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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 타도”라는 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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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오민석 문학평론가 단국대 교수·영문학

오민석 문학평론가 단국대 교수·영문학

정치는 “공통적인 것(the common)”의 언어게임이다. 정치에 가담한 다양한 집단들이 ‘민생’‘복지’‘안보’‘민주주의’ 등의 기표를 입에 달고 사는 것은 정치가 근본적으로 ‘공공영역’을 향해 있기 때문이다. 정치 담론의 기본적인 규칙을 아는 정치인들은 사적 개인으로서의 이해관계를 최대한 감춘다. 때로 위장일지라도 그것이 정치 게임의 기본적인 예의다. 모든 정치는 그 속성상 권력을 지향하지만, 그 욕망조차도 공적 정의의 언어로 포장한다. ‘정의롭지 못한 정치는 가짜’라는 정언명령이 허튼 욕망을 수치(羞恥)로 만들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최소한의 부끄러움이라도 아는 정치 역학이 가동될 때, 정치의 기본기가 마련된다. 저 깊숙한 내면에 감추어진 사적 욕망이 공공성이라는 초자아의 검열 앞에 고개를 숙일 때, 정치는 최소한의 윤리와 양심을 담보하게 된다. 어머니를 향한 욕망을 꺾는 오이디푸스처럼, 정치인들이 공적 이익을 위해 사적 야망을 애써 꺾는 척이라도 할 때, 비로소 가장 초보적인 수준일지라도 정치다운 정치가 시작된다.

날것의 정치 언어가 주는 괴로움 #정치도 최소한의 규칙을 지켜야 #나쁜 언어가 나쁜 현실을 만든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최근 한국 정치는 거의 야만의 수준에 떨어져 있다. ‘야만’이란 이드와 리비도와 본능이 이성적 자아와 초자아의 검열을 전혀 거치지 않은 채로 외화(外化)되는 현상을 지칭한다. “독재 타도”라는 말도 참 오랜만에 들어본다. 이 말이 진정성을 가지려면 이 말을 하는 주체가 이 말을 입 밖에 내는 순간 체포·구금·고문·죽음 등의 공포를 경험할 수도 있는 환경이 전제되어야 한다. 대한민국에서 이 말엔 그런 처절한 역사가 기록되어 있으며, 그리하여 이 말은 목숨을 걸고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던 수많은 고난의 삶들을 환기한다. 그러나 지금은 누가 이런 말을 해도 잡혀갈 일이 없다. 전혀 다른 상황 속에서 울려 퍼지는 이 말이 공허하고 우스꽝스러운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개국 이래 최악의 독재 정권들을 줄줄이 생산했으며 그리하여 그들이 만든 대통령을 거의 예외 없이 감옥으로 보낸 정당이 이런 용어를 사용하는 희한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며칠 전 거대 야당의 원내대표는 현직 대통령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달창”(달빛 창녀단, 일베들의 용어)이라 불러 물의를 일으켰다. 최대 야당의 근 70명에 가까운 국회의원들은 대한민국 헌법에 의해 감옥에 간 전직 대통령의 형집행정지 청원서를 제출하면서 현 정권을 나치에, 그리고 범죄 혐의를 가진 전직 대통령의 수감 상황을 아우슈비츠에 비유했다. 자신들이 좌파라고 비난하는 대상을 인류 역사상 최악의 극우 집단에 비교하고 있는 것이다. 거대 야당의 한 국회의원은 집회에서 “4대강 보(洑) 해체를 위한 다이너마이트를 빼앗아서 문재인 청와대를 폭파합시다”라고 외쳤다. 드디어 며칠 전 대구 집회에서 이 정당의 원내대표는 시민들에게 “내년 총선에서 압승시켜달라”고 주문했다. 이 모든 비논리와 난센스가 권력을 향한 전략적 언어임을 스스로 드러낸 것이다.

문제는 수사(修辭)다. 비트겐슈타인의 말대로 “언어의 한계가 세계의 한계이다.” 어두운 본능과 욕망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 존엄한 인간만이 자기 검열을 거친다. 선생은 선생대로, 정치인은 정치인대로, 예술가는 예술가대로 저마다 지켜야 할 게임의 규칙들을 가지고 있다.

정치 언어의 가장 기본적인 규칙은 사적 이해관계가 아니라 공공의 이익을 먼저 앞세우는 것이다. 성숙한 언어는 진리와 정의의 약호(略號)로 악과 이기심과 부도덕을 검열한다. 건강한 언어는 주체 안의 어두움과 싸움으로써 파괴와 악의와 불륜을 넘어선다. 어두운 내면이 아무런 옷을 거치지 않고 노골적으로 표현될 때, 우리는 몸의 추악함을 목도한다. 백주 대낮에 발가벗겨진 정신의 알몸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곤혹스러운 일은 없다. 비합리적 합리화의 언어에서 우리는 죽은 정신, 타락한 영혼을 본다. 출구가 사라진 언어의 아포리아에는 어두운 욕망만이 고깃덩어리처럼 걸려있다.

언어가 현실을 만든다. 가짜 언어가 가짜 신념을 만든다. 신념이 되어버린 언어는 그 자체 물성(物性)을 가진 현실이 된다. 건강한 필터링을 거치지 않은 언어는 이기적이고 파괴적인 힘이 된다. 힘을 가진 소수 공인(公人)들의 나쁜 문장들이 나쁜 연결과 결속으로 나쁜 현실을 만든다. 물론 정치는 (랑시에르의 말대로) 일치가 아니라 ‘불일치’를 생산하는 것이다. 그러나 불일치는 동물이 아니라 자기 검열과 초자아의 필터링을 거친 성숙한 인간의 언어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것이 정치의 책임이고 의무이다.

오민석 문학평론가·단국대 교수 영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