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발사체냐 미사일이냐
북한이 지난 4일 신종 탄도미사일 발사 성공으로 치명적인 위협이 되는 탄도미사일 3종 세트를 완성했다.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에 이은 마지막 고리다. 세 종류 모두 유사시 판을 바꿀 수 있는 게임 체인저다. 그런데도 신종 미사일을 두고 ‘발사체’라는 주장과 ‘탄도미사일’이라는 주장이 엇갈리고 있다. 어느 주장이 맞는 걸까. 국방부와 국가정보원은 엿새나 지나도록 이 무기를 분석 중이라고 한다. 정말 몰라서인가. 미국과 일본 정부도 모호한 태도였다. Q&A로 알아본다.
3종 세트=새 미사일, SLBM, ICBM #북 발사체, 미사일 요소 모두 갖춰 #한·미, 성과 훼손 우려해 모호 입장 #패트리엇·사드 기지, 미 항모 위협
발사체인가 미사일인가
북한은 이 무기를 발사한 뒤 “전술 유도무기”라고 밝혔다. 지상 발사 ‘유도무기’를 영어로 직역하면 ‘missile(미사일)’이다. 탄도미사일은 사정거리가 1000㎞ 이하이면 전술용이다. 북한 발표대로라면 전술 미사일을 쏜 것이다. 진짜 그런가. 미사일의 사전적 정의는 ‘자체 추진력을 가진 발사체 + 유도장치’를 가진 무기다. 이 기준으로 보면 자체 추진력과 유도장치가 없는 야포탄이나, 추진 로켓은 있지만 유도장치가 없는 방사포탄은 미사일이 아니다.
북한이 이번에 강원도 원산에서 발사한 것은 240㎞를 날아가 함경북도 화대군 무수단리 앞바다 바위섬을 명중했다고 한다. 현재 기술로는 발사체가 이처럼 먼 거리를 비행하려면 자체 추진로켓이 반드시 필요하다. 실제 북한이 공개한 발사 사진에도 추진력을 내는 불꽃이 발사체 로켓 꽁무니에 보였다. 또한 원거리에서 작은 바위섬을 맞히려면 유도장치가 필수다. 따라서 이번에 쏜 발사체는 북한 발표대로 ‘전술 유도무기(미사일)’가 맞다. “조지프 던포드 합참의장이 ‘북한이 로켓과 미사일을 쏘고 있다’고 보고했다”는 패트릭 섀너핸 미 국방장관의 뒤늦은 증언(8일 미 상원 청문회)이 이를 뒷받침한다.
남은 문제는 유엔 안보리가 북한에 대해 발사를 금지하는 탄도미사일이냐다. 금지 대상이 아닌 순항(크루즈)미사일은 일반적으로 고도 100m 이하를 아음속(음속 이하)으로 비행한다. 하지만 이번엔 탄도미사일 궤적처럼 고도 50㎞를 초음속으로 날았다. 이런 고도와 속도의 특성으로 북한이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면 한·미 레이더와 인공위성이 즉시 파악한다. 미사일의 가속도와 궤적을 분석하면 종류까지 곧바로 알 수 있다. 합참이 처음에 미사일로 발표한 이유다. 한반도 상공의 적외선탐지위성(DSP)은 중국에서 발사한 탄도미사일까지 표시해준다. 결국 북한이 쏜 발사체는 ‘전술 탄도미사일’이다. 이에 따라 북한은 ‘탄도미사일 기술을 활용한 어떠한 발사도 할 수 없다’는 유엔 안보리 결의안을 위반한 것이다. 도발 행위다.
탄도미사일인데 밝히지 않는 이유는
한·미 정부의 이해가 맞아떨어져서다.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는 정부가 강조해온 ‘한반도에서 총성이 멎었고… 평화 조성’에 배치된다. 당장 인도적인 대북지원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래서 합참이 처음엔 ‘미사일’로 발표했다가 40분 만에 ‘발사체’로 수정했다. 미사일이라는 뜻이 ‘서울시 중구 서소문’이라면 발사체는 ‘서울’이라 말할 정도로 포괄적이다.
