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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테말라 쓰레기 마을, 그 곳 아이들 지키는 로나 선생님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조희경의 행복 더하기(6)

과테말라 쓰레기 마을. 아침이면 마을 주민들이 모여 쓰레기를 분류하고 작업량에 따라 임금을 받아 간다. 하루 수십 대의 트럭이 쏟아 놓는 쓰레기가 이 마을 주민들의 생명줄이다. [사진 한국컴패션]

과테말라 쓰레기 마을. 아침이면 마을 주민들이 모여 쓰레기를 분류하고 작업량에 따라 임금을 받아 간다. 하루 수십 대의 트럭이 쏟아 놓는 쓰레기가 이 마을 주민들의 생명줄이다. [사진 한국컴패션]

지난 3월 방문한 과테말라 쓰레기 마을. 새까만 까마귀 떼가 하늘을 덮은 그곳에선 거대한 쓰레기 더미 사이로 마을 주민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 마을 사람들은 쓰레기를 주워 생계를 유지한다. 조금이라도 돈을 더 벌려고 쓰레기를 옮기는 트럭에 달려들다가 쏟아지는 쓰레기 더미에 묻혀 다치거나 죽는 경우도 있다. 정부가 쓰레기 매립지 주위로 담을 쌓고 하수 처리시설을 공사하는 등 환경을 개선했지만 마을 주민의 삶은 지역 환경 개선만으로는 해결이 불가능했다.

주민들이 쓰레기를 주워 버는 돈은 하루에 7000원 정도에 불과했다. 절대 빈곤층 수입이 4인 가족 기준 9000원 수준임을 고려하면 그보다 못한 삶이다. 가난으로 인해 남자들은 갱단의 유혹에, 여자들은 매춘에 쉽게 빠져들었다. ‘이런 곳에서 아이를 키울 수 있을까’ 의구심마저 들었다. 그러나 이 마을에서 22년 동안 자신의 생명을 걸고 어린이들을 돌보는 로나 마가리타 마티네즈(Lorna Margarita Martinezz)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내 생각은 180도 바뀌었다.

로나 선생님은 이곳 어린이를 돌보면서 가장 힘든 일은 갱단의 위협에서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어린이 부모의 신뢰를 얻는 것이라고 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이 지역의 사람들은 갱단끼리 싸움이 빈번하고 마약과 매춘에 빠져 있다 보니, 사람을 믿지 못하고 가족과 관계 맺는 것조차 두려워한다. 특히 납치와 인신매매가 만연해서 어린 자녀가 있는 부모는 외부인을 심하게 경계했다.

이렇다 보니 아이를 갱단에서 빼내서 센터에 등록시키고 학교에 다니도록 하기 위해 선생님은 매일 가정을 방문해서 부모를 붙잡고 눈물로 호소했다고 한다. 특히 이웃집 남자에게 성추행당할 수 있어서 예방을 위해 노력했으나, 가정 학대나 성폭행 같은 문제가 생기면 부모는 해결보다 은폐하거나 도망가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로나 선생님은 이런 상황에서 평생 두려움과 수치심으로 가득 찬 인생을 살아야 하는 아이를 살리는 것이 자신의 소명이라고 했다.

22년간 갱단이 판치는 우범지대에서 생명을 걸고 어린이를 양육하고 있는 로나 선생님의 모습(사진 맨 왼쪽). 그는 열악한 상황에서 너무 힘들었지만 지금까지 어린이들과 함께한 삶에 후회가 없다며 환하게 웃었다. [사진 한국컴패션]

22년간 갱단이 판치는 우범지대에서 생명을 걸고 어린이를 양육하고 있는 로나 선생님의 모습(사진 맨 왼쪽). 그는 열악한 상황에서 너무 힘들었지만 지금까지 어린이들과 함께한 삶에 후회가 없다며 환하게 웃었다. [사진 한국컴패션]

그는 “성폭행당한 아이를 센터로 데려와 돌보려고 해도 부모가 등록을 거부하고 가정으로 데리고 가겠다고 하면 어쩔 수 없이 보내야 할 때가 있다”며 “많은 아이가 도움도 받지 못하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 너무 힘들다”고 토로했다. 그래도 그는 “계속 싸워나가겠다”며 눈물을 보였다. 어린이센터에서 양육 받지 못하는 수많은 어린이의 비참한 삶이 가슴 아프다는 로나 선생님의 고백은 모든 컴패션 수혜국 선생님의 공통된 마음이다.

빈민 지역에서 성장한 어린이센터 선생님은 누구보다 어린이의 상황을 가장 잘 이해하고 가슴 아파하며 부모의 마음으로 이들을 양육하기 때문이다. 언제인가 서정인 한국컴패션 대표가 했던 말이 생각이 났다. “컴패션 대표로 일하면서 때론 힘든 순간도 있었지만 어린이센터의 선생님들과 목사님들을 생각하면 걸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22년을 지속할 수 있었던 힘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로나 선생님은 아이들이 잘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던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은행이나 회사에서 근무하는 아이들을 보면 기적의 증거라고 생각한다”며 “가난으로 인해 가슴 아픈 일도 있지만 어린이센터를 통해 이들이 변화하고 리더가 되는 것을 지켜보는 기쁨이 나를 버티게 하는 힘”이라고 고백했다.

로나 선생님이 어린이를 사랑하는 마음은 그의 목소리에서도 느껴졌다. 대가를 바라지 않고 어린이를 양육하는 것 자체를 감사하며 그곳을 지키는 선생님 앞에 고개를 숙였다. 5월 15일은 스승의 날이다. 요즘은 스승에 대한 감정과 느낌이 예년과 사뭇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

손바닥이 마주쳐야 소리가 나듯 어디 한 쪽만의 문제일까 싶지만, 지금도 여전히 학생만을 바라보고 교육에 힘쓰는 수많은 선생님이 있음을 되새겨 본다. 우리네 바쁜 일상이지만 삶의 멘토가 돼 준 고마운 선생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5월의 하루가 되기를 바라본다.

조희경 한국컴패션 후원개발실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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