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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드셨으니 편하게 계세요” 이 말은 선한 말일까?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양은심의 도쿄에서 맨땅에 헤딩(21)

83세 현역 사장님이 운영하시는 가게 입구 모습이다. 운치가 있다. 요즘 이런 술집이 점점 사라져 가고 있다. ‘소 힘줄 조림(牛すじ煮込み/규스지 니코미)’은 이 가게의 명물 요리 중 하나이다. 갈 때마다 꼭 시킨다. [사진 양은심]

83세 현역 사장님이 운영하시는 가게 입구 모습이다. 운치가 있다. 요즘 이런 술집이 점점 사라져 가고 있다. ‘소 힘줄 조림(牛すじ煮込み/규스지 니코미)’은 이 가게의 명물 요리 중 하나이다. 갈 때마다 꼭 시킨다. [사진 양은심]

“나는 몇 살까지 일하면 될까.”
팔순을 넘긴 이자카야 사장님이 툭 하고 50대의 우리에게 말을 던졌다. 요즘은 60대에도 양로원에 들어가는 사람이 있더라는 말과 함께. “그 사람들은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곳에 들어가는 거야”라고 물어온다. 누군가가 대답한다. 60대여도 혼자 생활할 수가 없어서 들어가는 사람도 있고, 스스로 움직일 수 있을 때 마음에 드는 곳을 찾아서 아파트로 이사 가는 기분으로 들어가는 사람도 있다고.

양로원이라 해도 천차만별이다. 요리사와 의사, 간호사가 있는 곳도 있다. 물론 그런 곳은 나와 같은 서민은 꿈도 꾸지 못한다. 경제적인 여력이 없다면 요양 심사를 받아 저렴한 시설을 선택하면 된다. 단 시설이라 불리는 곳은 아무리 고급이라 해도 규칙이 있기 마련이다. 감시당하는 기분이 들고 자유가 없다고도 한다. 아무렴 내 집만 하랴.

인생 현역 실천하는 80대 사장님

83세 현역 사장님. 웃는 얼굴이 예쁜 분이신데 늙었다고 사진 찍지 말라신다. 손님들의 좋은 카운셀러이시다. [사진 양은심]

83세 현역 사장님. 웃는 얼굴이 예쁜 분이신데 늙었다고 사진 찍지 말라신다. 손님들의 좋은 카운셀러이시다. [사진 양은심]

팔순을 훌쩍 넘긴 사장님은 남편이 만든 빚을 갚아내느라 일을 그만둘 수가 없었고 이혼을 하고 나서는 생계를 위해 일을 해야만 했다. 지금은 일을 안 하면 굶을 상황은 아니지만 그만둔다는 생각을 못 하겠다고 한다. 가끔 ‘일 그만하고 편하게 살라’는 말을 듣는다고 했다.

사장님이 물어온다. “나는 몇 살까지 일하면 될까.” 누군가가 물었다. “일을 그만두시면 어떤 생활이 될 것 같으세요.” 사장님이 대답한다. “일을 그만둔 적이 없어서 상상이 안 돼.” 장사하는 생활이 몸에 배어버렸단다. 다른 손님이 말을 잇는다. “그럼 계속 일을 하시는 게 좋아요. 일을 그만두는 순간 무너지실 것 같은데요.”

고급 요릿집을 경영했던 솜씨라 맛이 정평이 나서 손님이 끊이지 않는다. 계절마다 만들어 내는 제철 요리가 일품이다. 고령의 사장님이 걱정돼 안부를 확인할 겸 들르는 단골도 있다. 가게가 너무 한가할 때는 친한 손님에게 잘 있냐고 전화한다. 놀러 오라는 얘기다.

어디가 아파도 병원에도 안 간다. 너무 바쁘게 살아 가본 적이 없단다. 지금도 하루 15시간 서 있다면서도 그리 싫은 내색은 아니다. 아르바이트 여대생에게 이것저것 지시하며 가게를 운영해 나간다. 딸이 하나 있지만, 독립적으로 살아가시는 사장님. 인생 현역을 실천하고 계신 분이다. 우리는 그녀를 ‘언니’라 부른다.

