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 송미옥의 살다보면(88)
두 해만 지나면 백 세가 되시는 어르신이 이웃에 사셨다. 지나는 길목에 한 번씩 들르면 백 년의 살아온 역사 이야기가 동화처럼 가슴에 와 닿았다. 이야기 중간중간 “정말이에요? 진짜요?”라고 추임새를 넣으면 상상 속의 인간극장이 따로 없다. 어르신의 따님도 이미 칠십 대인지라 상 어르신 대열이다.
![두 해만 지나면 백 세가 되시는 어르신이 이웃에 사셨다. 어느 날 들르니 그 딸의 손녀딸이 아기를 낳아 고조할머니께 인사시키려고 와 있었다(내용과 연관 없는 사진). [사진 pxhere]](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905/16/3852f1e8-d99a-42bd-a54e-dc2097a4cc32.jpg)
두 해만 지나면 백 세가 되시는 어르신이 이웃에 사셨다. 어느 날 들르니 그 딸의 손녀딸이 아기를 낳아 고조할머니께 인사시키려고 와 있었다(내용과 연관 없는 사진). [사진 pxhere]
어느 날도 들르니 그 딸의 손녀딸이 아기를 낳아 고조할머니께 인사시키려고 와 있었다. 오랜만에 5대가 모여 있어도 어르신만 나와서 굽은 허리로 들락날락하고 계셔서 뭐하시냐고 물으니 닭을 고는 중이라며 가마솥에 불을 때고 계셨다. 불길이 햇볕을 받아 더 이글거렸다.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어머니의 눈에는 가장 고생하던 때의 딸 모습만 보여 애잔하다. 피난 갈 때 맏딸이라고 어린 동생을 업고 십 리를 넘게 걸었는데도 말없이 따라오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한 듯 장작을 밀어 넣으며 또 옛날이야기를 하신다.
"그래서 쟈~가 키가 안 큰 거야. 불쌍한 것이…!!”
허리 숙여 들어가야 하는 옛날 집 방에 들어가 큰 따님이랑 인사를 하니 날 보고 ‘제발 우리 어머님 좀 말려보라’며 웃는다. 외식을 시켜 드리려고 아무리 말해도 당신이 직접 기른 암탉을 잡아 자식을 먹여야 한다는 고집은 못 꺾으신다.
거기에 힘들다고 딸도 못 나오게 하시니 따뜻하게 데워진 구들방이 마음만 애타는 감옥이다. 그 고집이 없으셨으면 험한 세상 이제까지 어찌 사셨으리. 어머님 눈에는 다 늙은 자식도 어린 자식이니 방에서 아기만 끌어안고 있는 증손녀보다 늙어가는 딸이 더 안쓰럽고 애잔하다.
“느 할미 허리도 안 좋은데 네가 설거지 좀 해라.”
“에구. 아기 때문에 밤새 잠을 설친 아이가 뭔 힘이 있다고 그러셔요.”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은 내리사랑이라고 했듯이 죽을 때까지 모두 자기 자식의 안녕에 목숨을 걸고 산다.
가진 것 크게 없어도 어르신은 무엇이든 나눔을 실천하셨다. 선물로 받은 물건도 누군가가 눈독을 들이면 그냥 내어 주셨다. 우리 집에도 할머니가 주신 물건이 몇 개 있다.
![얼마 전 방문하니 마당에 있던 커다란 무쇠솥이 안 보였다. 어르신은 얼마 전 이사하게 된 이웃에게 주셨다고 했다. [중앙포토]](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905/16/0c7caad9-7396-4e91-9e6a-dd1cb258ae79.jpg)
얼마 전 방문하니 마당에 있던 커다란 무쇠솥이 안 보였다. 어르신은 얼마 전 이사하게 된 이웃에게 주셨다고 했다. [중앙포토]
얼마 전 방문하니 마당에 있던 커다란 무쇠솥이 안 보였다. 이웃이 일이 잘 안 풀려 타향 산골로 이사하게 되었단다. 인사하러 온 그분들에게 ‘어디 가서든 잘 살아야 한데이~ 내가 뭘 선물 하면 좋을꼬?’ 하니 ‘어르신요, 나도 부자 좀 되어 보게 주시려면 저 귀 달린 무쇠솥을 떼어주소’라며 농담으로 이야기했는데 그날 바로 해체해 새벽에 떠난 이삿짐에 실어 보냈다고 이웃 어르신이 이야기해 주셨다.
무쇠솥에 달린 귀 ‘솥귀 현(鉉)’은 이름으로도 많이 짓는 한자이다. 내 아이의 이름에도 있다. 이름에 ‘鉉’자를 넣는 것은 귀 달린 큰 솥을 마당에 걸고 사는 부자가 되라는 부모의 바람이다. 불우한 이웃에게 무쇠솥을 내어주며 그분들의 안녕과 오대에 걸쳐 내려오는 많은 자식이 사는 내내 평탄하기를 천지신명께 기도드리지 않았을까.
오늘 출근을 하는데 옆집 아저씨가 나를 세운다. “거기~ 그 어른이 돌아가셨잖아. 나고 자란 동네에서 시집을 와 부르는 이름도 ‘도건 댁’(도랑 건너 시집을 왔다는 뜻) 말이여. 며칠 전 편찮으셔서 큰아들네 집으로 가셨는데 다행히 거기서 돌아가셨다네. 백 세를 채웠으면 좋았을 텐데…. 그래도 무난하게 사시다 가셔서 복 노인이라고 모두 명복을 빌었다네. 알고나 있으라고 전하네.”
백 년을 살았어도 죽으면 아쉬운, 동화같이 재밌던 역사 이야기가 사라진듯한 그 무엇이 공허함을 느끼게 한다. 내가 가진 가장 무거운 것까지 다 나누고 가벼운 몸으로 떠나신 어르신…. 한 번이라도 더 들려보지 못한 아쉬움에 이 글로 그리움을 전해본다.
송미옥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