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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은 왜 먹방·여행만 할까···'연봉 40억' 나영석 명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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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스페인 하숙’에서 차승원과 배정남이 알베르게 숙박객에게 제공할 한식을 만들고 있다. [사진 tvN]

‘스페인 하숙’에서 차승원과 배정남이 알베르게 숙박객에게 제공할 한식을 만들고 있다. [사진 tvN]

여행과 요리 없는 예능은 불가능한 걸까. 요즘 tvN 예능을 보면 드는 생각이다. 지상파는 지난 설 연휴에 선보인 파일럿을 토대로 새로운 프로그램을 차례로 론칭했다. MBC는 3월 음악 예능 ‘다시 쓰는 차트 쇼 지금 1위는?’과 부동산 예능 ‘구해줘! 홈즈’를, KBS2는 지난달 관찰 예능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를 시작했다.

쏟아지는 새 예능…진짜 신규는?  

하지만 같은 기간 tvN이 선보인 프로그램들을 보면 ‘신규’라는 글자가 무색할 정도로 익숙한 포맷이다. ‘스페인 하숙’을 필두로 ‘미쓰코리아’ ‘현지에서 먹힐까? 미국편’은 나라만 바뀌었을 뿐 해외 어디선가 한식을 만들고 있고, ‘쇼! 오디오자키’ ‘300 엑스투’ ‘작업실’은 Mnet에서 채널만 옮겨온 듯한 음악 예능이라서다.

시즌제인 ‘대탈출 2’와 ‘풀 뜯어먹는 소리 3’을 제외하면 9편 중 새로운 프로그램은 ‘애들 생각’ 뿐이다. 그 역시 김유곤 PD의 전작 ‘둥지탈출’(2017~2018)의 번외편 같은 느낌이 있긴 하지만 여행을 버리고 스튜디오에서 관찰 카메라로 요즘 애들의 고민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에서 새롭게 느껴질 정도다.

‘스페인 하숙’ 화제성 전작만 못해

‘스페인 하숙’에서 설비부로 활약 중인 유해진. ‘이케아’를 본따 ‘이케요’ 브랜드를 만들었다. [사진 tvN]

‘스페인 하숙’에서 설비부로 활약 중인 유해진. ‘이케아’를 본따 ‘이케요’ 브랜드를 만들었다. [사진 tvN]

이는 KBS2 ‘1박 2일’ 시즌1을 이끌던 나영석 PD가 2012년 CJ ENM으로 이적 이후 지난 7년간 쌓아 올린 성과에 대한 명과 암을 동시에 보여준다. 나 PD는 2013년 ‘꽃보다 할배’를 시작으로 여행과 요리를 매트릭스처럼 조합하며 ‘삼시세끼’ ‘신서유기’ ‘윤식당’ ‘알쓸신잡’ 등 매년 히트 상품을 만들어냈지만 이후 tvN에서 제작하는 모든 프로그램이 ‘나영석 프레임’을 따르면서 무분별한 자기복제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나 PD도 본인의 성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지난해 선보인 ‘숲속의 작은집’으로 첫 실패를 맛보면서 불안한 한 보 대신 안전한 반보를 택한 것. ‘삼시세끼 어촌편’(2015)를 통해 이미 검증된 차승원·유해진 조합에 모델과 배우의 교집합에 있는 배정남이 합류하고, ‘꽃보다 할배 스페인편’(2014)과 ‘윤식당 2’(2018)로 친숙한 장소로 떠났다.

결국 ‘스페인 하숙’은 딱 그만큼의 성과를 얻었다. 시청률은 11.7%(닐슨 코리아, 전국 유료가구 기준)로 순항 중이지만, 화제성은 예전만 못하다. 방송 첫 1~2주 정도를 제외하면 화제성 조사 상위권에서 이름을 찾아보기 힘들다. 산티아고 순례길 한복판에서 알베르게를 운영하는 프로그램이지만 순례자보다는 요리부 차승원, 설비부 유해진, 의상부 배정남의 이야기가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 시청자들이 이미 잘 알고 있는 모습이 대부분이므로 혼자서 습관처럼 볼지언정 다른 사람과 함께 ‘이야기’하지는 않는단 얘기다.

4일 경주에서 ‘강식당 2’ 영업을 시작한 송민호, 피오, 은지원, 강호동, 이수근. 이번 시즌은 추첨제로 운영한다. 첫날 1만여명이 몰리는 등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인스타그램 캡처]

4일 경주에서 ‘강식당 2’ 영업을 시작한 송민호, 피오, 은지원, 강호동, 이수근. 이번 시즌은 추첨제로 운영한다. 첫날 1만여명이 몰리는 등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인스타그램 캡처]

차기작 역시 새로운 프로그램 대신 ‘강식당 2’와 ‘신서유기 7’을 준비 중이다. 31일 첫 방송을 앞둔 ‘강식당 2’는 지난 4일부터 경주에서 피자와 파스타 장사를 시작했다. 나영석 PD는 지난해 2월 ‘윤식당 2’가 케이블 예능 최고 시청률(16%)을 달성하며 CJ그룹 오너 일가보다 많은 연봉(40억 7600만원)을 받는 ‘슈퍼 크리에이터’가 됐지만, 동시에 더이상 섣불리 모험을 할 수 없게 된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이다.

