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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주 "정치가 평화만든다며 자꾸 군대를 동원하니 위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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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장세정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장세정의 직격 인터뷰]

충남 천안에서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육사에 진학해 '기갑 주특기 최초의 4성 장군'이 됐지만 한순간에 '범법자'로 추락했다. 이른바 '공관병 갑질' 의혹 사건 때문이다. 부하 병사들을 하인 취급하며 갑질을 일삼았다는 의혹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았던 '부도덕한 육사 출신 대장'이 1년 9개월여 만에 극적으로 살아 돌아왔다. 들끓던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군검찰이 그를 구속하는데 동원했던 뇌물수수 혐의도 벗었다.
 국방부 영창에서 80여일을 보냈던 그는 무죄 판결을 받은 직후 후배 장교와 장성 등 100여명에게 '뒤늦은 전역사'를 e메일로 뿌려 큰 반향을 일으켰다. 생지옥을 체험한 박찬주(61·육사 37기·예비역 대장) 전 제2작전사령관을 만났다.

'공관병 갑질' 논란을 빚은 박찬주 전 제2작전사령관(대장)이 2017년 8월 8일 국방부청사 인근 군검찰단으로 소환돼 조사실로 이동하고 있다. 최근 2심에서 뇌물 혐의 무죄를 선고 받았다.[중앙포토]

'공관병 갑질' 논란을 빚은 박찬주 전 제2작전사령관(대장)이 2017년 8월 8일 국방부청사 인근 군검찰단으로 소환돼 조사실로 이동하고 있다. 최근 2심에서 뇌물 혐의 무죄를 선고 받았다.[중앙포토]

 -'기갑 출신 최초 4성 장군'으로 승승장구하다 구속됐는데.

"대한민국 4성 장군이 어느 날 갑자기 포승줄에 묶였고, 국방부 지하 영창 2~3평 독방에 80여일간 갇혔다. 처음 3일 정도는 글씨도 읽을 수 없을 정도로 공황 상태였다. 내가 반역죄·반란죄를 지었으면 몰라도 이렇게까지 할 수가 있느냐고 국방부에 항의했다. 군에서 군사전략가라는 명성을 갖고 있었는데 나 자신에 대해선 일주일 앞도 예측하지 못해 자괴감도 들었다. 그래도 희망을 가졌던 것은 뇌물죄니 뭐니 이게 나에겐 너무 뜬금없는 것이었고 진실이 살아있다면 충분히 헤쳐 나갈 수 있다는 믿음이 있어 견뎠다.영창 벽에 성경 구절을 써 붙이며 '죽음의 강'을 건너면서 오히려 나는 더 강해졌다.”

 -전군에 공관이 70여개인데 유독 박 장군에게 갑질 의혹이 제기된 이유는 뭔가.

“그게 나도 의문이다. (나를 고발한) 군 인권센터에 물어봐야지. 군대라는 게 지휘관은 거의 어항 속 금붕어 같은 존재다. 기무·헌병·감찰이 다 들여다보고 있다. 만약 신체적으로 뭘 어떻게 했다고 하면 금방 기무부대 귀에 들어간다. 주변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많이 하더라. 나는 이 정권에 미운털이 박힌 박근혜 전 대통령의 동생 박지만의 육사 37기 동기이고, 박 전 대통령 안보실장을 지낸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의 독일 육사 후배다. 이 정부가 비판한 사드(THAAD) 배치 총책임자여서 그렇게 됐다는 말도 있는데 여전히 미스터리다."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사드 배치의 정책 결정권자는 박 전 대통령이었다.

['공관병 갑질' 의혹 무죄 받은 박찬주 전 육군 대장] #사드 배치로 뭔가 꼬투리 잡힌 듯 #현역 후배들 "요즘 엎드려 있다" #정치적 목적 위해 군대 와해 안 돼 #강한 군대 희생한 편한 군대는 곤란 #병사들 훈련과 휴식의 조화가 필요 #군인의 자기 상관 배신 옳지 않아 #대통령, 군통수권자 개념 학습 부족 #작전 라인 비육사 3명 군심에 문제

"정확히 말하면 나와 토마스 밴달 미 8군 사령관이 현장 배치를 지휘한 공동책임자였다. 특히 나는 '방어용 무기인 사드를 배치하는 데 대한 정치적 의사결정을 확실하게 해야 한다'는 강성 발언을 했다. 뭔가 꼬투리가 잡힌 듯하다."

