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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孝)캉스', '외로운 쪽방'...둘로 나뉜 2019 어버이날 풍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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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고산리에서 바라본 차귀도 노을 풍경.[사진 제주관광공사]

제주도 고산리에서 바라본 차귀도 노을 풍경.[사진 제주관광공사]

#1. 직장인 이모(42·여)씨는 홀로 계신 어머니(65)의 올해 어버이날 선물로 제주여행을 선택했다. 그동안에는 주로 카네이션·용돈을 드렸는데 올 초 “제주도에 가고 싶다”는 말을 하신 게 기억나서다. 바쁜 회사 사정상 8일 당일 출발하지는 못하고 14일 출발하는 2박 3일 일정의 G여행사 상품을 예약했다. 개인 경비까지 포함해 80만원 정도 지출할 생각이다. 한살 터울 오빠는 동행하지 못하는 대신 여행 경비 일부를 보탰다.

이씨는 “요즘 어버이날 선물로 ‘용돈 박스’가 인기라지만, 함께 여행지서 근사한 추억을 만드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며 “‘돈이 어딨어서’라며 걱정하시던 엄마도 요즘 설레신 지 더 자주 전화하신다”고 말했다.

서울 쪽방촌에 사는 조의식(60)씨의 방안 모습. 그는 평생 어버이날을 모르고 지냈다고 한다. 편광현 기자

서울 쪽방촌에 사는 조의식(60)씨의 방안 모습. 그는 평생 어버이날을 모르고 지냈다고 한다. 편광현 기자

#2.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에 사는 조모(60)씨는 평생 어버이날 선물을 챙겨본 적도 (자녀에게) 받아본 적도 없다고 한다. 태어나자마자 부모와 헤어진 그는 결혼하지 않아 살붙이도 없다. 10㎡ 남짓한 그의 방에는 녹슨 전기밥솥이 두 개다. 하나는 겨울에 물을 데우는 데 쓴다고 한다. 틀면 바로 나오는 온수 물은 언감생심인 그에게 어버이날은 늘 다른 세상의 법정기념일이다.

조씨는 “부모님도 한 번이라도 같이 살아본 적이 있어야 정이 들고 그리워할 텐데, 그런 것도 없다”며 “TV에 나오는 어버이날은 (나에게) 딴 세상 이야기”라고 말했다.

어버이날을 앞둔 지난 4일 서울 이마트 용산점에서 모델들이 '플라워 용돈박스'를 선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어버이날을 앞둔 지난 4일 서울 이마트 용산점에서 모델들이 '플라워 용돈박스'를 선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살뜰히 챙기는 어버이날, 누군가에겐 다른 세상

어버이날 두 개의 풍경이다. 예전 못지않은 활동력을 보이는 60~70대 노노족(No 老)이 늘면서 부모님께 여행상품을 선물하거나 아예 이씨처럼 시간(휴가)을 내 함께 여행을 떠나는 등 살뜰히 챙기는 풍경이 있지만, 한쪽에서는 더욱 쓸쓸한 하루를 보내는 모습도 있다.

우선 ‘효(孝)캉스’ 세태를 반영하듯 요즘 여행업계는 반짝 특수를 맞고 있다. 국내 대표 M여행사는 한 사람당 70만원대 일본 북해도 온천 실속상품(3박 4일)을 내놨는데 금요일인 오는 10일 출발의 경우 이미 예약이 마감돼 대기를 신청해야 할 정도다. H여행사의 효도 관광상품(일 인당 60만 원대·제주 3일) 역시 13~18일까지는 (예약)대기 상태다. 호텔업계도 발 빠르게 움직였다. 지방의 한 5성급 호텔의 경우 효캉스 프로모션을 준비했다. 투숙객에게 전담팀이 안내하는 관광지 투어가 제공된다. 지역병원과 부모님 건강검진프로그램을 선보인 호텔도 있다.

200만원 훌쩍 넘는 고가선물도 '척척' 

효캉스 못지않은 고가의 효도선물도 인기라고 한다. 국내 굴지의 안마의자 제조업체로 꼽히는 B사의 경우 이달 들어 안마의자 주문량이 다른 달과 비교해 30~50% 이상 늘었다고 한다. 이달 1·2일에만 평균 300만원 가까운 제품이 2000개쯤 팔렸다. 효도 성형도 빼놓을 수 없다. 서울 강남의 B성형외과 관계자는 “자녀들에게 효도 성형 비용을 선물 받는 이들의 (내원)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쪽방촌 건물입구 모습. 어버이날 쓸쓸함을 더한다. 편광현 기자

서울의 한 쪽방촌 건물입구 모습. 어버이날 쓸쓸함을 더한다. 편광현 기자

쪽방촌 이웃, "어버이날? 평소처럼 지내" 

전혀 다른 공간도 공존한다. 쪽방촌 이웃 김모(83)씨는 쓸쓸한 ‘하루’를 맞았다. 50대인 아들 내외는 15년 전쯤 미국에 이민 간 뒤 연락이 잘 닿지 않는다고 한다. 그사이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손자·손녀에 대한 기억은 어렸을 때 머물러 있다. 그는 5㎡ 안 되는 방 안에서 우두커니 라디오만 듣고 지낸다. 눈이 아파 TV는 보지 못한다고 했다.

김씨는 “어버이날이라고 특별한 건 없다. 평소처럼 그냥 지낸다”며 “나이가 들어 불러주는 곳도 없고, 다리가 아파 밖으로 나가지도 못한다”고 힘없이 말했다. 그는 “아들과 손자, 손녀가 보고 싶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김민욱·편광현 기자 kim.min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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