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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년의 썸타는 경제]10억이면 동물원 동물 다 살 수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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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과천 서울대공원에서 암사자 두마리가 사육사가 던져준 먹이를 차지하기 위해 싸우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경기도 과천 서울대공원에서 암사자 두마리가 사육사가 던져준 먹이를 차지하기 위해 싸우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온비드 공매 상품으로 나온 사자·원숭이·라쿤

2007년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가 운영하는 자산처분시스템(온비드)에 사자가 매물로 나와 눈길을 끈 적이 있습니다. 서울어린이대공원이 내놓은 사자 4마리의 공매 시작가격은 1320만원. 집에서 반려동물(?)로 키우려는 일반인은 없겠지만, 다른 동물원이나 수출입업체들은 입찰에 참여할 수가 있었지요. 온비드에는 2015년 일본원숭이 2마리, 2016년에도 라쿤(미국 너구리) 3마리가 매물로 나오기도 했습니다. 동물원에서 지내는 동물들도 엄연히 거래 시장이 있는 '상품'인 셈입니다.

사자 4마리가 최소 1320만원 정도였다면, 호랑이·표범·코끼리·코뿔소 등 동물원에 모인 수백~수천 마리 희귀 동물들의 재산 가치는 얼마나 될까요. 어림잡아도 수십억~수백억원 정도는 돼 보입니다. 하지만 실제 동물원을 운영하는 기업의 회계장부를 뜯어보면 이런 예상은 빗나갑니다.

에버랜드에 사는 전체 동물 가치는 10억원 안팎

용인 에버랜드를 운영하는 삼성물산의 2015년 말 재무제표 주석을 보면 이 회사 동물 자산은 8억8800만원(순장부금액)으로 나와 있습니다. 삼성물산은 과거에는 동물과 식물을 나눠 자산 가치를 계산했지만, 2016년부터는 이를 모두 더해 기록하는 형태로 회계처리 방식을 바꿨습니다. 이 때문에 최근 연도의 정확한 동물 자산 규모는 알 수 없게 된 것이지요.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동물원 규모가 크게 변한 건 없기 때문에 대략 10억원 어치의 동물들이 살고 있을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집값이 좀 내렸다지만, 서울 강남 3구에 있는 20평대 소형 아파트 한 채 가격보다도 에버랜드에 살고 있는 전체 동물들 가격이 더 쌉니다. 좀 의아하지요?

해달 에디 [오리건 동물원 홈페이지=연합뉴스]

해달 에디 [오리건 동물원 홈페이지=연합뉴스]

동물원에서 태어난 새끼 동물은 자산 가치 '0원' 반영 

비밀은 동물 자산의 특이한 회계처리 방식에 있습니다. 우선 동물원을 돌아다니고 있는 동물이라고 해서 모두 재무제표에 잡혀 있는 건 아닙니다. 동물원이 시장에서 동물을 구입한 동물들만 매입 가격(취득원가)으로 자산 항목에 기록됩니다. 동물원 안에서 암·수가 정답게 노닐다가 태어난 새끼 동물들은 재무제표에 반영돼 있지 않습니다. 회계장부상 자산 가치가 '0원'인 아기 동물들이 관람객 앞에서 온갖 재롱을 떨며 동물원 운영사에 돈을 벌어다 주고 있는 셈입니다.

굳이 반영한다고 해도 말이나 사슴처럼 새끼를 한두 마리 정도만 낳으면 모를까, 매년 수백 마리씩 새끼를 칠 수 있는 햄스터나 셀 수 없이 많은 알을 낳는 곤충·물고기들의 경우에는 일일이 계산하는 게 불가능합니다.

