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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스에 간 윤형근, 하나로 포개진 동과 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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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8일 이탈리아 베니스 포르투니 미술관에서 윤형근 회고전이 개막됐다.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8일 이탈리아 베니스 포르투니 미술관에서 윤형근 회고전이 개막됐다.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이탈리아 베니스 포르투니 미술관에서 개막한 윤형근 작가의 회고전.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이탈리아 베니스 포르투니 미술관에서 개막한 윤형근 작가의 회고전.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그의 작품은 시간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공간과 하나가 돼 있었다. 마치 본래부터 그곳에 있었던 것처럼 편안하게 숨을 쉬고 있었다. 작가가 평생 화폭에 담고 싶어했던 흙과 나무, 자연의 빛깔은 ‘물의 도시’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그렇게 피어났다.

흙과 나무 탐구한 단색화 구도자 #베니스 오랜 미술관서 더욱 빛나 #2019 베니스 비엔날레서 회고전 #국가관 황금사자상은 리투아니아

지난 8일 베니스 시립미술관 포르투니 미술관(Fortuny Museum)에서 한국 추상화가 윤형근(1928~2007) 회고전이 개막했다.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미술 축제 기간에, 베니스의 유력 미술관에서 초청해 여는 한국 작가 회고전이라는 점에서 한국 미술사에 한 획을 긋는 전시로 기록될 듯하다.

한편 11일 개막한 제58회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국가관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은 리투아니아에 돌아갔다. 기후 변화에 대한 경고를 재치 넘치게 오페라 콘셉트로 소개한 작품 ‘태양과 바다(Sun & Sea)’가 89개 국가관을 제치고 1등으로 선정됐다.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퍼포먼스 형식의 작품이 황금사자상을 받은 것은 2017년 독일관의 ‘파우스트(Faust)’ 이후 두 번째다.

베니스 포르투니 미술관에서 열린 윤형근 회고전 전시장.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베니스 포르투니 미술관에서 열린 윤형근 회고전 전시장.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흙과 나무의 빛깔, ‘윤형근’전

“윤형근 작가에 대한 관심이 이렇게 클 줄 몰랐죠. 전시를 본 사람들이 한결같이 ‘놀랐다’ ‘충격이었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 전율을 느꼈습니다.” 윤형근 회고전을 기획한 김인혜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가 베니스에서 전한 소감이다.

8일 열린 윤형근 회고전 개막식에는 다니엘라 페라티(Daniela Ferratti) 포르투니 미술관 관장을 비롯해 각국 미술관 관계자 등 약 800명이 참석했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모마(MoMA), 일본 모리미술관, 홍콩 M+미술관 관계자들과 더불어 르 피가로, 뉴욕타임즈, 파이낸셜 타임즈, 아트 인 아메리카, 보그, 가디언 등 160명의 기자가 참석했다.

윤형근의 작품 60점과 자료 40여 점 등 100점은 포르투니의 4개 층 중 3개 층 규모의 공간에 펼쳐졌다. 포르투니는 베니스의 유명 디자이너 마리아노 포르투니(1871~1949)가 아틀리에로 쓰던 곳으로, 작가가 세상을 떠난 뒤 시에 기증돼 1975년부터 미술관으로 사용돼 왔다. 이 전시는 지난해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전시를 보고 감동한 포르투니 미술관장이 적극적으로 추진했고, 데이비드 즈워너·사이먼 리·악셀페어보트·블룸앤포와 PKM 등 모두 5개의 갤러리가 후원했다.

김인혜 학예사는 “윤형근 작품을 처음 본 사람들은 작품의 뿌리가 서예 등 한국 전통 문화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매우 놀라워했다”며 “기법과 재료, 정신적인 것과 미학적인 것, 작가의 삶과 작품 세계에 대해 큰 관심을 보였다”고 덧붙였다. 박경미 PKM갤러리 대표는 “전시장 큰 공간에는 70년대 대형 작품이, 벽돌로 이뤄진 작은 공간에는 작가가 1980년 광주 사태 직후 슬픔과 분노로 격한 감성을 표현한 작품이 배치됐다”면서 “시간의 결이 살아 있는 공간에서 대형 작품들이 아름답고 파워풀하게 조화돼 새삼 놀랐다”고 전했다.

한국전쟁과 유신 등 격동의 시대를 보내며 “색채가 싫고 화려한 것이 싫어졌다”고 고백했던 작가의 작품들이 화이트 큐브 공간을 벗어나 벽돌 벽과 나무 바닥과 만나 더욱 깊은 울림을 전하고 있다는 얘기다.

인공해변에서 오페라 공연, '태양과 바다'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리투아니아관 `태양과 바다`. [사진 베니스 비엔날레]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리투아니아관 `태양과 바다`. [사진 베니스 비엔날레]

올해 황금사자상을 받은 리투아니아 국가관 작품은 수영복을 입은 20여 명의 참가자가 생태 재해와 멸종 위기에 대한 경고를 노래한 공연이다. 전시장에 모래를 깔아 조성한 인공해변에서 수영복 차림의 사람들은 누워 보드게임을 하거나 선탠로션을 바르고 책을 읽고 노래하는 풍경을 연출했다. 오페라 음악이 깔리고 일부 배우들은 직접 노래도 부른다.

뉴욕타임스는 이 퍼포먼스를 가리켜 “미술관이 네모 박스 안에서 벗어나 생각하도록 자극하는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틀에 박힌 전시 포맷을 벗어났고, 연극·음악·시각예술을 결합해 미술 작품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는 점에서다. 이 작품은 영국 런던 서펜타인 갤러리의 큐레이터 루시아 피트로이스트가 예술감독을 맡았다.

한국관 전시에선 김현진 예술감독과 더불어 정은영, 남화연, 제인 진 카이젠이 각각 여성국극과 무용가 최승희, 바리설화를 소재로 역사와 젠더 이슈를 다룬 영상을 선보였다.

이탈리아 조각가 로렌조 퀸의 설치 작품 ‘다리 놓기(Building Bridges)’. [AFP=연합뉴스]

이탈리아 조각가 로렌조 퀸의 설치 작품 ‘다리 놓기(Building Bridges)’. [AFP=연합뉴스]

미국 흑인 작가, 아서 자파

79명에 이르는 본전시 참여 작가 중에서는 미국 작가이자 영화제작자인 아서 자파(Arthur Jafa)가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그는 자신과 가까운 백인들의 초상화와 백인우월주의의 풍경을 접목한 50분짜리 영화 ‘화이트 앨범’과 쇠사슬에 묶인 트럭 타이어 조각 작품을 선보였다.

한편 한국 작가 중 본전시에 참여한 이불 작가는 비무장지대(DMZ) 감시초소(GP)에서 철거된 철근 600㎏으로 제작한 4m 규모의 철탑 ‘오마드 V’를, 강서경 작가는 회화형 설치작품인 ‘땅, 모래, 지류’ 연작과 ‘그랜드마더 타워’ 연작을 선보였다. 올해 비엔날레는 11월 24일까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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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주 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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