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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투입 늘려 막은 버스대란, 내년이 더 문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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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전국 버스노조가 15일 파업을 철회·유보하면서 전국적인 출근길 버스 대란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날 오전 서종수 서울버스노조 위원장, 박원순 서울시장, 피정권 서울버스운송사업조합 이사장, 오길성 조정회의 의장(왼쪽부터)이 합의문을 들고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뉴시스]

전국 버스노조가 15일 파업을 철회·유보하면서 전국적인 출근길 버스 대란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날 오전 서종수 서울버스노조 위원장, 박원순 서울시장, 피정권 서울버스운송사업조합 이사장, 오길성 조정회의 의장(왼쪽부터)이 합의문을 들고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뉴시스]

서울시 버스 노사의 임금·단체 협상이 타결되면서 서울시민 주머니에서 버스회사에 지원하는 돈이 1000억원 늘어나게 됐다. 버스회사의 적자를 세금으로 메우는 준공영제다 보니 이런 일이 생긴다. 일부에서는 “또다시 세금으로 파업을 방어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새 휴일근무 규정 내년부터 도입 #유급 휴일수당, 정년 연장분 등 #서울시 330억~470억원 더 필요 #준공영제 따른 경영 해이도 우려

15일 서울시와 서울시버스운송사업조합은 버스업계 임금 인상과 유급휴일 수당, 정년 연장 등을 더하면 올해 333억원, 내년 210억~469억원의 추가 재정 지원이 필요하다고 추산했다. 이번 합의에 따라 서울 버스업계는 올해 임금(시급)을 3.6% 올리고, 현 61세인 정년을 내년 62세, 2021년 63세로 연장한다. 또 300인 이상 사업장엔 관공서 휴일 규정이 도입된다.

이런 변화 때문에 올해 인건비가 333억원 추가됐다. 서울시 관계자는 “시급 인상률을 토대로 임직원 2만여 명의 총 인건비(시급·식대 등 9597억원) 인상률을 따지면 3.47%다. 333억원이 늘어난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서울시는 올해 버스 지원 예산으로 2915억원을 책정했지만, 실제론 3200억원을 예상하고 있다. 여기에 333억원이 추가되면 올해 3533억원을 버스회사에 지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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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큰 문제는 내년이다. 근로기준법 개정과 정년 연장으로 인건비가 가파르게 오르는 게 불가피해서다. 현행법상 법정 유급휴일은 주휴일과 근로자의날뿐이다. 노사 합의로 국경일·법정공휴일을 무급이나 근무일로 할 수 있다. 개정된 근로기준법에 따라 내년부터 300인 이상 사업장에선 ‘관공서 공휴일 규정’이 도입된다. 서울시와 버스조합은 연간 9일가량 유급휴가가 늘어날 것으로 추정한다. 28개 버스회사의 1만1496명이 해당한다.

인력을 추가 채용하거나 기본급의 150%를 수당으로 줘야 한다. 서울버스조합 관계자는 “유급휴가 규정이 바뀌면 503명의 버스기사를 더 뽑아야 한다”며 “이러면 내년에만 보험료·퇴직금 적립을 포함해 359억원의 인건비가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주 52시간제에 대비해 지난해 버스기사 300여 명을 새로 뽑았는데, 근로기준법 개정 때문에 훨씬 더 많은 기사를 뽑아야 한다. 기사를 채용하지 않으면 하루 10만~20만원의 수당이 추가된다. 연 100억~200억원이다. 정년 연장(61→62세)에도 110억원이 더 든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이렇게 따지면 내년 버스회사 지원금이 3743억~4002억원으로 치솟는다. 서울시 인가 버스(7405대) 대당 5400만원을 지원하는 셈이다. 4000억원을 지원한다고 가정하면 서울시민(976만6000명) 1인당 4만900원을 부담하는 꼴이다. 이원목 서울시 교통기획관은 유급휴일 수당 부담분에 대해 “아직은 가변적인 상황”이라며 “배차 간격이나 차량 투입 대수를 조정해 비용을 흡수하는 방안을 고려 중”이라고 말했다.

손실을 전액 보전받는 버스 준공영제는 ‘땅 짚고 헤엄치는’ 사업 구조다. 친인척을 임원으로 선임하거나 인건비를 부풀리는 등 도덕적 해이 문제가 불거지기도 했다. 정진철 서울시의회 의원은 “법정제한 기간인 6년을 초과해 회계감사를 연속으로 받거나 서울시와 협의 없이 외부감사인을 선임하는 등 문제점이 드러났다”며 “버스업체 투명성 검증이 강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파업 예정시간 90분을 앞두고 극적으로 협상이 타결돼 ‘교통대란’은 막았지만 서울시민의 세금 부담은 막을 수 없게 됐다.

이상재·박형수 기자 lee.sangja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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