 실제로 2016년 말과 2017년 초 탄핵 논란이 계속되는 와중에 사드 배치 이슈는 정치적으로 매우 민감했다. 결국 군은 조기 대선 투표가 있기 직전인 2017년 4월 26일 사드를 전격 배치했고, 당시 문재인 후보 진영은 강하게 반발했다.

 -부인의 갑질 혐의는 불구속기소 됐다.

"감금과 폭행은 일방적 진술이다. 한집에 살면서 위생관리가 안 되면 어른이 야단을 치지 않나. 어머니가 자식을 나무라는 그 이상은 절대 아니었다. 아내가 기소된 혐의와 관련된 공관병은 공관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영창에 갔다 쫓겨난 경우다. 그동안 병사와 관련된 일이라 침묵을 지켰는데 이제 법정에서 진실을 밝힐 것이고 무죄를 확신한다. 공관병은 군 편제표에 따라 공관 관리가 정해진 임무다. 공관병은 규정에 따라 공관 청소를 한 것이고 조리병은 음식을 만든 거다. 전투병을 데려다 부려먹었다는 것은 완전 오해다."

 -갑질 논란에 휘말리면서 든 생각은.

"군인이 자기 조직에서 자기 상관을 배신하고 그러는 거는 좋지 않다. 또 그런 행위를 옹호하고 감싸는 것도 좋은 문화가 아니다. '그럼 니 마누라가 밥하면 되지 않느냐'고 하는데 군인 아내가 무슨 죄가 있어서 8명이나 되는 간부들 밥을 다 해주나.”

 -군 안팎의 평판을 들어보니 '사익을 추구하지는 않지만, 부하들에게 사무적으로 대한다'고 하던데.

"다른 사람이 어려움에 부닥쳤을 때는 지나치지 못하는 성격이다. 다만 군이 임무를 수행하는데 온정주의로 흐르고 '좋은 게 좋다'고 하면 조직을 약화하니까 엄격하게 기강을 세우는 걸 나쁘다고 보기 어렵다. 내 성격을 어떻게 바꾸겠나. 사교적이진 않지만, 사람을 괴롭히는 스타일은 결코 아니다."

박찬주 전 육군 대장이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갑질 의혹을 벗기까지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박찬주 전 육군 대장이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갑질 의혹을 벗기까지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김영란법 위반으로 벌금 400만원을 선고받았다.

“벌금 400만원이라고 하니 내가 보직 변경된 부하에게서 400만원을 받은 것으로 오해하는데 그게 아니다. 대가 없이 도와준 행위에 대한 처벌로 받은 벌금 액수가 400만원이다. 형편이 어려운 후배 군인의 보직을 변경해줬다고 벌금을 받았지만, 인간적으로 후회하지는 않는다. 이 또한 대법원에서 무죄가 나올 거다.”

 -사건 당시 송영무 국방부 장관과는 과거에 합참 전략본부장과 군사전략과장으로 같이 근무한 인연이 있는데 도와주지 않았나.

"외국에서도 고위 장성 비위가 발생하면 제일 먼저 하는 게 민간인 신분 전환이다. 제복의 명예를 보호해주는 전통이다. 현역 대장을 이렇게 처리하면 안 된다고 송 장관이 당시에 청와대에 할 말을 해야 했는데 방관했다. 대장이 보직에서 물러나면 민간인인데 군사재판에 넘긴 것은 헌법 27조 위반이다. 직권 남용과 사법권 남용은 언젠가 진실과 책임 소재가 밝혀질 거다."

 박찬주 예비역 대장은 e메일 전역사에서 "지금은 군의 정치적 중립성이 위협받는다"고 주장해 반향을 일으켰다.

기갑 주특기 최초의 4성 장군인 박찬주 예비역 대장이 패튼 전차 위에 올라섰다. 우상조 기자

기갑 주특기 최초의 4성 장군인 박찬주 예비역 대장이 패튼 전차 위에 올라섰다. 우상조 기자

 -군의 철저한 정치적 중립을 역설한 이유는.

