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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일본에서 본 韓日 일자리…고용의 질과 양, 극과 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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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출장차 방문한 일본에서 한·일 일자리 시장의 온도 차를 뚜렷이 느꼈다. 도쿄 지하철 광고엔 경력단절 여성 재취업 정보가 수두룩하고 내년 올림픽을 앞두고 경비원·미화원을 모집하는 전단도 심심찮게 보였다. 외국인에도 일자리는 열려 있었다. 방글라데시·베트남 아르바이트생이 편의점 계산원을 맡고 우버이츠(음식 배달서비스) 배달원은 상당수가 외국인이다.

일자리 호황은 통계로도 증명된다. 일본의 3월 완전실업률(계절 조정치)은 2.5%로 20여년 만에 최저다. 완전실업자(일할 의사가 있지만, 주중 1시간의 유급노동도 하지 못한 이)는 174만명으로 인구의 1.4%다. 지난 15일 한국이 역대 최대 실업자(4월 125만명)에 19년 만에 최악의 실업률 성적표를 내놓은 것과 대조된다.

 고수입 일자리와 오래 가는 일자리를 소개한 무료 주간지 타운 워크[서유진 기자]

고수입 일자리와 오래 가는 일자리를 소개한 무료 주간지 타운 워크[서유진 기자]

질적으로 봐도 일본은 업무선택 폭이 넓고 일·가정 양립 가능한 일자리가 많았다. 리크루트에서 발행하는 취업정보 주간지 '타운 워크'(무료)를 보면 '장기근속', '고연봉 업무', '학생환영' 등 선택지가 다양했다. 지역별 분류는 물론, 건축·제조·청소·영업 및 판매·물류·경비·미용·간호까지 망라돼 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일자리를 보려면 '고용의 질'을 가르는 변수 6가지를 봐야 한다. 6가지는 근무여건·고용 안정성·임금과 복리후생·교육훈련·고용 평등·공정한 갈등해결 시스템(월간노동리뷰, 김정우 한국노동연구원 전문위원)이다.

우선 직원을 고려한 근무여건이다. 광고회사 '에이블'은 "육아도 일도 양립 가능"을 내세운다. 근무시간은 10시~18시, 10시~17시(실제 근무 6시간) 두 종류다. 퇴근을 1시간을 앞당기면 아이 등·하원을 부모가 할 수 있다. 훗날 자녀가 크면 근무시간을 늘리면 된다. 연간 휴일은 127일(2018년 기준)이다.

근무 안정성을 강조하려고 “직원 평균 근속연수가 10년 이상이고, 이직자가 드물다”며 함께 일하자고 어필하는 회사가 많다. '창업 73년 기업실적이 호조인 안정된 기업', '20~50대까지 직장 정착률이 발군' 등의 카피도 눈에 띈다.

임금도 작지 않다. 도쿄에 점포를 11개 운영하는 초밥 체인 '스시잔마이'는 셰프 입사 7년 차(34세)에 연봉 730만엔(7300만원), 홀에서 접객 업무를 하는 입사 5년 차 매니저(35세)는 연봉 650만엔이라 소개했다. 교통비·통신비·가족수당·입사축하금(10만엔) 및 자녀입학 축하금을 주는 곳도 있다. 사원 기숙사를 제공해 사회초년생의 거주 문제도 해결한다.

교육 훈련도 확실하다. 상업시설에 에어컨을 설치하는 '보이스'라는 기업은 "한평생 가져갈 기술을 우리 회사에서 손에 넣으라"고 소개한다. 장비반입·청소에서 시작해 전문 인력이 되기까지 회사가 가르친다. 발전소 압력용기를 만드는 아소(麻生)철공소는 "기계만으로 안 되는 수작업을 83년간 해왔다"며 "우리 기술을 계승해달라"는 글을 남겼다. 이토(伊藤)방수공사는 "일을 배운 뒤 독립해 회사 차려도 오케이"라고 했다. 자격증 획득비용을 전액 지원하는 곳도 있다.

고용 평등도 개선 중이다. 미경험자 환영은 기본, 나이·성별·인종 '불문'인 곳도 많다. 면접 시 이력서도 안 보는 곳도 있다.

청년 실업률이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는다. 신용 팽창으로 지탱해온 금융 경제가 붕괴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중앙포토]

청년 실업률이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는다. 신용 팽창으로 지탱해온 금융 경제가 붕괴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중앙포토]

이런 일자리 호황 속엔 일본 정부의 노력이 있었다는 게 현지의 평가다. 2000년대부터 각종 규제를 없애고 노동 유연성을 높인 일본은 아베 신조 정권 들어 법인세율을 낮추고 엔저(엔화가치 하락)를 유도해 기업이 생산성을 높이고, 비용 부담을 줄이도록 도왔다. 여유가 생긴 기업들이 앞다퉈 채용을 늘리고 있다는 것이다.

적절한 일자리 정책은 국가 경제도 바꾼다. 일본 전문가인 이지평 LG경제연구원 자문역은 "일본이 불황의 고리를 벗어난 이유 중 하나가 취업 활성화"라며 "경력단절 여성 등이 일을 시작하고 맞벌이가 되면서 소비촉진도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정부의 워킹맘 지원책까지 뒷받침돼 일본 여성의 연령별 취업 곡선은 경력 단절로 인해 20대 후반~30대 취업률이 급감하는 ‘M’자 모양에서 완만한 사다리꼴로 변했다.

물론 일본이 100% 정답은 아니다. 경제 구조와 성숙도가 다른 만큼 단순 비교도 무리가 있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의 '풀 뽑기'식 초단기 공공알바는 답안지에 놓여선 안 될 선택이다. 급하게 늘린 일자리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간호·보육 등 사회의 니즈가 많은 곳, 인공지능(AI)·빅데이터 전문가 등 기업 니즈가 강한 일자리를 지금부터 만들어가는 게 낫다. 올해 일자리 사업 예산(13조4000억원)을 고용 장려금·직접 일자리 사업 등 '급한 불 끄기'에만 쓰지 말고 고용의 질을 높이는 직업교육 훈련, 고용 안정 등 '장기전'에 써야 하는 이유다.

서유진 경제정책팀 기자 suh.youjin@joongang.co.kr

서유진 경제정책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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