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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경 수사권 조정보다 더 중요한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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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김원배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김원배 사회팀장

김원배 사회팀장

“서초동 쪽은 쳐다보기도 싫다.”

과거 대검찰청이나 서울중앙지검에서 수사를 받은 사람 중엔 이런 반응을 보이는 사람도 있었다. 먼지털기식 수사나 별건 수사가 이뤄지면 남아날 사람이 몇이나 될까. 검찰 수사 과정에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람도 여럿이다.

국회에서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수사권 조정 법안(형사소송법 일부 개정안)의 핵심은 검찰의 힘을 빼고 경찰의 권한을 지금보다 확대하는 것이다. 함께 지정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안이 통과되면 새로운 수사 조직이 탄생한다.

그러자 문무일 검찰총장은 해외 출장 중 “검경 수사권 조정 법안은 견제와 균형이라는 민주주의의 원리에 반한다”며 공개 반발했다. 검찰은 기존 안으론 경찰 권력의 비대화가 나타날 것이라며 경찰 조직에서 정보 파트를 떼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연의 일치일까. 지난 10일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는 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 경찰 정보조직을 통해 선거에 개입하고 불법 사찰을 한 혐의로 강신명·이철성 전 경찰청장 등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향후 수사에서 검찰이 우려한 정보경찰의 폐해가 드러날 수 있다.

최근 터진 강남 클럽 버닝썬 사건 등을 보면 이해관계인과 경찰의 유착 관계는 뿌리가 깊다. 수사권 조정을 통해 검찰의 과도한 힘을 분산하겠다는 주장엔 고개가 끄덕여지지만 이런 경찰의 문제엔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물론 검찰과 경찰, 공수처 간 적절한 견제와 균형이 필요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수사권을 제대로 통제하면서 국민의 안전과 인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런 측면에서 함께 논의해야 할 것이 있다.

먼저 청와대, 특히 민정수석실의 기능 축소를 추진해야 한다. 수사권을 조정하고 공수처를 만들어도 권력이 청와대에 집중돼 있다면 부작용은 반드시 생길 것이다. 수사권 오·남용 논란의 상당수는 권력 집중의 부산물이다. 김태우 전 검찰 수사관의 폭로로 논란이 된 특별감찰반(현 공직감찰반) 같은 조직을 민정수석실에 둘 이유가 있나. 공직감찰 기능은 감사원에 넘기고 민정수석은 대통령의 법률 보좌관 역할을 하는 게 바람직하다. 나아가 검찰총장이나 경찰청장, 공수처장 임명 시 인사청문회와 함께 국회의 동의를 받도록 해야 한다. 적어도 수사기관장은 청문회 후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임명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얘기다.

불구속 수사와 재판을 확대하고 영장 통제를 강화하는 것도 필수적이다. 논란이 되는 과잉 수사, 별건 수사를 차단하려면 법원이 압수수색영장부터 신중하게 발부해야 한다. 인신 구속을 결정하는 영장전담 판사도 늘리고 여러 명의 판사가 함께 구속 여부를 판단하는 방식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장기적으론 윤리적·도덕적 비난을 받아야 할 것과 국가의 형벌권으로 처벌하는 것을 구분해야 한다. 언제부터인가 무슨 문제가 터지면 모두 수사해서 구속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한국에서 가장 무서운 법은 ‘국민정서법’이며 가장 큰 죄는 ‘걸린 죄’라는 말도 있지 않나. 과도한 여론재판이 무리한 수사로 이어지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아울러 개인 간의 다툼(민사)을 해결하기 위해 수사기관을 동원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정치권도 갈등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툭하면 고소·고발을 한다. 수사기관이 비대해진 것에는 정치권과 시민사회, 언론의 책임도 있다.

이젠 수사기관이 개입하는 영역을 줄여가야 한다. 정치권과 민간이 스스로 갈등을 해결하고 조정하고 화해할 수 있는 그런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김원배 사회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