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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정치개혁:‘12·15 합의’로 돌아가라(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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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국회가 육탄전을 반복한 끝에 선거개혁과 검찰개혁 사안을 신속처리 안건으로 지정하는데 가까스로 성공했다. 두 사안이 개혁의 핵심 의제라는 점은 말할 필요도 없다. 재벌·노동·교육 개혁과 함께 선거와 검찰 개혁은 한국 사회와 민주주의의 미래를 좌우할 사안들이다. 게다가 임기 절반을 지나는 시점까지 핵심 개혁을 제대로 시작조차 하지 못한 현실이 주는 초조감을 모르는 바도 아니다.

선거개혁, 애초 5당 합의로 돌아가 #검찰개혁 대신 개헌논의 연동해야 #대통령 득표와 권한 불비례가 최악 #의회·대통령 비례성, 동시추구하길

그러나 신속처리 안건 지정 직후부터 사안 논의가 외려 실종되고, 쟁점에 대한 내부이견이 분출하고 있는 현실에 비춰 보면 과연 이토록 무리하면서까지 신속처리 안건으로 지정할 필요가 있었는지 묻게 된다. 더욱이 반대정당을 일단 협상의 장에 끌어들이기 위한 전술차원의 강행이었다는 설명에 다다르면, 지금의 진통의 의미는 크게 퇴색된다.

결론은 간단하다. 2018년 12월 15일 5당 원내대표 합의로 돌아가면 된다. 당시 ‘합의사항’을 보자. “1.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 적극 검토. 2.비례대표 확대 및 비례·지역구 의석 비율, 의원정수, 지역구 의원 선출 방식 등에 대하여는 정개특위 합의에 따른다. 3. 석패율제 등 지역구도 완화를 위한 제도 도입 적극 검토, 4.선거제도 개혁 관련 법안은 1월 임시국회에서 합의 처리, 5. 정개특위 활동 시한 연장, 6. 선거제도 개혁 관련 법안 개정과 동시에 곧바로 권력구조 개헌을 위한 개헌 논의를 시작.”

먼저 ‘12월 15일 합의’는 정치와 법률 이론에서 말하는 이른바 ‘합의를 하기 위한 합의’(agreements to agree)로서, 정치개혁을 위해 5당이 동의한 중대 계기였다. 이론적으로 말해 ‘합의를 하기 위한 합의’는 내용 이행을 강요할 수는 없다. 그러나 강요할 수 없다고 하여 폐기해도 좋다는 것은 전혀 아니다. 그것은 ‘권리를 위한 권리’처럼 근간합의로서 존중되어야한다.

따라서 5당은 ‘12·15합의’로 돌아가 즉각 정치개혁에 착수해야 한다. 물론 ‘12·15합의’에 없는, 게다가 다른 독립사안인 검찰개혁은 따로 논의해야한다. 대신 ‘12.15합의’대로 헌법개혁을 선거개혁과 함께 논의하면 된다. 그럴 경우 반대당도 논의를 거부할 명분이 없다. 그리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실질적으로도 선거제도 개혁은 의미가 없게 된다.

핵심은 의회와 정부 구성에서 민의의 비례성의 확보다. 그런데 한국 대통령 선거 득표와 권한의 불비례성은 의회선거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세계최악 수준이다. 따라서 선거과정의 결선투표제를 도입하거나, 승자독식을 방지하는 견제 장치를 두지 않으면 안된다. 최악의 불비례 대통령제를 그대로 둔 채, 의회에만 비례성을 도입한다고 한들 대통령 득표와 권한의 의회와의 이중 불비례 제도가 정상적 민주헌정제도로 작동한다는 보장은 전연 없다.

게다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한 나라들은 대부분 비례성이 집행부에도 반영되는 의회책임제·내각책임제 권력구조다. 즉 비례성의 원리는 꼭 집행부에도 반영되어야한다. 제왕적 대통령제에 대한 개혁 없는 연동형 비례제의 도입은 의회의 비례성과 상호 견제가 대통령의 불비례성 및 승자독식과 만나면서, 오히려 견제권(veto power)의 약화로 인해 대통령의 무소불위 권력을 더욱 강화시켜줄 위험이 있다.

현행 헌법상 대통령의 불비례적인 제왕적 권력을 보편적 대통령제에 맞게 약화시키지 않는 한 한국에서의 다른 정치개혁은 거의 의미가 없다. 따라서 대통령 득표와 권한의 비례성을 제고하기 위한 개헌이 필수적이다. 이러한 최소 개헌이 수반될 때 합의를 통한 선거제도-권력구조 개혁의 일괄타결은 물론 개혁 이후 연립과 협치의 국정운영 역시 가능해진다.

첫째 총리에 대한 의회의 복수추천 및 대통령의 임명, 둘째 장관책임제를 위한 국무회의(현재는 심의기구)의 의결기구화, 셋째 의회의 장관임명 동의제이다. 이 사안들은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사항에 대한 헌법적 대응이기도 하다. 이들은 대통령제를 유지하면서 제왕적 대통령제의 최악의 불비례성을 교정하기 위한 최소 필수장치다.

총리에 대한 복수추천과 대통령의 임명은 의회의 대표권·추천권과 대통령의 임명권·집행권을 상호 존중하면서, 기존의 고질적인 관행인 비서정치를 넘어 내각정치와 의회정치를 발전시킬 제도적 대안이다. 국무회의의 의결기구화는 국정운영을 소수 측근들의 전횡이 아닌, 의회동의를 받은 헌법기관인 내각과 장관 중심으로 이끌어가게 할 필수장치가 된다. 또 국무회의의 의결기구화는 5·16쿠데타가 폐지시킨 건국헌법의 민주주의 골간을 부활하는 의미도 있다. 장관임명 동의제는 현행 인사청문회제의 일방적 무시와 역설적 무용론을 고려한 대통령 불비례 권한에 대한 최소 견제장치가 된다.

권력구성의 비례성이야말로 협치와 연합, 갈등완화, 문제해결 능력의 제고를 통해 시민적 자유와 경제적 복리를 보장하는 지름길이다. 대통령과 정부와 의회의 각성과 책임을 거듭 촉구한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