글쓰기에서 영감을 받아 시작된 묘법 연작에 대해 박서보 화백이 설명하고 있다.[사진 이은주]

묘법이 세 살짜리 아들의 서툰 글쓰기에서 시작됐다고요.
“1966년 12월 교수로 재직하던 홍익대에 사직서를 제출하고 쉬던 시기에 시작했죠. 나는 그동안 무엇을 했나, 한국적인 회화는 무엇인가를 고민하며 나를 매질하던 시절이었어요. 그러다가 정말 내 작품을 하려면 나를 완전히 비워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고, 캔버스가 내게 수신, 수행을 위한 도구가 돼야 한다는 생각에 이르렀죠.”
아들의 글쓰기는 어떤 영감을 주었나요.
“비워야 한다는 것을 이론으로는 이것을 깨달았지만, 그것을 어떻게 작품으로 표현할지 확신할 수 없었어요. 그런데 당시 세 살이었던 둘째 아들이 형의 책상 위에 놓인 공책에 글 쓰는 것을 보았죠. 칸 안에 글씨를 넣지는 못하고 책장이 구겨지고 찢어질 때까지 애쓰며 반복적으로 그리고 지우고 있더라고요. 이것을 보다가 ‘바로 이거다’ 싶었죠.”  그 후로 그는 "연필을 가지고 나를 비워나가는 일을 반복했다"고 했다.  반복적인 그리기와 지우기의 행동이 하나의 명상과 같은 작업, 즉 수행이 될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박서보, '묘법 no.01-77'(1977, 르몽드 지에 연필과 유채).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박서보, '묘법 no.01-77'(1977, 르몽드 지에 연필과 유채).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묘법, 수행의 과정  

조앤 기 미시간 주립대 교수는 "한국 미술계에서 박서보의 위상은 회화적 프로젝트가 보여준 순수한 야심에서 비롯됐다"며 "회화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해 박서보가 찾은 해답은 끊임없이 자기를 쇄신하는 매체이자, 고유한 생명력을 지닌 하나의 실체로서 회화를 주장하는 것이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그는 “나는 변화하려면 4~5년은 걸리는 사람”이라며 “남들에게 내놓기 전에 혼자서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 1971년 불시에 우리 집에 찾아온 이우환 작가에 들켜버리고 말았다. 이우환 작가가 내 작품을 보고 일본 전시를 제안하며 세상에 공개하게 됐다”고 말했다.

‘연필 묘법’ 후에는 1982년 닥종이를 재료로 사용해 한지를 발라 마르기 전에 긁고 밀어붙이며 ‘지그재그 묘법’ 시작됐고, 1990년대 중반부터는 막대기나 자와 같은 도구로 화폭에 고랑처럼 파인 면들이 만들어졌다.  조앤 기 교수가 말하는 '화면의 촉각성'이다.

기 교수는 "화면의 촉각성이 관람자를 화면으로 다가오게 하며 심지어 관람자의 신체와 교감할 수 있는 대상이 된다"고 풀이했다.  무채색이던 그의 화폭에 깊고 오묘한 색감이 들어선 것은 2000년 이후에 생긴 변화다.

수행에서 치유로 

21세기를 앞두고 큰 위기를 겪었다고 하셨는데요.
“2000년을 앞두고 세상을 살아갈 자신이 없어졌어요. 그때까지 70평생을 아날로그와 함께 살아왔는데 21세기 디지털 시대를 앞두고 겁이 나더라고요. 아날로그의 성공을 유지하려면 차라리 지금 죽어버리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죠. 그러다가 오기가 생겨서 끝까지 해보자, 시대를 제대로 읽어보자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럼 21세기는 20세기와 어떻게 다른가요.
“그림이 이미지 폭력이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21세기 디지털 시대는 한마디로 스트레스 병동입니다. 사회 급격한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사람들은 소위 패배자, 실패자, 부적응자가 되죠.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묻지마 살인’ 등은 지구가 스트레스 병동화돼 일어나는 일들이에요.  저는 그림이 사람들의 스트레스를 흡수하는 도구가 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의 분노와 고통은 흡인지처럼 빨아들이고 편안함과 행복의 감정만을 남겨야 해요. 그게 내가 생각하는 예술입니다. ”
박서보 화백의 후기 묘법 시기의 작품. 2007~2009년에 완성한 세 작품이다. [사진 이은주 기자]

박서보 화백의 후기 묘법 시기의 작품. 2007~2009년에 완성한 세 작품이다. [사진 이은주 기자]

자연에서 배운 '치유의 색'

그는 “예술이 그 시대의 산물인데 시대와 무관한 것은 옳지 않다”며 “나는 내 그림을 보는 사람들이 작품을 통해 치유될 수 있기를 바란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작품에 색을 쓰기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그가 말하는 ‘치유의 색’이다. 그는 "나는 색깔 자체의 힘을 믿는다"면서 "자연의 아름다움과 어우러진 경험을 통해 색은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치유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홍익대 재직 시절 학생들에게 ‘교수를 닮지 마라’고 강조한 이야기가 유명합니다.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교수를 닮으려 노력해도 안 되고, 학생들끼리 서로 닮으려 해서도 안 됩니다. 지식 안에 갇혀서도 안 되고요. 책을 많이 읽되, 읽고 나면 모두 잊어야 해요. 천재라는 소리를 듣기 위해 남의 것을 도둑질하면 무엇합니까. 우리는 각자 자기만의 공식을 만들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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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작업한 묘법 작품 앞에 자리한 박서보 화백. 하지의 물성과 작가의 자유로운 손놀림이 어우러진 지그재그 묘법 대표작이다. [사진 이은주 기자]

1987년 작업한 묘법 작품 앞에 자리한 박서보 화백. 하지의 물성과 작가의 자유로운 손놀림이 어우러진 지그재그 묘법 대표작이다. [사진 이은주 기자]

이은주 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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