"과거에는 군이 정치에 개입했다면 지금은 정치지도자가 군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이 문제다. 대통령이 '서해 수호의 날'에 2년 연속 불참한 것을 군은 민감하게 받아들인다. 대통령은 대통령과 군 통수권자라는 두 개의 모자를 쓰고 있다. 그런데 대통령이 군 통수권에 대한 개념 학습이 없는 것 같아 안타깝다. 군 통수권자가 장수를 대하는 방법이 서툴다는 뜻이다."    

 -전역사에서 "평화 만들기(Peace-making)는 정치의 몫이고 평화 지키기(Peace-keeping)는 군대의 몫"이라고 했다.

"평화를 지키지 못하면서 평화를 만들면 큰일 난다. 지금은 정치인들이 군대를 자꾸 평화 만들기에 동원한다. 안보 측면에서 대단히 위험하다. 군대는 고유의 일을 하게 해줘야 맞다. 군대를 와해시키면서까지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려고 하면 안 된다. 군이 더는 고통받으면 안 된다"

 -'정치가 군을 오합지졸로 만들어 패전국 군대 같다'는 말도 나온다.

"후배 중령·대령들에게 '요즘 어떻게 지내냐'고 물으면 이구동성으로 ‘엎드려 있다'고 말한다. 전투력과 싸울 의지가 약화하는 게 지금 가장 큰 문제다. 강한 군대라고 해서 무조건 힘든 군대는 아니다. 일부러 힘들게 해서도 안 된다. 강한 군대를 희생하면서 편한 군대를 만들어서도 안 된다. 훈련과 휴식의 조화가 필요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군 장성 진급 및 보직신고식을 마친 뒤 청와대 접견실로 이동하고 있다. 앞줄 왼쪽부터 박한기 신임 합참의장, 문 대통령, 황인권 제2작전사령관, 김용우 육군참모총장. [청와대 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군 장성 진급 및 보직신고식을 마친 뒤 청와대 접견실로 이동하고 있다. 앞줄 왼쪽부터 박한기 신임 합참의장, 문 대통령, 황인권 제2작전사령관, 김용우 육군참모총장. [청와대 사진기자단]

 -문재인 정부의 군 인사를 어떻게 보나.

"비육군· 비육사만 중용하는 인사다. 군 작전을 이끄는 합참의장, 전방을 담당하는 지상작전사령관, 제2작전사령관 등 작전 라인 3명이 모두 비육사인 것은 큰 문제다. 이들 3명은 훌륭한 군인이지만 작전경험이 부족하고 군심을 결집하는 데 한계가 있다. 육사 출신 장성을 배제한 것은 9·19 군사합의를 강행하려는 의도라는 의문도 든다."

 -육사 출신 군 주류가 기득권을 누린 반통일·냉전 세력이란 비판도 있다.

"일부 오해의 소지가 있었다. 반통일 세력이라는 프레임을 씌우는데 달리 말하면 국가수호세력 아닌가. 국가수호에 대한 확고한 바탕 위에서 통일을 추진하면 누가 뭐라고 하지 않겠지만,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훼손하면서 통일을 추구하는 건 잘못이다."

 -독일 유학파 출신인데 동서독 통일과정에서 군의 역할은.

"분단에서 통일로 가는 과정에서 군사통합이 안되면 나머지 모두가 어긋난다. 군사통합이 원활히 이뤄져 아무 불상사가 없는 그 자체가 통일에 상당히 기여를 하는 거다."

 -앞으로 계획은.

"군인권센터를 인수해 제대로 운영해보고 싶은 생각도 있다. 군인권센터 때문에 병사들이 걸핏하면 지휘관을 고발하고 지휘관들은 대충 임기나 때우자는 풍조가 만연해 있다. 독일에도 유사한 단체가 있지만 지휘관을 골탕 먹이지 않고 아주 건전하게 운영하면서 상생한다. 후배 생도들에게 세계전사를 가르쳐보고 싶은 소망도 있다."

기갑 주특기 최초의 4성 장군인 박찬주 예비역 대장이 패튼 전차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기갑 주특기 최초의 4성 장군인 박찬주 예비역 대장이 패튼 전차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장세정 논설위원

장세정 논설위원

장세정 논설위원 zhang@joongang.co.kr

이정원 인턴기자가 인터뷰 정리 작업에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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