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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온라인 대신 오프라인 매장 고집 … '청개구리' 샤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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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브루노 파블로브스키 샤넬 사장이 서울 청담동에 문을 연 한국 첫 플래그십 부티크를 찾았다. [사진 샤넬]

브루노 파블로브스키 샤넬 사장이 서울 청담동에 문을 연 한국 첫 플래그십 부티크를 찾았다. [사진 샤넬]

디지털 시대에도 온라인 판매는 하지 않는다. 모두가 중국을 바라볼 때 중국 시장에 연연하지 않는다. 럭셔리 제품이라도 원산지와 가격 차이가 지나치게 커서는 안 된다.

성공신화 주역 파블로브스키 사장 인터뷰 #남들과 달리 중국시장 연연 않고도 #1년새 매출 11% 성장 100억 달러 #“샤넬의 DNA는 상품 자체에 담겨 #직접 만지고 느껴봐야 알 수 있어 #세계 매장 가격차 10%내로 줄여 #샤테크 없앤 건 20년 내다본 결정”

프랑스 럭셔리 기업 샤넬의 독특한 경영 전략이다. 샤넬은 글로벌 비즈니스의 일반적인 룰을 거부하면서도 럭셔리 산업 선두에 섰다. 지난해 108년 역사에서 처음으로 경영 보고서를 깜짝 공개했는데, 매출액이 100억 달러에 달해 업계 1위 루이비통을 바짝 뒤쫓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7년 매출액은 96억 달러(약 11조2000억원), 순이익은 18억 달러였다. 매출이 전년보다 11% 성장했다.

샤넬의 성공 뒤에는 브루노 파블로브스키 사장이 있다. 2004년 패션부문 대표에 오른 뒤 15년째 샤넬을 이끌고 있다. 지난 2월 세상을 떠난 카를 라거펠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와 함께 샤넬 성공 신화를 쓴 주역이다.

건축가 피터 마리노가 설계한 플래그십 부티크 외관. [사진 샤넬]

건축가 피터 마리노가 설계한 플래그십 부티크 외관. [사진 샤넬]

최근 방한한 파블로브스키 사장은 중앙일보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샤넬의 성공 비결로 “일관성 있는 전략”을 꼽았다. “샤넬의 모든 의사결정은 ‘20년 후에도 살아남기 위해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기준으로 판단한다.”

샤넬은 지난 3월 서울 청담동에 한국 첫 플래그십 부티크를 열었다. 1991년 한국 진출 이후 28년 만에 처음으로 백화점 아닌 곳에 낸 매장이다. 디지털 기술 발전으로 오프라인에 기반을 둔 전통 산업이 온라인으로 대거 이동하면서 오프라인은 쇠락하는 게 일반적 현상이다. 뉴욕 등에서 랄프로렌·캘빈클라인 플래그십 스토어가 문을 닫고 메이시스·시어스 등 대형 백화점이 줄줄이 폐업한 게 한 예다.

이런 흐름 속에서도 샤넬은 오프라인 매장만을 고집한다. 의류와 핸드백 등 패션 상품은 일절 온라인으로 판매하지 않는다. 자체 사이트는 물론 백화점·온라인몰 등 제3자 플랫폼을 통해서도 마찬가지다.

값비싼 상품은 온라인에서 잘 팔리지 않기 때문이라고 짐작하면 오산이다. 루이비통·구찌·에르메스 등 대부분 럭셔리 브랜드들은 직접 또는 유통업체 입점을 통해 온라인 판매를 하고 있다.

1층에는 의류·핸드백 사이로 작가 파블로 레이노소의 ‘숨 쉬는 단색의 벽’이 전시돼 있다. [사진 샤넬]

1층에는 의류·핸드백 사이로 작가 파블로 레이노소의 ‘숨 쉬는 단색의 벽’이 전시돼 있다. [사진 샤넬]

디지털 시대에 오프라인 매장을 고집하는 이유는.
“창의적 디자인, 제품을 다루는 노하우, 고급 소재와 퀄리티 등 샤넬 브랜드의 DNA는 상품 그 자체에 담겨 있다. 제품을 직접 만져보고, 느끼고, 전문가와 대화하고, 다른 제품과 비교하는 과정에서 진정한 가치를 알 수 있다. 온라인 쇼핑에서는 불가능하다. 패스트패션이나 식품은 사진을 클릭해 살 수 있을지 몰라도 디테일이 생명인 럭셔리 제품은 그렇지 않다. 패션 분야에서는 e커머스가 고객에게 부가적인 가치를 준다고 보지 않는다.”
그간 백화점 부티크가 그런 역할을 해왔는데.
“백화점은 상품 판매 위주다. 롯데·신세계·현대백화점 매장이 모두 똑같다. 면적이 백화점보다 4~5배 큰 플래그십 부티크는 샤넬의 ‘세계’와 ‘정신’을 보여줄 수 있다. 다양한 창작품, 브랜드 고유의 고급스러운 경험과 서비스, 영감을 제대로 선보인다. 부티크 안에 꾸민 창업자 가브리엘 샤넬의 파리 아파트를 연상케 하는 공간이 대표적이다. 한국 고객과 새로운 관계를 맺고 브랜드 파워를 키우기 위한 곳이다.”
오프라인에 집중하면 젊은 고객이 외면하지 않을까.
“글쎄. 밀레니얼 세대라고 다를까. 난 미래에도 오프라인이 계속해서 핵심이 될 것이라고 믿는 쪽이다. 디지털화로 종이신문이 사라지고 있지만, 최고의 신문은 계속해서 살아남는 것과 마찬가지로 럭셔리 분야에서도 최고 상품은 디지털 파고를 넘어 오프라인에서 살아남을 것이다.”
플래그십 부티크를 열기 위해 10년 가까이 준비했다는데.
“샤넬의 시간 개념은 다른 곳과는 조금 다르다. 오랜 역사를 바탕으로 하고, 앞으로도 영원할 것이기 때문에 서두르지 않는다. 결정 후에는 되돌아가지 않는다. 그래서 결정에 오래 걸린다. 우린 지금의 샤넬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늘 20년 후를 논한다.”
3층에 진열된 ‘샤넬-퍼렐 캡슐 컬렉션’. [사진 샤넬]

