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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진단 극과 극…서강학파 “소주성은 오류”, 학현학파 “더 속도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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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10일 문재인 정부 출범 2주년을 앞두고 국내 저명 학자들이 같은 주제로 전혀 다른 색깔의 주장을 펼친다. 하나는 성장을 중시하는 ‘서강학파’가 이끄는 서강대 남덕우기념사업회의 ‘문재인 정부 2년, 경제를 평가하다’ 토론회(이하 토론회). 다른 하나는 균형성장론을 내세우는 ‘학현학파’가 주축인 서울사회경제연구소의 ‘문재인 정부 2년, 경제정책의 평가와 과제’ 심포지엄(이하 심포지엄)이다.

각각 文정부 2년 평가 토론회·심포지엄 #주제 같지만, 서로 다른 방향으로 비판

토론회와 심포지엄 모두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냈지만, 학회의 색깔이 다른 만큼 비판의 ‘방향’은 극명히 엇갈렸다. 토론회에서는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등 소득주도성장 정책이 시장 경제와 고용 환경에 어떤 부작용을 일으켰는지 짚는다. 반면 심포지엄에서는 정부의 개혁 의지가 약해지면서 성과가 기대에 못 미친다는 평가가 나왔다. 서강학파가 소주성의 속도 조절을 위해 고삐를 늦출 것을 주문했다면, 학현학파는 반대로 더욱 속도를 내라며 채찍질을 하는 모양새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서강학파는 남덕우 전 국무총리와 이승윤ㆍ김만제 전 경제부총리 등 서강대 교수 출신들이 이끈 학자ㆍ관료 집단으로 박정희 정부 때부터 정부의 수출 주도, 중화학공업 중심의 정책을 진두지휘해 왔다. ‘소주성은 근거 자료와 논리가 미흡해 되레 경기 위축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고 주장하던 서강학파는 최근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 수위를 높이고 있다.

대표적 인물이 김광두 서강대 석좌교수다. 문재인 대통령의 ‘경제 멘토’로 현 정부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을 역임한 그는 페이스북과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소주성에 대해 날 선 비판을 가하고 있다. “생산성 향상이 동반되지 않은 최저임금 인상 등 포퓰리즘 정책이 양극화를 심화시킨 결과를 초래했다”, “경제 체력이 점점 약화하고 있고 경제 활력마저 떨어져 어두운 터널 속으로 들어가고 있는 형국”, “IMF의 조언을 핑계로 복지 중심의 비생산적 단기대책이 양산될까 두렵다” 등이 그가 최근 두 달 새 쏟아낸 ‘돌직구’ 발언들이다. 통계청장을 역임한 이인실 한국경제학회장(서강대 교수)도 소주성에 대해 계속 쓴소리를 던지고 있다

지난 2월 경제학 공동학술대회에서는 날카로운 심층분석이 곁들여졌다. 최인ㆍ이윤수 서강대 교수는 ‘신정부 거시 경제 성과의 실증 평가’라는 주제 발표에서 소득주도성장이 목표한 효과가 발생하지 않은 것으로 분석했다. 정책 추진 전인 2013년 1분기∼2017년 2분기와 이후인 2017년 3분기∼지난해 3분기까지 경제 지표를 비교한 결과 투자 성장률은 5.14%나 감소했다. 국내총생산(GDP)와 고용 성장률도 같은 기간 각각 0.13%, 0.16% 줄었다. 이는 분기 기저효과를 제거해 장기균형 성장률을 추산한 결과다.

서강학파 "소주성 전제 '임금 없는 성장'은 해석상 오류" 

그나마 민간 소비성장률은 1.14%포인트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으나 이는 수입품 소비가 늘어난 결과로 내수에 미치는 효과는 적은 것으로 분석했다. 이윤수 교수는 “소득주도 성장이 나타나려면 임금 상승이 국내소비 증가, 소득 증가로 이어져야 하는데 내수증진 효과가 작았다”고 풀이했다.

9일 열린 토론회에서는 한발 더 나아가 소주성의 핵심 전제가 된 ‘임금 없는 성장’에 대한 비판이 나왔다. 박정수 서강대 교수는 ‘한국경제의 노동생산성과 임금’ 주제 발표에서 “실질 임금상승률이 취업자 1인당 실질 GDP 증가율보다 낮았다는 (박종규ㆍ장하성ㆍ홍장표 등의) 기존 문헌 주장은 ‘해석상의 오류’에서 출발한 것임을 확인했다”며 “오류를 교정한 결과 취업자 1인당 GDP 증가율과 임금증가율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기존 경제 성장 속도보다 가파른 임금 인상을 추구하는 소주성 정책은 재검토돼야 한다고 쐐기를 박은 것이다.

