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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사회 소탕전 나선 시진핑, 황제 능가하는 권력 추구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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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시진핑의 또다른 전쟁 ‘소흑제악(掃黑除惡)’

베이징 도심인 차오양구의 한 공원 벽에 ’어둠의 세력을 쓸어버리고 악의 무리를 제거하자“는 표어가 걸려있다. [유상철 베이징 총국장]

베이징 도심인 차오양구의 한 공원 벽에 ’어둠의 세력을 쓸어버리고 악의 무리를 제거하자“는 표어가 걸려있다. [유상철 베이징 총국장]

베이징은 물론 중국 거리 곳곳을 도배중인 플래카드가 있다. “흑(黑)이 있으면 쓸어버리고 악(惡)이 있으면 제거하자” “흑악세력을 뿌리째 뽑아버리자” “흑악세력의 뒷배를 철저하게 파헤치자”. 표현은 다양하지만 하나의 일관된 메시지를 전한다. ‘소흑제악(掃黑除惡)’. 흑(黑)은 쓸어버리고 악(惡)은 제거하자는 것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집권 2기 시작과 함께 전개중인 캠페인이다.

집권 1기 반부패 호랑이 때려잡기 #2기 들어선 흑과 악 쓸어버리기 #현 아래 촌에까지 영향력 미칠 경우 #황제보다도 강한 권력 구축하는 셈

시진핑 1기가 부패한 고위 관료를 척결하는 ‘호랑이 때려잡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면 이젠 그 칼날이 흑사회(黑社會)를 정면으로 겨냥하고 있다. 시진핑은 왜 흑사회와의 전쟁을 선포했나.

지난달 9일 중국에선 이례적인 기자회견이 열렸다. 중국소흑제악투쟁영도소조판공실이 사상 처음으로 기자회견을 열고 소흑제악 처리 방침을 밝혔다. 투쟁이 시작된 건 2018년 1월 말.

한데 1년여가 지나서야 흑악세력에 대한 명확한 규정을 내놓았다. 중앙의 명을 받들어 캠페인에 나선 지방 공안(公安)이 누굴 때려잡아야 할지 혼선을 빚고 있다는 게 드러난다.

대표적 예가 지난해 8월 산둥성 지난시 발표. 지난시는 29종의 흑악세력을 열거하며 첫 번째를 “커다란 금 목걸이를 두르거나 온몸에 문신을 새겨 넣은 자”라 규정했는데 잘못됐다는 지적을 받았다. 흑악세력을 너무 단순화해 문신한 사람은 모두 경을 칠뻔했다.

톈진시가 올해 소흑제악 투쟁의 모범 케이스로 지난 3월 발표한 ‘톈진 따꺼(大哥, 큰형님)’ 일당 85명 일망타진 사건도 의아하다. 2017년 있었던 톈진 따꺼 류(劉)모의 출옥을 환영하기 위해 고급 리무진 등 차량 100대가 동원된 사건을 토대로 했기 때문이다.

위 사진과 같은 내용의 한글 표기가 병기된 옌볜 조선족 자치주의 게시판. [유상철 베이징 총국장]

위 사진과 같은 내용의 한글 표기가 병기된 옌볜 조선족 자치주의 게시판. [유상철 베이징 총국장]

흑은 뭐고 악은 또 뭔가. 당국의 설명을 단순화하면 흑은 조직을 갖추고 공무원 등 뒷배의 비호 아래 사회경제 질서를 중대하게 파괴하는 세력, 악은 흑으로 발전하기 이전 수준으로 3인 이상 떼거리로 몰려다니며 범법 활동을 일삼는 집단이다.

나쁜 인간들을 때려잡자는 데 데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한데 중국 당국이 중점 타격 대상으로 지정한 12가지 흑악세력을 살펴보면 상황이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다. 농촌에 기생하는 흑악세력이 주요 타깃이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12가지 흑악세력 중 첫 번째를 정치안전, 특히 정권안전과 제도안전을 위협하며 정치영역에 침투하는 세력으로 꼽았다. 단순한 사회나 경제 범죄가 아닌 정치적 범죄를 척결 대상 1호로 꼽았다. 사회주의 정권에 도전하는 세력은 뿌리부터 잘라내겠다는 것이다. 열한 번째로 적시한 ‘해외 흑사회의 중국 침투’도 맥락이 같다.

아홉 번째의 ‘민간분규에 개입하는 흑악세력’은 중국 내 약자의 편에 서서 활동하는 ‘인권 변호사’를 겨냥한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고 열 번째 ‘인터넷 공간에서 공갈, 비방하는 흑악세력’은 중국 네티즌의 언로를 막는 경우로 활용될 공산이 크다.

중국의 흑사회 때리기는 덩샤오핑의 시장경제 도입과 함께 시작됐다. 모두가 평등했지만 가난했던 마오쩌둥 시절엔 ‘주먹’을 거느릴 자본이 없었다. 1963년 중국의 범죄율은 10만분의 30으로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중국의 흑사회 척결 구호 변화

중국의 흑사회 척결 구호 변화

덩 시기 사영기업이 생기며 흑사회도 출현했다. 3단계 발전을 거쳤다. 초급단계는 시장에서 보호비 뜯는 수준. 중급단계는 돈 있는 이들을 위해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 고급단계는 흑세력 자신이 공무원의 비호 아래 기업을 경영하는 단계.

