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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충격 흡수력 뛰어나고 가격도 철제보다 낮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우즈베키스탄·인도 등 40개국에 기술 수출 타진… “가드레일 시장 판도 바꿀 게임체인저 되겠다”

유철 카리스 대표는 지난 2012년에 세계 첫 플라스틱 가드레일을 개발했다. / 사진:카리스

유철 카리스 대표는 지난 2012년에 세계 첫 플라스틱 가드레일을 개발했다. / 사진:카리스

얼마 전 아이돌그룹을 태운 차량이 도로 옆 가드레일을 들이받아 운전하던 매니저가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당시 승합차의 왼쪽 앞부분이 심하게 찌그러졌고 차와 부딪힌 가드레일도 심하게 부서졌다. 이렇게 도로 중앙에 설치된 가드레일은 운전 중에 부딪치면 큰 사고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박재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지난 2013년부터 5년 간 고속도로 가드레일에서 141건의 충돌과 추락사고가 일어났고 이 중 32명이 사망했다.

세계 첫 플라스틱 가드레일 개발한 유철 카리스 대표

운전자와 보행자의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설치된 가드레일은 대부분 철제로 만들어졌다. 철제 가드레일은 도로와 인도를 구분하는 턱이 낮아 차량 사고 때 철제 가드레일의 철판이 칼날처럼 차량으로 파고들어 차량에 탄 사람들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또 부식이 되고 녹이 슬어 주기적으로 보수·교체를 해야하는 번거로움도 있다.

철제 가드레일은 국내 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사고 때 안전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때문에 세계적으로 안전성을 높이기 위해 가드레일 설치 기준이 강화되고 있는 추세다. 특히 철제 가드레일보다 탑승자 보호성능이 강화된 폴리염화비닐(PVC) 가드레일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다. 세계 최초로 PVC 가드레일을 개발한 카리스는 세계적으로 호평을 받고 있다. 카리스는 PVC 가드레일, 방음벽, 토류판을 개발하는 도로 교통안전 전문 기업이다. 유철 카리스 대표는 2012년 세계 최초로 플라스틱 가드레일을 개발, 특허를 취득했다. 유 대표를 지난 4월 30일 경기도 의정부시에 자리한 카리스 본사에서 만났다.

화학 교과서 보면서 개발해

유 대표는 “플라스틱 가드레일은 사람·환경·경제를 모두 생각한 제품”이라며 “카리스는 국제적으로 공신력 있는 다양한 실험을 수없이 거치며 제품 안전성을 입증했다”고 말했다. 국토교통부와 도로교통공단에서 실시하는 강도·안전·충돌 테스트를 모두 통과했다. PVC 가드레일은 지난해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국제도로연맹 엑스포에서 ‘혁신제품상’을 수상한 데 이어 지난 2월에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신기술 제품을 개발·상품화한 기업에게 수여하는 ‘IR52 장영실상’도 수상했다.

그가 PVC 가드레일을 개발하기 시작한 건 10여 년 전이다. 유 대표는 경영학을 전공한 후 플라스틱 합성수지 업계에 평생을 몸담아왔다. 유리창이 창틀에서 빠지지 않도록 잡아주는 ‘하이섀시’ 특허 기술을 개발해 제법 큰 돈을 벌기도 했다. 하지만 후발주자들이 유 대표의 기술을 모방하며 업계 경쟁이 치열해지자 다른 사업 아이템을 찾아 나섰다. 한참 사업 구상을 하며 운전을 하던 중 도로 위에 끝없이 이어진 가드레일을 보고 눈이 반짝였다. ‘철제 가드레일을 PVC 소재로 바꾸면 어떨까?’ 유 대표의 뇌리를 강하게 스친 이 아이디어는 그를 새로운 사업의 길로 이끌었다.

하지만 제품 개발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강한 강도와 PVC 특유의 탄성을 갖춘 것에 더해 자동차 배기가스를 잡을 수 있는 기능까지 추가한 가드레일을 만드는 게 유 대표의 목표였기 때문이다. 그는 화학 교과서를 펴놓고 소재를 하나하나 연구했다. 화학 소재만 연구한 것이 아니다. 목표하는 강도와 탄성을 완성하기 위해 배합에 넣어보지 않은 재료가 없다. 심지어 왕겨, 야자수 가루, 감자녹말 등 식자재까지 실험 대상이었다. 독보적 기술을 개발하기까지 10여 년의 시간과 수십억원의 돈을 투자했다.

