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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 의원 만난 이낙연 "내년엔 여의도 쪽 가있을 겁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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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강민석
강민석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연내 ‘총리 포함 개각’ 대형 인사 정국 올까

이낙연 국무총리가 15일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초청 토론회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이 총리는 총선 출마 문제와 관련, ’당이 심부름시키면 따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총리 왼쪽은 편집인협회 김종구 회장(한겨레신문), 오른쪽은 토론회 사회를 본 편집인협회 박승희 부회장(중앙일보 편집국장). [뉴시스]

이낙연 국무총리가 15일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초청 토론회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이 총리는 총선 출마 문제와 관련, ’당이 심부름시키면 따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총리 왼쪽은 편집인협회 김종구 회장(한겨레신문), 오른쪽은 토론회 사회를 본 편집인협회 박승희 부회장(중앙일보 편집국장). [뉴시스]

지난달 23일,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에 들렀다가 우연히 김중로 바른미래당 의원을 봤다. 김 의원은 육군 준장(육사 30기) 출신의 비례대표 초선의원이다. 여당 의원도 아니고 야당 의원이 무슨 일로 청사를 찾았는지 궁금했다. 며칠 후 김 의원에게 전화를 걸어 어떤 일로 정부청사를 찾았는지 물어봤다. 김 의원은 이낙연 국무총리를 면담하고 돌아갔다고 밝혔다. 바른미래당 의원이 왜 이낙연 총리를 만났을까.

[강민석 논설위원이 간다] 대정부질문 때 공격한 의원과 소통 #김 의원 “총리, 총선 출마 뜻 밝혀” #이 총리 “당이 심부름시키면 … ” #총선 직전 개각은 부담, 연내 관측

김 의원에 따르면 사연이 있었다. 지난 3월 20일 국회 대정부질문이 발단이었다. 그는 처음엔 이 총리를 가리켜 ‘호남 잠룡’이라거나 ‘어떻게 그렇게 물 흐르듯이 대정부질문 답변을 잘하느냐’고 치켜세우다간, 막상 질문에 들어가자 변칙 질문으로 이 총리를 당혹하게 했다. “대한민국의 꿈이 뭐냐”, “문재인 대통령 취임사를 몇 번 읽어봤느냐”,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읽어봤느냐” 등이 그가 던진 질문이었다. 대정부질문 답변이라면 일가견이 있는 이 총리지만 한미상호방위조약에 관한 질문에는 말꼬리를 잡혔다.

이 총리가 “다 읽진 못했다”고 하자 김 의원은 “아니, 뭘 다 읽지 못하느냐. 한 페이지짜리를”이라고 핀잔을 줬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은 6개 항뿐이다. 김 의원은 한·미동맹이 중요한 만큼 꼭 읽어봐야 한다고 다그치다시피 했고, 이 총리는 결국 “오늘이라도 읽겠다”고 했다.

대정부질문을 마친 뒤 김 의원은 공격이 조금 과했다고 생각했는지 며칠 후 이 총리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그런데 이 총리에게서 바로 답장이 왔다고 한다. 대화가 “한번 만납시다”라는 쪽으로 진행됐고, 이 총리와 그를 공격했던 야당 의원이 지난달 23일 총리 집무실에서 오전 10시부터 40여분 만났다. 김 의원은 통화에서 당시 “적폐 청산 방향이 인적 청산이 아니라 잘못된 관행이나 국민을 불편하게 하는 것을 수정·보완하는 쪽이 되어야 한다고 조언했고, 총리의 ‘정치 행보’에 대해서도 대화를 나눴다”고 전했다.

정치 행보라면, 혹시 총선 출마문제로 대화했나.
“그렇다. 이 총리에게 ‘총리가 되는 순간 총리는 자기 몸이 아니다. 국가와 국민만 봐야 하고, 진퇴도 국가·국민을 봐야 한다. 정치권에 빨리 와야 할 거 아니냐’고 했다.”
이 총리 반응은.
“대통령 의중이 중요하고, 타이밍이 문제이긴 하지만, 아마도 ‘내년에는 여의도 쪽에 가 있을 겁니다’라고 언뜻 자기 생각을 비추더라.”

이 총리의 총선 출마 문제는 예민한 사안이다. 개각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총리를 포함한 개각이라면 공직사회, 나아가 국정에 큰 영향을 미치는 문제다. 그래서 아직 이 총리도 공식적으론 총선 출마 문제에 입장을 밝힌 적이 없다. 지난 8일 해외순방지인 에콰도르에서 동행한 기자들에게 “정부·여당에 속한 일원으로서 뭔가 일을 시키면 합당한 일을 할 것”이라고 말한 정도였다. 김중로 의원이 들었다는 ‘내년에 여의도 쪽에 가 있을 것’이란 발언은 어찌 보면 가장 진전된 입장일 수 있다.

마침 한국 신문방송편집인협회(회장 김종구)가 15일 이낙연 총리를 초청해 토론회를 열었는데, 패널리스트로 참석할 기회를 얻었다. 이 총리의 입장을 현장에서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하지만 이 총리는 공개적으로 이 문제에 대한 입장을 밝히는데 여전히 신중했다.

