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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수, 보스인가 리더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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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이가영
이가영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이가영 사회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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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김명수 대법원장이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과 관련, 현직 법관 10명에 대해 추가 징계청구를 했다. 지난해 6월 1차 청구 이후 8개월여만의 2차 청구다. 김 대법원장은 “이로써 취임 후 1년 반 넘게 진행해온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과 관련한 조사 및 감사를 마무리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사상 초유의 대법원장 구속을 겪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태를 법원 차원에서 일단락하겠다는 의미다. 취임 후 과거를 정리하는 데 임기의 4분의 1을 보냈지만 남은 기간은 미래를 위해 나아가겠다는 다짐이기도 했다.

법원에까지 미친 ‘적폐 청산’ 흐름을 끊겠다는 뜻인 만큼 환영할 만한 것이었다. 그러나 김 대법원장의 입장문 곳곳에서 풍기는 과거의 법원과 현재의 법원을 편가르기 하는 듯한 뉘앙스 탓에 흔쾌하지만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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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의 원인이라 할 수 있는 관료적이고 폐쇄적인 사법제도와 문화를 개선하겠다”며 “법관과 재판의 독립을 침해하거나 훼손한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에 대해선 엄중히 책임을 묻는 게 기본적인 것이어서 검찰 수사에 협조했다”고 썼다. 대법원장이 된 뒤 스스로 법원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데 대한 인정은 없고, 모두 지난 대법원의 과오로 치부됐다. 또 “과정에서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흔들리는 것이 무엇보다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다. 그러나 제도개선을 통해 법원이 국민의 믿음을 회복한다면 전화위복이 될 것”이라고도 적었다. 법원의 문제가 검찰로 넘어간 순간 법원의 신뢰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무너졌다는 걸 대법원장 혼자만 모르는 것일까. 입장문 어디에도 사태에 연루된 법관들에 대한 같은 법원 구성원으로서의 연민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토록 강조한 제도 개선과 개혁을 위해 지난 1년 반은 과거 세력을 법원에서 정리하는 데 투자했다는 의미로 밖에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김 대법원장은 취임 때부터 편향성 논란이 있었다. 대법원장은 대통령, 국회의장에 이은 의전 서열 3위다. 대통령과 의장은 투표에 의해 당선된 만큼 민주적 정당성을 지닌다. 그런 의미에서 대법원장은 선출되지 않은 최고의 권력이다. 그런 지위를 주는 건 국민과 사법부 전체를 위한 리더가 되라는 뜻이지, 일부 판사들만의 보스가 되라는 말은 아니다.

언론인 홍사중이 쓴 책 『리더와 보스』는 리더와 보스의 차이를 명확히 구분한다. 여기엔 보스는 겁을 주지만 리더는 희망을 주고, 보스는 자기 눈으로 세상을 보지만 리더는 대중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고 했다. 김 대법원장은 법원의 리더가 될 준비가 돼 있는가.

이가영 사회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