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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년 짱뚱어 잡은 할머니 "한창땐 하루에 1000마리 잡았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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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남 강진만 갯벌. 남도 갯벌의 봄은 짱뚱어로 온다. 갯벌에 짱뚱어가 보이면 봄이 시작된다는 뜻이다. 평생 짱뚱어를 잡은 이순임 할머니도 바빠졌다. 손민호 기자

전남 강진만 갯벌. 남도 갯벌의 봄은 짱뚱어로 온다. 갯벌에 짱뚱어가 보이면 봄이 시작된다는 뜻이다. 평생 짱뚱어를 잡은 이순임 할머니도 바빠졌다. 손민호 기자

 “내년 봄에 다시 내려오랑게. 짱뚱어 어떻게 잡는지 보고 잡으면.”
 지난해 11월 전남 강진에서 만난 이순임(69) 할머니는 몇 번이고 봄에 또 오라고 말했다. 그래서 기다렸다. 겨울잠에 들어간 짱뚱어가 다시 갯벌을 뛰어다니는 계절이 돌아오기를. 이윽고 전화를 넣었다. 벚꽃도 다 떨어진 4월 하순이었다.
 “짱뚱어 올라왔어요?”
 “잉. 올라왔어. 허벌나게 많어. 봄이여, 봄. 내려오면 돼야. 가만, 물때 좀 보고. 잉, 오후 1시에 나가면 되겠구먼. 늦지 말어.”
 저마다 봄은 다른 얼굴로 온다. 평생을 갯벌에서 산 할머니에게 화신(花信)은 짱뚱어다. 이제 할머니는 갯벌에 나가 낚싯대를 휘두를 것이다. 그때마다 주렁주렁 짱뚱어가 매달릴 것이고.

전남 강진의 짱뚱어 잡이 장인 이순임 할머니. 56년째 강진만 갯벌에서 짱뚱어를 잡고 있다. 손민호 기자

전남 강진의 짱뚱어 잡이 장인 이순임 할머니. 56년째 강진만 갯벌에서 짱뚱어를 잡고 있다. 손민호 기자

 5월 2일 오후 1시 강진만 갯벌. 정확히 말하면 이순임 할머니의 짱뚱어 밭. 물 빠진 갯벌은 오후 햇빛을 받아 검게 번득였다. 그 거대한 몸뚱어리에 수없이 많은 구멍이 뚫려 있었다. 구멍 깊숙한 안쪽에 짱뚱어가 있다고 했다.
 “이때가 제일 좋아. 간조 2시간쯤 지나고서. 짱뚱어가 제일 신나게 놀 때야. 근디, 우째야 쓸까잉. 바람이 있네. 바람 있으면 못 써. 뻘이 말라부러. 봐, 쩍쩍 갈라지잖어. 짱뚱어가 안 나와.”
 살랑살랑 갯바람이 할머니에겐 근심거리라니. 몰랐다. 할머니가 ‘뻘배’를 밀고 갯벌 안쪽으로 들어갔다. 플라스틱 의자를 얹은 뻘배와 낚싯바늘 4개를 묶어 만든 낚싯대 모두 할머니가 직접 만든 짱뚱어 채비다. 할머니를 따라 갯벌로 들어갔다. 촬영은커녕 서 있기도 힘들었다.

 이순임 할머니는 열세 살부터 짱뚱어를 잡았다고 했다. 먹고 사는 게 막막했던 시절, 갯마을 소녀는 허구한 날 갯벌에 나왔다. 소녀가 잡은 짱뚱어는 소녀의 밥이 되고 고무신이 되고 연필이 되었다. 지금도 짱뚱어는 한 마리에 1000∼3000원 한다.
 그렇게 그렇게, 세월이 흘렀다. 할머니는 올해로 56년째 짱뚱어를 잡는다. 손수 잡은 짱뚱어를 잡아 탕을 끓인다. 남도에 짱뚱어탕 집이 허다하지만, 할머니처럼 직접 잡은 짱뚱어를 쓰는 집은 거의 없다.
 ‘강진만 갯벌탕’. 강진읍시장 건너편에 있는 그의 가게다. 5∼6년 전, 하도 일이 고되 장사를 접은 적이 있었다. 하나 이내 돌아왔다. “놀아본 사람이 논다”고 온종일 노니까 없던 병도 생겼다.
 “한창땐 하루에 30㎏도 잡았어. 1000마리도 넘제. 나가 백발백중이여. 낚시 던지는 족족 올라와. 부지런히 잡아아재. 대여섯 달이면 끝이여. 이놈들이 겁나게 추위를 타거든. 11월이면 싹 들어가.”