총선에서 ‘합당한 일’을 한다고 했는데.
“순방에 동행한 기자들이 뉴스 하나는 내놓아야 할 거 아니냐고, 거의 목을 조르듯이 해서 물에 물 탄 듯이 한 얘기였다.”
‘정치인 이낙연’의 꿈은.
“별로 뚜렷하지 않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대선주자로서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보다 우위인 것이 있다면.
“행정부에 몸담은 사람이 제1야당 대표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은 위험하다. (황 대표에 대해) 깊게 알지도 못한다.”
총선 때 어떤 역할을 구상하고 있나.
“제 역할을 제가 생각하고 있지 않다. 제가 (역할을) 요구할 생각도 없고, 기획할 마음도 없다.”

다만 이 총리는 이 대목에서 “원칙적으로 ‘정부·여당’에 속한 사람으로서 심부름을 시키시면 따라야겠죠”라고 덧붙였다.

당의 출마요청이 있을 때는 움직일 수 있다는 가능성만큼은 열어놓은 셈이다. ‘정부’ 가 아니라 계속 ‘정부·여당’의 일원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도 주목할 부분이다.

이날 토론회의 공식 발언과 김중로 의원과의 비공개 접촉에서 나온 말을 종합하면 이 총리 생각이 어느 쪽으로 기울어 있는지는 명확한 것 같다.

총리실 출신의 한 여권 인사는 “측근들 가운데는 이 총리의 총선 출마에 반대하는 의견도 있긴 하지만, 소수로 안다”며 “정치인이라면, 우리 쪽이 전쟁을 치를 때는 전쟁에 나가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총리의 총선 출마는 개각 요인이 발생했음을 의미한다. 개각을 위해선 ▶정치적 타이밍을 봐야 하고 ▶인물(후임자)을 새로 찾아야 하며 ▶형식은 총리와 장관을 순차적으로 할 것인지, 몰아서 할 것인지 등을 포함해 고려해야 할 점이 적잖다.

일단 시기 문제의 경우 큰 틀은 유추할 수 있을 것 같다. 공직자가 선거에 출마하려면 선거일 90일 전까지만 사퇴하면 된다. 산술적으로는 이 총리의 경우 내년 1월 초까지 역할을 계속하는 게 가능하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작다. 익명을 원한 민주당 중진의원의 말이다.

“내년 총선(4월)을 앞두고 인사청문회 하는 건 절대 안 된다. 한국당이 총선을 앞두고 인사청문회를 하면 한 명이라도 해주려고 하겠나. 침소봉대하든 어떻게든 인사 실패 정권으로 만들려고 할 게 뻔하기 때문에 이 총리와 몇몇 정치인 출신 장관들이 총선 출마 결심을 굳힌다면 후임자의 인사청문회는 무조건 올해 안으로 끝마쳐야 한다.”

보통 대통령이 총리를 지명하고,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 국회 본회의에서 총리 임명동의안의 표결까지 마치려면 한 달 안팎이 걸린다. 이낙연 총리의 경우 21일 걸렸다. 물론 이 총리는 순조로운 경우였다. 김종필 전 총리의 경우 야당의 반대로 6개월이나 걸렸다. 이런 무대를 내년 총선을 앞두고 만들어선 안 된다는 주장이었다. 그래서 이 총리가 여의도 복귀를 결심한다면, 그 시기는 ‘연내’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는 여당 인사들이 많다. 그렇다고 한두 달 안에 ‘번개 개각’이 있을 것 같지는 않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2주년 대담(12일)에서 이 총리를 포함한 정치인 출신 장관들의 내년 총선 출마와 관련한 질문을 받고 “선거에 나갈 생각이 있다면 임박해서가 아니라 충분한 여유를 두고 의사를 밝히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 말을 뒤집어보면, 아직은 문 대통령에게 출마 의사를 직접 밝힌 사람이 없다는 얘기가 된다.

청와대의 후임자 발굴이나 검증에도 필요한 기간이 있기 때문에 개각이 임박했다고 보긴 어려운 상황인 만큼, 결국 9월 정기국회 전후가 개각 타이밍이 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여권 내에서 조심스레 나온다. 새해 예산안 처리에 국정감사 등 주요 정치일정이 몰려있는 정기국회에서 총리임명동의안을 처리하는 것은 무리라는 의견도 있으나 전례가 없는 건 아니다. 이명박 정부 시절 여당은 정운찬·김황식 총리 임명동의안을 정기국회에서 처리했다. 대형 인사 태풍이 몇 달 안에 불 수도 있다는 얘기다.

◆당·청의 공무원 4년 차 발언 비판한 이 총리=이 총리는 편집인협회 토론회에서 최근 김수현 청와대 정책실장과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마이크가 켜진 걸 모르고 “공무원 사회가 4년 차 같다”고 말한 것을 이례적으로 비판해 눈길을 끌었다.

이 총리는 “공무원 사회가 ‘1년 차 사회’, ‘2년 차 사회’가 따로 있고, ‘4년 차 사회’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다”라며 “공무원 사회는 늘 공무원 사회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4년 차 발언은) 공직사회의 정확한 상태를 말한 것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이 총리는 “공무원 사회의 장점은 일관성·안정성·계속성 등이라고 할 수 있고, 단점은 창의력 부족이나 전례에 따라가는 것”이라며 “이 단점을 보완하는 게 장관들의 몫”이라고 강조했다.

이 총리는 “(김 실장은) 아마 청와대가 걱정하는 문제에 대해 (공직사회가 움직이지 않는 것 같아) 답답함이 있었을 것”이라며 “정치인(이 원내대표)이 먼저 (공직사회에 대해) 말씀하시니 (김 실장이) 맞춰주느라, 일종의 행정부 (비판을 통해) 과잉서비스를 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강민석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