이적한 PD들도 모두 ‘나영석화’ 

‘커피프렌즈’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유연석, 양세종, 손호준. [사진 tvN]

‘커피프렌즈’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유연석, 양세종, 손호준. [사진 tvN]

나영석 사단에서 독립해 홀로서기에 나선 PD들은 엇비슷한 기획을 들고 나왔다. 올 초 방송된 ‘커피프렌즈’는 ‘삼시세끼 정선편’(2015)을 통해 입봉한 박희연 PD의 작품이고, '현지에서 먹힐까’는 ‘신혼일기’(2017)를 통해 입봉한 이우형 PD의 작품이다. 모두 ‘윤식당’이 있었기에 가능한 기획이었다. 박 PD는 ‘아버지와 나’(2016)로 차별화를 꾀하는 듯했지만 시청률·화제성을 잡지 못하자 ‘집밥 백선생 2, 3’(2016~2017),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2018) 등 다시 요리를 앞세운 프로로 돌아왔다.

외부에서 이적한 PD들도 여지없이 나영석이 닦아놓은 길을 택했다. MBC ‘무한도전’에서 5년간 몸담았던 손창우 PD는 ‘짠내투어’(2017~)와 ‘미쓰 코리아’를 내놓았고, SBS ‘땡큐’ ‘박진영의 파티피플’ 등을 연출한 박경덕 PD의 첫 작품도 ‘국경없는 포차’(2018~2019)였다. 각각 리얼 버라이어티와 토크쇼라는 장기가 있음에도 이를 내려놓고 여행과 요리의 조합을 따른 것이다.

‘현지에서 먹힐까? 미국편’에서 푸드트럭을 운영 중인 이연복 셰프. [사진 tvN]

‘현지에서 먹힐까? 미국편’에서 푸드트럭을 운영 중인 이연복 셰프. [사진 tvN]

이같은 시선에 PD들은 다소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7일 서울 상암동 CJ ENM센터에서 열린 ‘크리에이터 톡’ 행사에서 기자들과 만난 손창우 PD는 “먹방과 여행이 지겹다는 댓글도 많지만 점점 더 ‘워라밸’이 강조되는 사회 분위기에서 이는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통할 수 있는 보편적인 트렌드”라고 밝혔다.

그는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에서 매년 발간하는『트렌드 코리아』를 예로 들었다. “방송에서 너무 앞선 트렌드를 제시하면 외면받기 쉽기 때문에 2019가 아닌 한해 지난 2018을 더 열심히 본다”며 “‘짠내투어’가 추구하는 가성비나 스몰 럭셔리도 몇 년 전부터 떠오른 화두”라고 설명했다.

박하연 PD 역시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는 오래전부터 하고 싶은 기획이었지만 백종원 선생님 같은 적임자가 없어서 못 하다가 ‘집밥 백선생’을 통해 연이 닿아 할 수 있게 된 작품”이라고 밝혔다. 이어 “오히려 유튜브 먹방에서 아이디어를 차용했다”며 “이동 과정 등을 과감히 생략하고 본론인 먹방에 집중했다. 하얼빈이 새로운 먹방 성지로 떠오르는 등 반응이 좋아 현재 시즌2를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반복적 ‘푸드 포르노’ 벗어나야 

‘미쓰코리아’에 출연한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 [사진 tvN]

‘미쓰코리아’에 출연한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 [사진 tvN]

tvN 예능이 지금의 정체기를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다양화가 시급하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스페인 하숙’이 순례자들의 먹방보다 유해진이 만든 ‘이케요’를 더 비추는 것은 그 장면이 더 새롭기 때문이다. 재미는 결국 거기서 나오는 것”이라며 “‘현지에서 먹힐까’처럼 계속 요리하는 장면만 보여주다 보면 시선은 끌지언정 ‘푸드 포르노’와 다를 게 없다”고 밝혔다.

공희정 TV평론가는 “‘윤식당’을 보면 나도 가라치코에 가보고 싶다, 장사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만 ‘국경없는 포차’는 장소적 특성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면서 왜 코펜하겐이나 파리에서 장사를 해야 하는지조차 이해시키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결국 프로그램에서 메시지를 전달하는 건 출연진인데 똑같은 사람들이 비슷한 포맷에서 비슷한 방식으로 다뤄지다 보니 이미지 소비가 심해지고 시청자들도 쉽게 질리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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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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