2007년 4월25일 경기도 용인 에버랜드 사파리월드에서 태어난 아기호랑이 3마리가 일반에 공개됐다. [중앙일보DB]

2007년 4월25일 경기도 용인 에버랜드 사파리월드에서 태어난 아기호랑이 3마리가 일반에 공개됐다. [중앙일보DB]

'유형자산' 분류되는 동물, 기계·건물처럼 감가상각 

동물원이 직접 구입해 장부에 기록하게 되는 동물들은 살아 숨 쉬는 생명체이지만, 건물·기계장치처럼 유형자산으로 분류돼 있습니다. 동물은 눈으로 볼 수 있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형체가 분명하고, 이를 앞으로 돈을 버는 데(미래의 경제적 효익) 활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같은 동물이라도 소비자에게 팔기 위해 키우는 닭이나 돼지·한우 등은 이를 키우는 회사의 '재고자산'입니다. 이들은 호랑이·사자처럼 동물원 입장료 수익을 벌어다 주진 않고, 양계장이나 우리에 잠시 보관됐다가 '고기'로 내다 팔리는 것이 존재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좀 슬프지요.

동물원 재무제표상 유형자산으로 기록된 동물들은 건물이나 기계와 똑같이 처음 취득한 가치를 향후 쓸 수 있는 기간으로 나눠 감가상각합니다. 값비싼 기계나 건물을 이를 취득한 해에 한꺼번에 비용으로 처리하게 되면 회사가 영업을 못 한 것처럼 보이는 회계정보 왜곡 현상을 막기 위해 일정 기간으로 비용을 나눠서 털어내는 것이지요.

180년 사는 코끼리 거북도 5년만 산다고 계산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180년을 살 수 있는 갈라파고스 코끼리 거북이나 60년은 사는 아프리카 코끼리나 모두 5년만 산다고 가정하고 감가상각을 한다는 것입니다. 동물 종류별로 실제 수명을 계산해 회계처리를 하면 더욱 정확하겠지요. 하지만 사파리 안을 뛰어다니고 날아다니는 동물들을 일일이 파악해 평균 수명을 계산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국세청 직원도 동물원에 세무조사를 나온다면, 지레 포기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오랫동안 살 수 있는 동물들이 5년만 지나면 모두 회계장부상 가치가 '0원'이 되니 동물원 재무제표에 기록된 동물 자산의 가치는 우리 상식과 달리 적게 기록될 수밖에 없지요.

2014년 서울동물원의 최고 어른은 107살 난 갈라파고스코끼리거북이다.남미 에콰도르 갈라파고스제도에 사는 국제적 멸종위기종으로 거북 종류 중 몸집이 가장 크고 오래 산다. 평균 수명은 180~200년이다. 앞으로도 100년은 더 볼 수 있다.[사진제공=서울대공원]

2014년 서울동물원의 최고 어른은 107살 난 갈라파고스코끼리거북이다.남미 에콰도르 갈라파고스제도에 사는 국제적 멸종위기종으로 거북 종류 중 몸집이 가장 크고 오래 산다. 평균 수명은 180~200년이다. 앞으로도 100년은 더 볼 수 있다.[사진제공=서울대공원]

회계의 목적이 현실을 정확히 장부에 기록하는 것이라면, 이런 방식의 회계처리는 납득이 가지 않는 측면은 있습니다. 혹 동물원 경영자가 나쁜 마음을 먹는다면, 세금을 덜 내거나 사육사 임금을 덜 주기 위해 보유한 동물 자산을 일부러 축소 기록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자산이나 이익을 실제보다 적게 회계장부에 기록하는 것을 '역(逆) 분식회계'라고 하지요. 이런 문제는 앞으로 정보기술(IT)이 발전하면 보완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동물원 전체를 투시할 수 있는 카메라에 포착된 동물의 종류와 개체 수, 연령을 한꺼번에 계산해 줄 수 있는 인공지능(AI) 프로그램이 마련된다면 어떨까요? 인간의 한계로 계산할 수 없었던 전 세계 동물들의 가치도 함께 확인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김도년의 썸타는 경제

액수ㆍ합계를 뜻하는 썸(SUM)에서 따온 ‘썸타는 경제’는 회계ㆍ통계 분석을 통해 한국 경제를 파헤칩니다.

세종=김도년 기자 kim.don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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