잡지에 실린 사장님. 선전하는 것도 아닌데 입소문이 퍼져서 종종 취재를 받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대단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닌데' 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굳이 거절하지는 않는다. 이 또한 인생을 즐기는 방법이 아닐까 싶다. [사진 양은심]

잡지에 실린 사장님. 선전하는 것도 아닌데 입소문이 퍼져서 종종 취재를 받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대단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닌데' 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굳이 거절하지는 않는다. 이 또한 인생을 즐기는 방법이 아닐까 싶다. [사진 양은심]

50~60대인 우리는 노후에 대한 이야기를 종종 한다. 나는 치매에 걸리지 않고 머리와 손가락이 움직이는 한 일을 하겠다고 말한다. 50대인 지금, 30대 40대와 같은 강행군을 할 수는 없다. 조금 무리하면 눈이 침침해지고, 어깨가 천근만근 무거워진다. 철야 작업을 해도 끄떡없던 체력이 비틀거린다. 내 몸이 나를 걱정하는 신호다. 그래서 요즘은 내 몸과 의논하며 일을 한다.

『나이 들수록 인생이 점점 재밌어지네요』라는 책을 번역하며 인연을 맺은 저자 와카미야 마사코 씨의 말에 깜짝 놀란 적이 있다. 흔히 나이가 들면 ‘다리와 허리가 튼튼하면 살아갈 수 있다’고 하지만 요즘 와서 느끼는 것은 그게 아니란다. 인공지능(AI) 시대에는 최종적으로 ‘머리’만 확실히 돌아가면 몸이 불편해도 ‘재밌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모든 걸 스스로 생각하고 AI에게 지시하면 기본적인 문제는 해결이 되는 세상이 오기 때문이란다.

벌써 음성인식 AI가 각 가정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에어컨 켜달라, 음악 틀어달라, 오늘 날씨는 어떠냐, 어떤 옷을 입으면 좋으냐…. 영국 드라마 ‘휴먼스’에는 AI 가사도우미, AI 요양보호사 등이 등장한다. 가사를 완벽하게 해내는 미인 AI, 몸이 불편한 사람을 거뜬히 들어 올리는 잘생긴 AI, 취향에 따라 모델을 고를 수 있다. 어쩌면 부모와 자식이 같이 AI의 도움을 받는 초고령화 시대가 올지도 모르겠다.

예약만 한다면 단체 손님도 척척 받아내신다. [사진 양은심]

예약만 한다면 단체 손님도 척척 받아내신다. [사진 양은심]

우울증 걸린 60대 은퇴자

팔순을 넘겨도 현역으로 일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정년퇴직 후 사회생활을 접는 사람도 있다. 일상을 즐기고 있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러나 모두가 여가를 잘 이용할 줄 아는 것은 아니다. 60대 독신 남자가 있다. 정년퇴직하고 경제적인 어려움 없이 생활하고 있다. 마당이 있는 단독주택에서 꽃과 야채를 키운다. 그야말로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아무 걱정 없이 느긋하게’ 살고 있다.

그런데 우울증에 걸렸다고 한다. 독신인 데다가 사교성도 없어서 대화를 나눌 사람이 없다. 일과는 오전과 오후 두 차례, 산책하고 식사하고 독서 하고 정원을 돌보는 것으로 끝이다. 동네 문화센터에라도 등록하면 좋으련만 그렇지 못한다. 고양이라도 키우면 좋으련만 그런 생각까지 미치지 못한다. 집 정리하고 고향으로 돌아오라 해도 자신이 이루어놓은 것을 놓을 수가 없어 오늘도 그는 우울하다면서도 혼자서 살아가고 있다.

어느 삶이 행복한가. 두 경우를 합쳐 반으로 나누면 참 좋겠는데, 인생살이 그렇게 딱딱 떨어지지는 않는 것 같다. 흔히 “이제 나이 드셨으니 아무것도 하지 마시고 편하게 계세요”라는 말을 한다. 과연 이 말은 선한 말인가. 나에게는 독약으로 들린다.

양은심 한일자막번역가·작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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