서강학파로 분류되지 않는 교수들도 이날 토론회에서는 입을 맞췄다.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학과 교수는 현 정부의 ‘J노믹스’를 ‘무모한 경제 실험’으로 지목, 이 때문에 한국 경제가 위기 상황에 부닥쳤다는 주장을 폈다. 이 교수는 “소득(임금) 주도 성장은 세계가 노동자 연대로 단결할 때만 가능한 정책”이라며 “초등학생이나 믿을 논리의 비약”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패널 토론자로 나온 옥동석 인천대 무역학과 교수는 정부가 분배를 통한 성장을 기대하기보다 성장과 분배 정책을 명확히 구분할 것을 주문했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반면, 서강학파의 대척점에 있는 학현학파는 서울대 경제학과 출신으로 분배경제학을 가르쳤던 변형윤 서울대 명예교수를 따르는 진보 개혁적 경제학자들의 모임이다. 학현은 변 교수의 아호다. 학현학파는 이번 정부와 인연이 깊다. 문 정부 초대 경제수석을 맡아 소득 성장정책의 이론적 바탕을 제공한 홍장표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 위원장, 김광두 석좌교수에 이어 임명된 이제민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 강신욱 통계청장, 원승연 금융감독원 부원장 등이 학현학파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도 학현과의 유대가 깊다

10일 심포지엄을 여는 서울사회경제연구소는 학현연구실이 확대 개편된 곳으로 여전히 변형윤 명예교수가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9일 사회경제연구소가 심포지엄에 앞서 먼저 공개한 발표 자료에서 변 이사장은 “문재인 정부는 그동안 소득주도 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라는 3대 핵심 경제정책을 통해 모두가 잘사는 나라를 만들려 했다”며 “정책을 펴가는 과정에서 과도하거나 부족한 면이 없지 않은지 생각해 볼 일”이라고 심포지엄 개최 목적을 밝혔다.

주상영 건국대 교수는 ‘소득주도성장의 정책 프레임워크와 주요 정책’이라는 발표문에서 소주성에 대해 “노동에 대한 대가를 공정하게 지불하는 시장 관행을 정착시키고, 국가가 앞장서서 사람에 투자함으로써 소득ㆍ소비ㆍ투자가 선순환하는 국민경제의 발전과정”이라고 정의했다. 그러면서 “소주성의 등장을 계기로 불평등을 축소하기 위한 정책적 노력이 장기적 성장으로 이어진다는 확신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심포지엄에서는 문 정부의 진보ㆍ개혁 정책이 후퇴하고 있다는 질책이 더 많이 나왔다. 경기침체에 대응하고자 대기업 중심의 투자 활성화와 규제 완화를 추진하는 등 경제정책이 과거로 회귀한다는 것이다

친정부 학현학파 "재벌개혁 포기", "혁신성장 효과 단기적"

박상인 서울대 교수는 ‘문재인 정부의 공정경제정책 평가와 과제’ 발표문에서 “입법의 어려움을 핑계로 사실상 재벌개혁은 포기한 상태”라며 “ 오히려 문재인 정부는 2018년 지방선거 이후로 친재벌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재벌개혁과 노동개혁을 동시에 추구함으로써 재벌과 노조에게 서로 양보와 동의를 끌어내야 한다”고 덧붙였다.

윤홍식 인하대 교수는 “소득불평등이 확대되는 이유 중 하나인 재벌 대기업이 주도하는 수출을 위한 성장전략은 더 강화됐다”며 “사회보장제도와 사적 자산 축적에서 노동시장의 지위에 따른 불평등은 미세한 변화를 제외하면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다”고 평가했다.

정부가 소주성의 보완책으로 추진하고 있는 혁신성장정책에 대한 혹평도 나왔다. 박규호 한신대 교수는 “규제완화는 대기업 투자를 늘릴 수는 있지만 다 혁신적인 것은 아니다”라며 “단기적인 효과에 그치면서 기존 방식의 온존 또는 강화를 통해 혁신적 성장의 여건을 더욱 악화시킬 가능성이 매우 크다”라고 주장했다.

"주류 경제학계는 소주성에 비판적" 평가 

학현학파와 사제ㆍ선후배로 얽혀 있는 김낙년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두 토론회에 대해 “학현학파가 성장보다는 분배를 중시하다 보니 진보적 성향의 현 정권에 우호적인 편”이라며 “정부에 애정 어린 비판을 던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다만 소주성의 오류에 대해 문제를 지적하는 쪽은 비단 서강학파만이 아닌 주류 경제학계 전반에 펼쳐져 있다는 점에서 이를 ‘학파 간 논쟁’으로 보는 것은 좁은 시각”이라고 평가했다.

세종=손해용·김도년 기자 sohn.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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