미국도 모호한 태도를 취한 이유는 트럼프 대통령의 성과 훼손 때문이다. 그는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와 핵실험 중단을 자신의 공으로 치부했다. 그런데 북한이 발사한 게 미사일이라고 하면 자신의 ‘자랑’을 스스로 깍아내리는 셈이 된다. 미사일로 인정하면 ‘대북제재 강화→북한과 대치 국면→북한의 추가 도발’ 사이클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란과 베네수엘라 사태도 작용한 것 같다. 베네수엘라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을 축출하기 위한 야권의 군사봉기가 실패하자 미국의 군사개입설이 나오고 있다. 미국은 베네수엘라 난민을 돕기 위해 해군 병원선을 보내기로 했다. 또 이란의 핵무기 개발 재개 가능성 발언에 미국이 항공모함 에이브러햄 링컨을 급파했다. 전운이 감도는 국제정세 속에 트럼프 대통령은 전선 확대를 원치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미사일’이라고 적시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는 지난 5일 ABC 방송에서 ‘북한이 발사한 게 무엇이냐’는 질문에 “중장거리 미사일이나 ICBM은 아니다”고만 말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그의 말은 북한이 발사한 단거리 (탄도)미사일은 미국에 위협이 안 된다는 의미로 들린다. 큰 문제가 아니라는 식으로 질문의 초점을 피했다.
오히려 놀란 측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으로 보인다. 북한 스스로 ‘전술 유도무기(미사일)’라며 사진까지 공개했는데 주변에서 인정해주지 않아서다. 그 이유는 근신 중인 학생이 교칙을 또 위반했는데 더 심한 벌칙을 줄 수 없는 상황이어서다. 북한이 비핵화 궤도를 이탈하지 않도록 애쓰는 모습들이다. 하지만 북한이 9일 또다시 미사일을 발사한 만큼 회초리가 날아가지 않을까.
우리에게 치명적인 신종 위협인가
북한이 발사한 탄도미사일은 러시아의 최신 탄도미사일을 모방했다. 현재로서는 한·미군이 보유한 패트리엇과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로 방어할 수 없다고 한다. 미사일 전문가 권용수 전 국방대 교수에 따르면 이 미사일의 원형은 러시아의 이스칸데르-M(SS-26)이다. 러시아는 운용 중인 토츠카(OTR-21)와 오카(OTR-23)미사일을 교체하기 위해 SS-26을 개발했다. 2006년 생산에 착수, 내년까지 배치를 완료할 예정이다. 북한은 토츠카 미사일을 본떠 KN-02(독사) 미사일을 만들었고, 이번엔 SS-26을 또 카피했다.
SS-26은 일반 군사표적은 물론, 방공미사일기지와 항공모함까지 타격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이에 따라 이 미사일은 종 모양의 포물선을 그리며 비행하는 기존의 탄도미사일과는 전혀 다르게 기동한다. ▶1단계로 수직발사 직후 탐지를 피하기 위해 측면 가스 분사로 6∼50㎞의 낮은 고도를 비행하다 ▶2단계로 공격 직전 갑자기 최고도로 솟아오른 뒤 ▶3단계 회피기동으로 요격을 피하면서 정밀타격한다. 비행 중에도 순항미사일처럼 궤도를 바꿔 다른 표적을 공격할 수 있다. 속도는 마하 6∼7에 최대 500㎞를 날아가는데 명중오차는 5∼7m다. 이런 성능으로 유럽에선 이미 골칫덩어리다. 미국도 익히 알고 있다.
북한이 러시아제 SS-26을 얼마나 완벽하게 베꼈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 하지만 SS-26과 흡사하다면 현재 우리 능력으로 방어에 속수무책이다. 유사시 파견되는 미 항모도 위험하다. 더구나 이 미사일엔 710∼800㎏의 핵탄두도 장착할 수 있다. 고체연료를 사용해 5∼16분 만에 2발을 연속 발사할 수 있다. 발사준비에 1시간쯤 걸리는 액체연료형 탄도미사일에 대비한 우리 킬체인은 완전히 새로 짜야 할 판이다. 더구나 이 미사일은 레이더에 탐지되지 않는 저고도로 비행하다 공격지점에선 갑자기 솟구친 뒤, 회피기동과 함께 거의 수직으로 내려온다. 패트리엇으로 요격할 여유가 없다. 고도 40㎞ 이상 표적을 요격하는 사드도 무의미하다.
대책은 없나
김용현 전 합참 작전본부장은 “북한군이 작전에 들어가기 전에 제거하는 게 최선”이라고 말했다. 북한의 신형 미사일 기지를 미리 파악해두었다가 전개하기 전에 육군 전술지대지 미사일(TSSM·명중오차 1.2m)이나 F-35 스텔스기로 직접 타격하는 방법이다. 또는 북한군이 미사일을 전개했어도 발사 전에는 제거해야 한다. 이와 함께 김 전 본부장은 “육군 저고도 탐지레이더를 보강하고 공중조기경보통제기를 연동해 탐지력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민석 군사안보연구소장 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