이런 노력 끝에 2012년 자체 개발한 세계 최초 플라스틱 가드레일 특허를 취득한 후 2016년 카리스를 설립했다. 이 제품의 특징은 특유의 벌집 구조를 기반으로 철제 가드레일보다 강도는 높지만 무게는 가벼운 게 특징이다. 유 대표는 “철제 가드레일에서 사고가 발생하면 차량이 충격을 흡수하지 못하고 절단면이 날카로워 차량을 관통하는 경우가 빈번하지만 플라스틱 가드레일은 리브구조라고 불리는 충격 흡수 구조로 탄성에 의해 충격을 흡수한다”고 말했다. 이어 “리브구조란 가드레일의 내부가 플라스틱으로 갈빗살처럼 공간을 두고 있는 것으로 흔히 생각하는 벌집 형태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고 설명했다.

PVC 소재 특성상 녹이 슬지 않아 유지·보수도 용이하다. 한국화학융합시험연구원(KRT)에 의뢰해 중성 염수 분무 시험을 한 결과, PVC 가드레일은 변색이나 녹 발생이 없었다. 다양한 색상으로도 생산할 수 있다. PVC 소재에 축광 물질을 배합해 자체적으로 빛을 발산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태양광 또는 인조광을 받으면 스스로 빛 에너지를 저장해 다시 내뿜는 원리다. 야간에도 가드레일이 은은한 빛을 발하며 위험 구간을 알려준다. 주문자가 원하는 색상은 무엇이든 구현 가능하다. 플라스틱 가드레일은 철제보다 가격이 약 30% 저렴한 것도 장점이다.

플라스틱 가드레일은 조달청에 독점적으로 공급하고 있다. 해변가의 지방도로들은 바닷바람에 부식되지 않는 플라스틱 가드레일의 특성을 지방자치단체 측에서 먼저 알아보고 접촉해 왔다.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판매되기 시작한 가드레일은 4월 전라남도 여수시, 5월 강화리조트 루지 트랙, 7월 경기도 화성시 해안도로, 10월 포천 레이싱 경기장, 12월 전라남도 송단 저수지 등에 설치됐다.

철제 가드레일에 비해 생산 과정이 간단하고 경제적이어서 해외에서도 인기다. 중앙아시아 최대 인구 보유국이면서 실크로드 중심국인 우즈베키스탄과 4월 19일 타슈켄트에서 우즈베키스탄 도로교통청과 10만km 가드레일 설치를 위한 본 계약을 했다. 우즈베키스탄 전역의 도로망은 약 18만3000㎞다. 유 대표는 “10만㎞ 가드레일 설치사업은 단계적으로 20년간 이어지며 규모가 약 10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고 말했다. 베트남에서도 1차적으로 종단 고속도로 1000㎞ 구간에 제품을 납품할 계획이다. 베트남의 전체 도로망은 10만㎞ 규모다.

우즈베키스탄 도로 10만㎞에 설치 예정

유 대표는 세계 222개국에 세워진 도로 3900만km를 잠재적인 시장으로 보고 있다. 이 중 해마다 5%의 도로가 재건설된다고 가정했을 때 세계 시장 규모는 약 106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한다. 현재 카리스는 충북 청주에 공장을 두고 있다. 제품 수요가 늘면서 가드레일 부속품 생산을 위해 이디와·오코스모스와 가드레일 생산과 관련한 양해각서(MOU)를 맺었다.

우즈베키스탄에서는 부속품 공급을 위해 지난 3월 우즈베키스탄 국영 도로공사와 합작 생산법인을 설립하기로 했다. 베트남에서도 합작 생산법인 설립을 추진 중이다. 유 대표는 “카리스는 우즈베키스탄 이외에 미국·인도 등 40개국에 기술 이전과 수출을 진행 중”이라면서 “전체 매출의 90%가 해외에서 나올 것”이라고 기대했다. 카리스는 올해 안으로 코스닥 특례상장을 추진할 계획이다. 상장 대표주관사로 신한금융투자를 선정했다.

김성희 기자 kim.sung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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