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중앙시평

정치검찰이 경찰보다 낫다는 왜곡된 신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5면

고대훈 기자 중앙일보 기획취재1국장
고대훈 수석논설위원

고대훈 수석논설위원

“2017년 5월 10일은 진정한 국민통합이 시작된 날로 역사에 기록될 것입니다. 저를 지지하지 않았던 분도 진심으로 우리의 국민으로 섬기겠습니다. 힘들었던 지난 세월 국민은 이게 나라냐고 물었습니다. 대통령 문재인은 바로 그 질문에서 시작하겠습니다.”

역사 고비마다 정치력 발휘한 검찰 #적폐 청산 대상에서 공신으로 변신 #수사권 조정 통해 힘 빼지 못하면 #성공한 대통령으로 남기 어려울 것

2년 전 오늘, 문 대통령의 취임사를 듣던 많은 국민은 뭉클했다. 반목과 갈등, 분열과 불신으로 찢긴 사회를 “통합과 공존의 새로운 세상”으로 바꾸리라 믿었다. 문 대통령은 박근혜 정부를 붕괴시킨 권력의 사유화와 남용을 막아 ‘이게 나라다’로 돌려놓겠다고 다짐했다.

“대통령의 제왕적 권력을 최대한 나누겠습니다. 권력기관은 정치로부터 완전히 독립시키겠습니다. 그 어떤 기관도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할 수 없도록 견제 장치를 만들겠습니다.”

취임 직후 문 대통령은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검찰을 지목하고 ‘적폐 청산 1호’로 찍었다. 대한민국 검찰은 세계적으로 가장 강력하다. 직접 수사권을 비롯해 경찰 수사 지휘권·수사 종결권·영장 청구권·기소권·공소유지권에 이르기까지 수사와 재판에 관한 모든 권한을 틀어쥐고 있다. 수사할지, 죄가 있는지, 구속할지, 재판에 넘길지, 얼마 동안 감방에 가둘지 등 범죄 혐의자의 운명을 좌우한다. 해방 후 일제 시대 ‘칼 찬 순사’의 부활을 차단하려고 검사에게 힘을 몰아준 제도가 60년 넘게 이어져 왔다.

집권 전에 문 대통령은 검찰을 ‘주구(走狗)’, 사냥개로 봤다. “참여정부 이후 정치권력과 검찰의 결탁은 노골화됐고 정치검찰은 정권의 주구가 돼버렸다”는  인식이었다. ‘정치검찰’로도 규정했다. “검찰의 정치적 편향은 만성화되어 정치권력과 함께 통치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스스로 정치화된 것이다.” (문재인·김인회, 『검찰을 생각한다』).

역사의 고비마다 검찰은 수사가 아닌 정치를 했다. 검찰이 박근혜 정부 때 ‘정윤회 문건 파동’ 사건(2014년, 최순실씨의 전 남편 정윤회씨가 청와대 내 비선을 통해 국정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대로 파헤쳤다면 박근혜의 비참한 말로를 막을 수 있었다. 수사 당시 “권력 서열 1위는 최순실”이란 진술이 나왔고, ‘문고리 3인방’ ‘십상시(十常侍)’로 불리던 비선 실세의 국정농단에 대한 정보를 알고도 뭉갰던 게 검찰이었다.

이명박 정부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 일가의 640만 달러 수수 의혹 사건(2009년) 때 검찰이 ‘논두렁 시계’ 등 망신주기식 수사를 자제했더라면 노 전 대통령의 비극적 최후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문 대통령은 “과거 권력에 대한 가혹한 수사, 거의 복수에 가까운 수사”라고 했다. ‘변호사 문재인’을 정치인으로 불러낸 게 검찰이었다.

현 정부에선 검찰의 정치화는 더 진화했다. ‘혁명 검찰’을 자임하며 지난 2년 동안 적폐 수사의 최선봉에 나서 질주했다. 정예 검사 100여명이 총동원돼 유례없는 초토화 작전을 폈다. 편파·표적·하명(下命) 수사가 난무했다. 적폐 명부에 오르면 작은 허물이라도 탈탈 털고, 그래도 안 되면 직권남용이나 파렴치범으로 걸어 쓰러뜨렸다. ‘저를 지지하지 않은 분’이 지금 어떤 신세인지 굳이 말할 필요조차 없다. 막스 베버의 표현을 빌자면, 국가가 독점한 ‘합법적 폭력(legitimate violence)’을 유감없이 휘둘렀다. ‘적폐 검찰’은 칼잡이 노릇을 톡톡히 해낸 덕에 정권의 공신으로 둔갑했다.

지난 세월 수많은 사건에서 검찰의 근육질을 생생히 목격했다. 2년간의 적폐 수사는 가장 강렬했다. 이는 그들의 권한을 분산·약화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말한다. 검찰의 권한 중 일부를 떼 경찰에 독자적인 수사권과 수사종결권을 주는 검경 수사권 조정안은 그래서 의미가 있다. 문무일 검찰총장은 “국민의 기본권 보호”와 “민주주의 원리에 반(反)한다”는 이유로 반대한다. 청와대와 조국 민정수석이 주도한 조정안이란 이유로 진영논리에 잡혀 검찰 주장을 두둔하는 건 어리석다. ‘권력의 시녀’를 바로잡는 데 진영이 따로 없다.

검찰에서는 경찰의 자질이 떨어진다느니, 고삐 풀린 경찰이 된다느니, 인권 침해가 우려된다느니 하는 부정적 여론을 흘린다. 그렇다면 검찰이 수사 지휘를 한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은 왜 부실투성이로 끝났나. 검찰이 직접 나선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에서 청와대 개입 의혹은 왜 말끔히 해소되지 않았나. ‘주식 대박 검사’ ‘떡값 검사’ ‘색검(성상납 받은 검사)’은 다 뭔가. ‘인권’ 운운하며 검찰의 경찰 지배를 주장하는 것은 개혁 저항의 명분에 불과하다. 그저 검찰의 무소불위 권한에 손대지 말라는 핑계다. 칼잡이 검사가 칼 찬 순사가 돌아온다고 국민에게 겁을 주는 격이다.

“불행한 대통령의 역사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를 시작으로 이런 불행한 역사는 종식되어야 합니다. 국민과 역사가 평가하는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집권 3년 차다. 불행한 대통령의 역사 뒤에는 정치검찰이 있었다. 누구나 그런 전철을 밟을 수 있다. 취임사의 다짐처럼 성공한 대통령을 꿈꾼다면 이제 검찰의 벽을 넘어야 한다. 수사는 검찰이 경찰보다 낫다는 왜곡된 신화를 깨야 정치검찰도 사라진다.

고대훈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