현재는 고급단계다. 광둥성 중산시에서 도박장을 운영하는 흑세력은 중산시 공안 계통의 절반에 해당하는 254명을 매수한 것으로 밝혀졌다. 또 ‘탕산 형님(唐山老大)’으로 불렸던 양수콴(楊樹寬)은 각종 총기는 물론 장갑차까지 보유했다.

흑세력 성장에 따라 단속도 강화됐다. 덩샤오핑 시대엔 ‘옌다(嚴打, 엄하게 때린다)’ 운동이 벌어졌고 장쩌민과 후진타오 집권 시기엔 ‘다헤이(打黑, 흑사회를 때린다)’ 캠페인이 펼쳐졌다.

그럼에도 흑사회는 창궐했다. 왜? 시진핑 정권은 그 이유를 ‘경제기초가 상층건축을 결정한다’는 규율을 간과했기 때문이라 본다. 범죄자 개인에 대한 단속에 열중했지 흑사회의 경제적 토대를 허물지 못했고 뒷배를 척결하지 않았기 때문이란 것이다.

그 결과 봄 바람 불면 풀이 살아나듯 단속이 끝나면 흑세력이 고개를 들곤 했다는 분석이다. 그래서 이번 구호는 타흑(打黑)이 아닌 소흑(掃黑)이다. 때리는 수준을 넘어 쓸어버리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두 가지 투쟁에 집중하고 있다. 첫 번째는 ‘재물을 때려 피를 끊는다(打財斷血)’. 흑사회의 수입원을 때려 자금줄을 끊겠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비호 세력을 때려 조직을 일망타진한다(打傘破網)’.

시진핑은 흑사회와의 전쟁 시한을 3년으로 정했다. 2018년엔 흑사회 때리기 분위기를 전국적으로 형성하고 2019년엔 본격적인 투쟁에 나서며 2020년은 흑사회 성장을 막을 토양을 장기적으로 건립해 압도적 승리를 거두겠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닭 잡는데 소 잡는 칼을 쓰는 게 아니냐는 말을 들을 만큼 강력하게 소흑제악 캠페인을 밀어붙이고 있다. 동원한 부서만 30개 가까이에 이른다. 또 전국에 순차적으로 감독조를 파견 중이다.

지난해 1차로 허베이성 등 10개 성시에 감독조를 보냈고 이달부터는 2차 감독조를 후난성 등 11개 성시에 파견한다. 6월에 나머지 지역을 상대로 3차 감독조를 보내면 올 상반기 안으로 중국 전역이 소흑제악 투쟁의 도가니에 들게 된다.

이미 전과는 혁혁하다. 지난 3월 말까지 1만 4226건의 흑악 범죄를 단속해 7만 9018명을 잡아들였다. 중화인민공화국 사상 가장 강도 높다는 흑사회와의 전쟁을 통해 시진핑이 노리는 건 무얼까. 크게 세 가지 해석이 나온다.

첫 번째는 말 그대로 민생을 해치는 범죄 집단을 소탕해 사회의 안정을 가져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지속적인 개혁의 동력을 얻기 위해서다. 집권 1기 때는 저우융캉 전 정치국 상무위원과 같은 대형 호랑이를 잡아 인민의 환호를 샀다.

그런 민심을 바탕으로 기득권 세력을 깨는 개혁을 할 수 있었다. 하나 이젠 열기가 식었다. 더 어려운 개혁이 남았는데 어떻게 인심을 다시 끌어 모으나. 이 같은 고민의 결과가 전례 없는 흑사회 때리기란 해석이다.

그러나 보다 은밀한 목표가 있다고 한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가 익명을 요구한 베이징의 한 대학 교수 말을 전한 바에 따르면 “지방에 대한 당의 통제 강화”가 시진핑이 진정으로 노리는 목표다.

그는 “수천 년 동안 중국 황제들의 권력은 도시에 머물렀지 지방의 말단까지는 이르지 못했다”고 말했다. 사실 황제의 권력은 중국 행정체계 중 성(省)과 시(市)를 넘어 현(縣)에 이르는 게 고작이었다.

현 아래 향(鄕)과 진(鎭)에는 미치지 못했다. 하나 시진핑은 범죄와의 전쟁을 통해 그 지배력을 말단 기층에까지 뻗게 하고 있다. 최근 중국 유도 국가대표 마돤빈(馬端斌)이 실명으로 랴오닝성의 고향 촌 지부서기를 고발한 사건은 좋은 예다.

마는 촌 서기가 깡패들을 끌어 모아 촌민들을 우롱하는 한편 마을의 집체 자산과 수천만 위안의 빈민 구제기금을 떼먹는 만행을 저질렀다고 고발했고 촌 서기의 직무는 소흑제악의 물결 속에 정지됐다.

1기 때 반부패 운동으로 정치적 도전 세력을 제거한 시진핑이 2기엔 흑사회 때리기로 중국 곳곳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중이다. 성공할 경우 시진핑은 중국 역사상 그 어느 황제도 누리지 못했던 절대 권력을 갖게 되는 셈이다. 완벽한 중국 통제라 할 수 있다.

유상철 베이징 총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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