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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글로벌 아이

시위 나온 10대들의 이유 있는 아우성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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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김성탁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김성탁 런던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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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5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하이드파크 주변 마블 아치. 잔디밭 곳곳에 텐트가 설치돼 있다. 열흘 넘게 기후변화 대응을 촉구한 ‘멸종 저항’ 시위대다. 워털루 브리지 등을 점거하다 경찰이 쫓아내자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오후가 되자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모여들었다. 15살 가브리엘은 “과거 세대의 실수 때문에 수명이 짧아지고 싶지 않아서 왔다”고 했다. 영국에서 두 차례 벌어진 등교 거부에도 참여했다는 그는 “기후변화 목표를 이루려면 정부가 엄격한 규정을 마련해야 하는데, 우리가 뭉치면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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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 빠지고 시위에 나오면 결석 처리되지만 참가할 가치가 있다는 반응이 나왔다. 12살 딸과 함께 온 교사 더글러스(사진)는 “기후변화는 모두가 뭔가를 해야 하는 문제”라며 “변화를 일으키는 중요성을 아는 게 학교 공부보다 큰 가르침일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영국을 포함해 세계가 소극적 대응만 하다가는 딸과 손주들이 살아갈 미래가 어둡게 된다”며 딸이 학교에 돌아가 친구들에게 시위에 대해 말해주기를 기대했다.

정부와 의회에 대한 불신도 대규모 시위의 한 원인이었다. 며칠간 텐트에서 생활한 19살 리디아는 “현재 민주주의 체제가 작동하지 않고 있다”며 “하원 의원 대다수는 부유한 상류층이자 토지 소유주들이라 정말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대변하지 않는다”고 쏘아 붙였다. 그래서 멸종 저항은 정부를 향해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진실을 말하고 화석연료를 줄일 강력한 대책을 시행할 것과 함께 ‘시민의회’를 만들자고 요구했다.

런던 시위에는 ‘등교 거부’ 환경 운동을 시작한 스웨덴 16살 소녀 그레타 툰베리도 참석했다. 연단에서 그는 “정치인과 힘 있는 사람들이 너무 오랫동안 기후변화나 생태계 문제를 방치했다. 외면하는 것을 더는 지켜보지 않겠다”고 목청을 높였다. 지난해 8월 국회의사당 앞 1인 시위에 이어 그가 시작한 금요 등교 거부 운동은 독일·벨기에·프랑스·영국·호주·일본 등으로 퍼졌다. 노르웨이 의원들의 추천으로 노벨평화상 후보에도 올랐다.

마블 아치에 있던 젊은이 중 몇몇이 시위 폐막식을 앞두고 빗자루와 솔, 물이 담긴 양동이를 가져왔다. 이들은 광장 바닥에 시위하며 그린 멸종 저항 상징 마크를 깨끗이 지웠다. 최근 유엔 생물다양성과학기구는 100만 종 이상이 멸종 위기라고 경고했다. 현존 동식물종의 8분의 1이다. 위협 요인 대부분은 인간이다. 고교생 가브리엘은 이런 메시지를 전해달라고 했다. “시간이 별로 없으니 지금부터라도 생각하고, 뭔가를 시작하세요.”

김성탁 런던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