3층에 진열된 ‘샤넬-퍼렐 캡슐 컬렉션’. [사진 샤넬]

한때 국내에서 ‘샤테크’라는 단어가 유행했다. 샤넬과 재테크를 합친 신조어다. 한국보다 가격이 싼 프랑스 현지에서 샤넬 핸드백을 사 와서 되팔면 돈을 벌기 쉽다는 뜻이다. 사정은 다른 나라도 비슷했다. 세계 고객이 파리로 몰렸다. 매장 밖은 늘 대기 줄이 길었고, 매장 안은 북새통이었다. 파리 행을 기다리며 자국에서는 구매하지 않는 현상도 나타났다. 거액을 투자한 각국 매장은 효율이 떨어졌다.

2015년 파블로브스키 사장은 획기적인 ‘가격 조정(PH·Price Har-monization)’ 정책을 실시했다. 세계 200개 부티크에서 판매하는 제품 간 가격 차이를 10% 이내로 좁히는 게 골자다. 이를 위해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판매 가격을 약 20% 올리고, 한국 등 아시아 판매 가격을 평균 20% 내렸다. 현지 시장에서 현지 고객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PH 정책을 실시한 지 4년째다.
“신제품이 많고 환율이 수시로 오르내려 가격 차이를 10% 이내로 맞추는 건 상당한 도전이지만 계속해서 유지하고 있다. 덕분에 지난 5년간 한국 시장은 빠르게 성장했다. 앞으로 더 성장할 것이다. PH 정책은 샤넬이란 브랜드 파워를 키우는 데 있어서 핵심 전략이었다. 이젠 세계 모든 부티크가 골고루 고객을 맞이할 수 있게 됐다. 가격을 이유로 특정 매장에 몰리는 일은 거의 없다. 20년 후를 내다본 결정이었다.”
명품의 최대 소비처인 중국의 경제성장이 둔화하고 있다. 영향이 있나.
“거의 없다. 샤넬은 중국에서 소규모로 운영한다. 매장이 14개뿐이다. 한국과 숫자가 같다. 중국 내 목표는 핸드백을 파는 게 아니라 기성복 부문을 키우는 것이다. 핸드백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팔 수 있지만, 그걸 원하지 않는다. 중국인들에게 샤넬 스타일, 샤넬 실루엣이 뭔지 알려주는 게 가장 중요한 목표다. 아직 중국 고객들이 파리·런던·한국 매장에 와서 가방을 주로 사지만 차차 바뀔 것으로 기대한다.”
럭셔리 브랜드도 실적이 양극화됐다. 샤넬의 차별화된 강점은.
“샤넬이 성공한 원인은 전략의 일관성 때문이다. 1990년 샤넬에 입사한 후에도 바뀌지 않는 점은 창작 활동을 최우선에 두는 점이다. 새로운 직물을 포함한 원단, 자수 등 원천 기술을 보유한 공방을 직접 운영한다.”
럭셔리란 무엇인가.
“궁극의 럭셔리는 ‘자유’와 ‘선택’이다. 고객이 새로운 가치를 경험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기회를 제공하는 이유다. 1년에 새로운 컬렉션을 10차례 발표한다. (보통은 1년에 컬렉션을 4회 발표한다.) 럭셔리 산업은 상상력과 꿈을 파는 비즈니스다. 제품을 보고 만졌을 때 그것이 내포한 지위와 자신감을 누리게 하는 게 럭셔리 브랜드다.”

라거펠트 사후 또 매각설 “루머·추측 섞인 가짜뉴스”

카를 라거펠트. [AFP=연합뉴스]

카를 라거펠트. [AFP=연합뉴스]

샤넬은 비상장 기업이어서 기업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다. 1920년대에 창업자 샤넬 여사로부터 최대 지분을 인수한 베르타이머 가문이 소유하고 있다. 투자자 영향을 받지 않는 독립 브랜드여서 전략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게 가능했다. 제품과 크리에이터에 관해선 이야기하지만 ‘무대 뒤’ 일은 언급하지 않는 게 커뮤니케이션 원칙이다. “고객에게 주방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를 전부 이야기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주방 안을 공개하면 브랜드에 대한 상상력을 일으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최대 주주인 알랭과 제라르 베르타이머 형제도 좀처럼 나서지 않는다. 이런 신비주의 전략 때문에 샤넬은 종종 루머의 대상이 된다. 지난해 깜짝 실적 공개는 매각설을 불식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올 초 카를 라거펠트 사망 후 다시 매각설이 돌고 있다. 이에 대해 브루노 파블로브스키 사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루머와 추측이 뒤섞인 가짜 뉴스”라고 말했다. “라거펠트와 30년을 함께 일했다. 그가 아픈 것을 알았기 때문에 함께 이야기하면서 미래를 준비할 수 있었다. 라거펠트는 강한 팀과 더 강한 비전을 남겼다.”

박현영 기자 hy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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