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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유가족이 종북?…朴 기무사, 참사 초기부터 낙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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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정배 민주평화당 의원이 공개한 기무사 문건. 2014년 세월호 참사 초기 세월호 유가족들을 종북 세력으로 지칭하고 대응 계획을 세운 내용이 담겼다. [사진 천정배 의원실 제공]

천정배 민주평화당 의원이 공개한 기무사 문건. 2014년 세월호 참사 초기 세월호 유가족들을 종북 세력으로 지칭하고 대응 계획을 세운 내용이 담겼다. [사진 천정배 의원실 제공]

박근혜 정부 당시 국군기무사령부(현 국가안보지원사령부)가 세월호 참사 발생 초기부터 정부 대처를 비판하는 시민단체와 유가족 등을 ‘종북세력’으로 규정하고 극우단체를 이용한 여론전까지 펼치려한 것으로 드러났다.

7일 민주평화당 천정배 의원은 이같은 내용이 담긴 기무사 문건 ‘진도 해상 여객선 침몰 관련 방첩활동 계획’(4월 21일 작성), ‘안보단체, 세월호 관련 종북세(勢·세력) 반정부 활동에 대비 긴요’(5월 21일), ‘종북세 촛불집회 확산시도 차단 대책’(5월 30일) 3건을 공개했다.

천 의원에 따르면 기무사는 세월호가 침몰한 지 5일 후부터 정부에 대한 비판 여론을 ‘종북’과 ‘반정부 활동’으로 매도했다. 특히 참사 한 달여 후인 5월부터는 세월호 유가족을 사실상 종북세력으로 규정하고 대응책까지 마련했다.

이런 사실은 천 의원과 KBS 보도에서 공개된 문건에서 속속 확인된다. 기무사는 2014년 4월 21일 작성된 ‘진도 해상 여객선 침몰 관련 방첩활동 계획’ 문건에서 “종북좌파들이 반정부 선동 및 국론분열 조장 등 체제 안정성을 저해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하며 이를 차단하기 위한 방첩활동을 계획했다.

또 사망(실종)자 가족 대상 반정부 활동 조장 종북좌파 동정 확인, 사이버상 북·종북좌파들의 여론 호도 행위 수집 등을 ‘활동 중점’ 항목으로 명시했다.

여기에 진도지역 21명(610부대), 사이버 활동 10명(3처 7과) 등 기무사 요원 배치, 사망(실종)자 가족 접근 반정부 활동 조장 불순세 차단, 단원고 선·후배, 지역 주민들의 촛불시위 등 반체제 징후 포착 등을 활동 계획으로 내세웠다.

천정배 의원이 공개한 세월호 참사 당시 기무사 작성 문건. [사진 KBS 뉴스 화면 갈무리]

천정배 의원이 공개한 세월호 참사 당시 기무사 작성 문건. [사진 KBS 뉴스 화면 갈무리]

세월호 참사 한달 가량이 지난 5월 31일에 작성된 ‘안보단체, 세월호 관련 종북세(勢) 반정부 활동에 대비 긴요’ 문건에서는 ‘세월호 참사 시민촛불 원탁회의’(세월호 원탁회의)를 종북세력으로 지칭하며 “참여연대·민노총 등은 희생자 가족 악용 정부 비판 선동”이라고 적었다.

세월호 원탁회의는 같은 해 5월 22일 법조계와 종교계, 시민사회계 등 전국 618개 시민단체가 모여 결성한 단체다. 당시 유가족이 진행하고 있던 진상규명 촉구 서명 운동의 확대와 촛불집회 개최 등 활동을 했다.

이 문건에도 대응방안이 명시돼 있었다. 기무사는 ‘종북세 활동 첩보 전파 및 맞대응을 위한 공감대 형성’ 등을 제기하며 ‘602부대를 통해 종북세 집회·시위 계획 입수 후 향군에 전파 중’이라는 내용을 담았다.

천정배 의원이 공개한 세월초 참사 당시 기무사 작성 문건. [사진 KBS 뉴스 화면 갈무리]

천정배 의원이 공개한 세월초 참사 당시 기무사 작성 문건. [사진 KBS 뉴스 화면 갈무리]

5월 30일 ‘종북세 촛불집회 확산시도 차단 대책’ 문건에서는 종북 세력과 보수 세력을 대비시키면서 ‘세월호 피해자 대책위’의 활동을 종북세력 활동으로 구분했다.

이어 ‘범보수연합(가칭) 결성, 보수세 결집을 통한 조직적 맞대응’을 대응방안으로 주문하면서 종북세 활동 첩보를 범보수연합에 실시간 전파, 청계·서울광장·대한문 등 주요 집회장소 선점, 종북세 과격·폭력 집회 시 활동력 있는 단체 적극 활용 등을 주문했다.

천 의원은 “기무사는 슬픔에 잠긴 세월호 유가족을 종북 세력이라고 낙인 찍어 사찰하고, 청와대는 이런 기무사의 활동을 치하하고 독려했다”며 “청와대와 기무사 등 권력의 핵심은 이미 세월호 참사 초기에 종북 프레임으로 대응해 가기로 결심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고 추정했다.

이어 “이는 용납할 수 없는 패륜 행위이며 군사정권에서도 생각하기 힘든 헌정질서 파괴 범죄다. 반드시 엄정한 처벌이 뒤따라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광수 기자 park.kwangs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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