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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몸 촬영·협박 했다"vs"안했다" 엇갈린 남녀진술…법원 판단은?

중앙일보

입력

카메라등이용촬영 일러스트. [뉴스1]

카메라등이용촬영 일러스트. [뉴스1]

전 여자친구를 칼로 위협하고, 강간한 뒤 휴대전화 카메라로 신체를 찍어 협박한 남성이 대법원에서 징역 5년과 80시간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이수 확정판결을 받았다.

대법원 3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원심이 판시한 이유와 증거로 보면 공소사실을 유죄로 판단할 수 있고, 협박죄에 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며 상고를 기각했다고 14일 밝혔다.

지난해 3월 강간 등의 죄로 징역 6년형을 마친 박모(37)씨는 출소 한달뒤인 4월부터 평소 알고 지낸 A씨와 사귀게 됐다. 그런데 두달뒤 A씨가 박씨에게 이별을 통보했다. 박씨는 7월 A씨를 찾아가 “너와 성관계한 내용이 담긴 통화 녹음을 너의 남자친구에게 보내겠다, ○○(A씨 거주 지역)에서 너 하나 얼굴 못 들고 다니게 하는 건 어렵지 않다”고 협박했다.

며칠 뒤에는 다시 A씨가 일하는 가게로 찾아가 A씨를 승용차로 부른 뒤 식칼로 위협하고 A씨 뺨을 때렸다. 박씨는 그대로 A씨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 식칼로 위협하며 A씨를 강간하고 휴대전화 카메라로 피해자의 얼굴과 신체를 촬영했다. A씨의 팔과 자신의 팔에 끈을 묶어 A씨를 감금하기도 했다. A씨는 이후 박씨를 경찰에 신고했다.

“촬영 안했다”vs“했다” 엇갈린 진술

법정에 선 박씨와 A씨는 서로 진술이 엇갈렸다. 박씨는 대부분의 혐의를 부인했다. A씨에게 "너 하나 얼굴 못 들고다니게 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고 말한 적이 없고, 성관계는 강간이 아닌 합의에 의한 관계였다고 주장했다. 식칼은 위협용이 아니라 자해하려는 취지로 들었다고 말했다. 심지어는 휴대전화로 A씨의 신체를 찍은 적도 없다고 주장했다.

실제 수사기관에서 박씨를 수사할 때 식칼과 휴대전화를 압수했지만 휴대전화에서 A씨 신체를 찍은 사진은 나오지 않았다. A씨의 요청으로 박씨가 휴대전화에서 동영상을 삭제하고, 휴대전화를 발로 밟아 파손시켰기 때문이다. 다만 박씨와 A씨가 주고받은 SNS메시지 등에서 박씨가 A씨 신체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었음을 암시하는 내용이 나왔다.

피해자 진술 신빙성 믿은 법원

법원은 A씨의 주장에 더 신빙성이 있다고 봤다. A씨는 수사기관에서부터 법정 진술까지 박씨의 협박 내용과 식칼로 위협한 사실, 강간과 감금, 휴대전화 촬영 등 피해를 당하게 된 경위와 범행 장소, 범행 전후 상황에 대해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진술했다. 법원은 이를 토대로 "A씨의 진술이 실제 경험한 것에 기초한 것으로 보이고, 진술 태도 역시 진지하여 거짓으로 꾸민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박씨는 "A씨가 경찰에게 여러차례 도움을 구할 수 있었는데도 그러지 않았다"며 A씨 진술을 믿을 수 없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실제 박씨가 A씨를 감금하고 있을 때 A씨 남자친구의 실종 신고로 박씨 집에 경찰관이 찾아왔지만 A씨는 경찰관을 그냥 돌려보냈다. 하지만 다음날 박씨 집에서 나온 A씨는 경찰에게 "망설이다 물어본다, 신고하게 되면 박씨가 구속되느냐, 나체사진과 성관계 영상을 유포하면 막을 수 있느냐, 박씨를 구속시켜도 가족과 남자친구에게 해를 가하는 것 아니냐, 죽고싶다, 시키는 대로만 하면 다 없애준다고해서 시키는 대로 했다, 고민이 된다"는 취지로 문자를 보냈다.

법원은 이를 토대로 "A씨가 박씨 집에 있을 때는 자신의 사진이나 영상을 유포하거나, 가족에게 해를 가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에 피해 사실을 밝히지 못하고 이후 신고한 점에 수긍이 간다"고 판단했다.

사건 이후 A씨가 박씨와 주고받은 SNS메시지도 법원 판단의 근거가 됐다. A씨가 "저 핸드폰…내 동영상도 복구되는 거래?"라고 박씨에게 묻자 박씨는 "모르지 일단 가지고만 있어. 오는 날 줄게 건들지도 않았어"라고 대답했다. 재판부는 "박씨의 답변은 A씨와 관계된 동영상을 갖고 있음을 전제한 대답으로, 박씨가 A씨에 관한 동영상을 촬영하지 않았으면 도저히 하지 않았을 대답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얼굴도 못 들고 다니게 하겠다" 협박죄도 유죄 

또한 법원은 박씨가 A씨에게 "너 하나 얼굴 못 들고 다니게 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고 말했다는 A씨 진술도 사실로 인정했다. 법원은 ”통화내용을 A씨 남자친구에게 보내겠다고 한 점, A씨가 있는 지역에서 얼굴도 못 들고 다니게 하겠다는 취지로 이야기한 점 등은 박씨가 A씨에게 공포심을 일으킬 정도의 해악을 알릴 의사가 있었다고 보는게 타당하다"며 협박죄도 유죄로 판단했다.

이수정 기자 lee.suje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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