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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르기 민족 꿈꾼다" 그냥 데굴데굴 구르는 대학생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7명 정도 모여 한 명씩 구르는 걸 보고 충격을 받았다."

캠퍼스 곳곳에서 ‘데굴데굴’

지난달 14일 대학생 익명 온라인 커뮤니티에 이상한 목격담 하나가 올라왔다. 글쓴이는 "대학생 7명 정도가 세종대학교 교정에서 데굴데굴 구르고 있다"면서 "진지하게 다들 구르고 있었다"고 썼다. 글쓴이는 이들이 "람머스 동아리 멤버들"이라고 했다. 이들은 누구일까?

지난달 14일 익명 온라인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는 세종대학교 교정에서 구르는 학생들을 목격한 제보가 올라왔다. [사진 온라인 커뮤니티]

지난달 14일 익명 온라인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는 세종대학교 교정에서 구르는 학생들을 목격한 제보가 올라왔다. [사진 온라인 커뮤니티]

세종대 동아리 '람머스'는 오직 '구르기'를 목표로 만들어진 모임이다. 한국 최초다. 동아리 이름 '람머스'는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에서 몸을 둥글게 말아 회전하는 캐릭터에서 따왔다.

모임은 우연히 시작됐다. 세종대 소프트웨어학과 2학년 재학 중인 이정안(20)씨와 과 동기 3명이 대화를 나누다가 우연히 "한번 구르면 재밌지 않겠느냐"는 말이 나왔다.

이들은 바로 실천에 옮겼다. 이정안 씨와 친구들은 지난달 5일 세종대 교정에서 '첫 모임'을 시작했다. 세종대 캠퍼스 잔디밭, 콘트리트, 계단, 경사로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몸을 닥치는대로 굴렸다. 이씨는 "흥분됐고 재밌었다"고 말했다.

커뮤니티에 목격 글이 올라온 지난달 14일은 세종대 중간고사 시험 기간이었다. 이씨와 친구들은 시험 스트레스를 떨치고자 다시 한 번 구르기로 했다. 이번에는 함께 구를 사람을 모집했다. 다른 과 학생까지 10명 가까이 모였다. 이들은 세종대 광개토관 건물 앞에서 사뭇 진지한 자세로 데구루루 구르기 시작했다. 이색적인 광경을 목격한 학생들은 하나둘 온라인에 목격담을 올렸다. 구르는 대학생들에 대한 소문은 삽시간에 퍼졌다.

'람머스' 회원이 세종대학교 세종 이노베이션센터 엘레베이터 앞에서 구르기를 하고 있다. [사진 세종대 소모임 '람머스']

'람머스' 회원이 세종대학교 세종 이노베이션센터 엘레베이터 앞에서 구르기를 하고 있다. [사진 세종대 소모임 '람머스']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에서 몸을 둥글게 말아 회전하는 캐릭터 '람머스' [리그 오브 레전드 유튜브 영상 캡처]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에서 몸을 둥글게 말아 회전하는 캐릭터 '람머스' [리그 오브 레전드 유튜브 영상 캡처]

4명으로 시작한 소모임은 한 달여 만에 회원 수가 67명으로 늘었다. 초대 회장을 맡은 이정안 씨는 "이런 인기를 전혀 예상 못 했다"고 말했다. 경희대, 연세대에도 유사 모임이 생겼다. 지난 1일 서울 어린이대공원에서, 9일엔 세종대에서 잇따라 모임을 열었다. 현금 10만원을 상금으로 내걸고 구르기 경주도 했다.

이씨는 "앞구르기, 뒤구르기, 풍차 돌리기… 잘 구를 필요 없다. 그냥 구르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 실제로 회원 중 잘 구르는 이는 드물다. 영상을 보며 잘 구르는 방법과 구르기 적절한 '꿀 자리'에 대해 공유하고, 서로의 구르기를 평가한다. 회원들 전공과 학년은 다양하지만 잘 굴러보겠다는 열정은 뜨겁다고 한다.

신규 회원을 뽑을 때는 면접도 본다. 구르는 영상을 찍는 카메라 테스트도 거친다. 구르기에 대한 의지를 보는 일종의 검증 단계다. 잘 구르겠다는 마음만 있다면 100% 합격이다. 내부 규칙도 있다. 술 마시고 구르거나 사람들이 많은 곳에 굴러서 피해를 주는 행동은 금지돼 있다. 준비 체조도 필수다. 매월 회원들이 직접 뽑은 '베스트 구르기 상'도 수여하기로 했다.

이달 1일에는 서울 어린이대공원에 모여 구르기 연습, 단체 구르기, 구르기 경주도 진행했다. [사진 세종대 소모임 '람머스']

이달 1일에는 서울 어린이대공원에 모여 구르기 연습, 단체 구르기, 구르기 경주도 진행했다. [사진 세종대 소모임 '람머스']

이정안씨는 "함께 구르고 나니 시험공부에 대한 스트레스는 날아가고 공부만 보이기 시작했다"며 "구르기는 운동의 일종"이라고 말했다. "같은 뜻을 가진 학생들이 모여 함께 구르는 활동 자체에서 즐거움을 느낀다"고 자랑했다. 람머스 창립 멤버 우승현(19)씨는 "아기가 태어나 처음 구르기를 성공하는 일은 강렬한 기억"이라며 구르기의 의미를 설명했다. 이어 "그동안 이상하게 생각할까 시선이 걱정 돼 티 내지 못했지만 많은 사람들과 함께 구르면서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기뻤다"고 했다.

이들의 단기 목표는 대학마다 '람머스'가 생겨서 연합 동아리를 구성하는 것이다. 타 대학 학생들의 많은 연락을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이들의 최종 목표는 당차게도 '올림픽 정식종목' 채택이다.

"왜 안 되나요?" 이씨는 덧붙였다. "세계로 구르기가 전파돼 꼭 구르기의 민족이 되면 좋겠습니다."

이미쁨 인턴기자 lee.mippeu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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