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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이 좋습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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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정재
이정재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7일 기자가 “강남 수요에 대한 대비가 부족한 거 아니냐”고 묻자, 피식 웃으면서 “강남이 좋습니까?”라고 반문했다. 3기 신도시 발표 현장에서다. 인간은 불쑥 내뱉는 한 마디에 평소 생각이 담기기 마련이다. 국토부 장관의 “강남이 좋나?”는 반문에는 편 가르기와 특정 집단·계층, 주류에 대한 증오의 단상이 오롯이 묻어난다.

양극화의 상징 된 강남 아파트 #더 조심해야 할 국토부 장관이 #편 가르기 부추겨서야 되겠나

하기야 김현미 장관의 편 가르기 본능이 울끈불끈 솟아났던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올들어 계속되는 공시가격 논란도 결국은 강남 문제였다. 국토부는 공시가격 현실화율을 높인다면서 “고가 주택을 더 많이 올렸다”고 했다. 지방이나 도심 외곽의 싼 집값은 되레 내리거나 아예 건드리지 않았으니 “안심하시라”고도 했다. 서울 고가 주택이 몰린 강남 지역이 타깃이라고 스스로 밝히면서 형평성 논란을 부채질했다. 부동산 업계에선 공시가격 조정·산정, 평가 문제의 바닥에 이 정부의 “강남 때리기” 정서가 깔려있다고 입을 모은다. 김 장관의 취임 일성은 ‘투기 세력과의 전쟁’이었다. 그에게 ‘강남=투기세력의 본산’이니 좋아할 대상은커녕 때려잡아야 할 원수쯤 될 것이다. 그는 “사는 집 아니면 좀 파시라”고도 했다. 자신이 집 두 채를 가진 다주택자였을 땐데도 이런 소릴 했다. 두 채지만 강남엔 집이 없으니 당당하다는 심사였을 것이다. “강남이 좋습니까”엔 그의 이런 ‘강남 포비아’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김 장관뿐만이 아니다. 이 정부의 유별난 ‘강남 강박증’은 이미 정평이 나 있다. 전임 청와대 정책실장 장하성은 지난해 “내가 살아봐서 아는데, 모든 국민이 굳이 강남에서 살아야 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가 곤욕을 치렀다. 편 가르기, 강남 비하 논란이 크게 불거지면서 이낙연 국무총리로부터 “집값처럼 예민한 사안에 대해서는 신중했으면 한다”는 따끔한 경고도 받았다. ‘아무나 사는 곳이 아닌 강남 아파트에서 산 덕분에’ 장하성은 1년 만에 서민 집 한 채 값을 앉아서 벌었다. 장하성의 아파트는 1년 새 약 5억원이 올라 서민들의 배를 더 아프게 했다.

주택시장을 총괄하는 주무 부처인 국토부의 강남 사랑도 남다르다. 올 고위공직자 재산공개에 따르면 2018년 국토부 1급 이상 고위 공직자 7명 중 2명이 2주택자였다. 그중 4명은 집을 한 채만 가졌는데, 모두 강남 3구였다. 국토부 고위 공직자들의 ‘똘똘한 한 채’는 모두 강남 3구였던 셈이다. 한 언론 인터뷰에서 김현미는 장관의 성공비결로 소통을 꼽았는데, 강남 사는 국토부 차관·실장들에게도 “강남이 좋습니까?”라고 물었는지 궁금하다. (김현미는 언론 편 가르기로도 유명하다.  내 기억과 국토부에 문의한 바에 따르면 그는 방송 아니면 좌파 성향 신문, 자신의 지역구 신문과만 인터뷰했다. 취임 후 지금까지 우파 성향 신문과는 한 번도 인터뷰하지 않았다.)

나는 강남 3구에 집은커녕 전세조차 살아본 적이 없다. 평생을 강북에서 살았다. 누가 싼값에 준다면 몰라도 강남에 갈 능력도 안 된다. 간혹 강남 사는 친구가 부러울 때면 스스로 주제와 분수를 알자며 마음을 다스리는 게 고작이다. 강남에 사는 이들이나 강남에 살 수 있는 이들보다, 강남 꿈도 못 꾸는 사람일수록 장관의 그런 말에 더 상처받고 자존감을 다치게 된다. 질문을 던진 기자도 강남이 좋아서 물어본 것은 아닐 것이다.

여기까지 해도 못 알아듣겠다면 내가 거꾸로 물어주겠다. 강남 대신 다른 것을 넣어보라. “부자가 좋습니까?” “돈이 좋습니까?” “미국이 좋습니까?” 김현미 본인이 이런 질문을 들었다면 무슨 생각이 들겠는가. “좌파가 좋습니까?” “장관이 좋습니까?”는 어떤가. 평소 남북철도연결에 열심인 데다 올 초 공시가격 논란이 한창 불거질 때도 나 몰라라, 동아시아 철도공동체 구상을 공유한다며 대개 실무진이 가던 폴란드 출장을 직접 갔던 장관이니 이런 질문은 어떤가. “북한이 좋습니까?”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