 이순임 할머니가 잡은 짱뚱어. 손민호 기자

이순임 할머니가 잡은 짱뚱어. 손민호 기자

 이순임 할머니가 끓인 짱뚱어탕. 국물이 진하고 얼큰하다. 손민호 기자

이순임 할머니가 끓인 짱뚱어탕. 국물이 진하고 얼큰하다. 손민호 기자

 짱뚱어도 여러 종류가 있다. 우리가 먹는 짱뚱어는 ‘비단짱뚱어’다. 등지느러미를 펴면 비단처럼 화려한 무늬가 드러난다. ‘말뚝이(말뚝짱뚱어)’는 못 먹는다. 바로 버린다. 정약전의 『자산어보』에는 짱뚱어가 ‘철목어(凸目魚)’로 등장한다. 눈이 튀어나온 모양을 본뜬 이름이다.
 남도에서는 갓 잡은 짱뚱어를 회로 먹기도 하지만, 짱뚱어는 탕이 제일 맛있다. 생김새도 맛도 추어탕과 비슷하다.

 갯벌 깊숙이 들어가 짱뚱어를 기다리는 이순임 할머니. 할머니를 태운 뻘배가 갯벌과 한 몸처럼 보일 때쯤, 진흙 속으로 숨었던 짱뚱어들이 하나둘 고개를 쳐들고 나왔다. 손민호 기자

갯벌 깊숙이 들어가 짱뚱어를 기다리는 이순임 할머니. 할머니를 태운 뻘배가 갯벌과 한 몸처럼 보일 때쯤, 진흙 속으로 숨었던 짱뚱어들이 하나둘 고개를 쳐들고 나왔다. 손민호 기자

 갯벌에 들어갔지만, 짱뚱어는 보이지 않았다. 한참을 기다려도 갯벌은 잠잠했다. 결연한 표정의 할머니가 갯벌에서 나왔다. 그리고 하늘에 떠 있는 드론을 가리켰다.
 “시끄러워서 안 나와. 저놈 붕붕거리는 소리 때문에. 짱뚱어만큼 겁 많은 것도 읍써. 소리도 민감하고, 움직임에도 민감햐. 나 혼자 들어가야 혀.”
 할머니를 따라 들어갔던 3명이 이번에는 멀찌감치서 할머니를 지켜봤다. 드론도 철수했다. 혼자 갯벌에 나간 할머니는 낚싯대를 든 채 꼼짝하지 않았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할머니와 뻘배가 갯벌의 한 풍경을 이루었다. 아니, 갯벌과 한 몸이 되었다.

 비단짱뚱어, 등지느러미가 비단처럼 화려하다. 힘이 쎄서 꽉 쥐어야 도망가지 못한다. 손민호 기자

비단짱뚱어, 등지느러미가 비단처럼 화려하다. 힘이 쎄서 꽉 쥐어야 도망가지 못한다. 손민호 기자

 문득 갯벌이 부산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할머니의 낚싯대가 허공에서 크게 휘돌았다. 낚시 끝에서 무언가 끌려오는 것이 보였다. 할머니가 환히 웃었다.
 “한번 잡어 봐. 힘 쎄지? 보통 장사가 아녀. 짱뚱어만큼 몸에 좋은 것도 읍서. 약이여 약. 장어는 기어다니제? 짱뚱어는 날아댕겨.”
 강진=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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