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나만 잘못한거야?" 묻는 다섯 살 딸의 처세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더,오래] 장윤정의 엄마와 딸 사이(14·끝) 

[그림 장윤정]

[그림 장윤정]

어릴 때를 떠올려 보면 몇 가지 좋았던 기억과 싫었던 기억만 생각 날 뿐 그 외에 평범한 날들은 열흘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5살 전으로는 아무것도 기억이 없고, 6살부터 한두 가지 인상 깊은 일만 기억난다.

딸은 올해 5살이다. 4살까지만 해도 물고 빨고 예뻐하기도 바쁠 만큼 귀엽고 예뻤다. 그때의 동영상을 찾아보니 그럴 만하다. 아이는 말대꾸도 할 줄 모르고 “이리와” 부르면 웃으며 다가오고 “하지 마!”한 마디에도 훈육을 알아듣는 듯 행동을 멈췄다. 스스로 이 정도면 훈육도 육아도 잘하는 편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다.

[그림 장윤정]

[그림 장윤정]

5살이 되자 아이는 안고 다닐 수 없을 만큼 컸다. 말대꾸도 곧잘 하고 “하지 마!”라는 단어쯤은 우습게 무시한다. 점점 강도 높게 훈육하고, 어떨 때는 나 스스로가 컨트롤이 안 될 만큼 화가 치밀기도 한다. 그러다 잠든 아이를 보면 한없이 미안하고 또 해가 뜨면 사고를 치고 혼내고 또 미안해하는 날들의 반복이다.

기억력은 얼마나 좋은지 “옛날에 엄마가 나한테 이렇게 화냈잖아”하면서 흉내를 낼 땐 얼굴이 확 붉어진다. 굳이 확인하고 싶지 않은 내 모습을 아이가 거울처럼 보여준다. 이 시기 아이에겐 모든 경험이 처음이기에 그만큼 기억에 잘 남는다고 했다. 간혹 “엄마 000 갔을 때 너무 좋았어”라는 이야기도 곧잘 한다.

[그림 장윤정]

[그림 장윤정]

아이는 아직도 아이인데 이제 혼자 화장실도 가고 혼자 밥도 먹으니 슬슬 나도 물고 빨던 시기에서 벗어나 “이것 좀 해라. 저것 좀 해라” 하는 나 자신에게 그러지 말자고 다짐하면서도 나도 이제 좀 편하고 싶은 마음이 자꾸 든다. 그래서 아이니까 당연히 서툴고 못 하는 일에도 짜증 내고 아이 탓을 하는 내 모습이 싫으면서도 또 화부터 내고 있다.

어느 날 육아나 훈육엔 거의 관여하지 않는 신랑이 아이랑 시간을 보내게 되면서 이것저것 같이 하게 됐다. 놀아주는 것도 아이 입장도 아닌 자기만 즐거운 놀이라든지, 아이랑 놀아준다며 살살 아이를 약 올리는 모습에 속으로 ‘참자’를 얼마나 외쳤는지 모른다.

[그림 장윤정]

[그림 장윤정]

약이 바짝 오른 아이가 동화책을 읽어준다는 아빠에게 발로 툭툭 장난을 걸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내내 아빠가 장난을 걸고 약을 바짝 올리는데, 그것이 놀이라고 생각한 아이가 예의 바르게 행동할 리가 없다. 속으로 ‘빨리 읽고 자라’라고 상황을 지켜보았다. 자꾸 발로 건드는 아이가 버릇없어 보였는지 버럭 화를 내는 남편의 소리에 아이는 엉엉 울었다. 남편이 먼저 건 장난을 아이는 놀이인 줄 알았을 것이다.

순간 왜 아이한테 먼저 그렇게 쓸데없는 장난을 거냐며 화를 낼까 고민했다. 그럼 아이 앞에서 싸워야 할 테고, 아이만 더 속상하게 하는 꼴이니 꾹 참고 아이를 안아주고 토닥였다. “괜찮아. 그런데 발로 그렇게 하는 건 버릇없는 행동이야”라고 말해주니 아이가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다 내가 잘못한 거야? 다 내 잘못이야?”하고 물었다.

[그림 장윤정]

[그림 장윤정]

아이에게 너무 미안했다. 남편만 탓할 것이 아니다. 평소에도 엄마에게 “이러면 안 돼. 네가 잘못했으니까 혼나는 거야”라는 말이 쌓이고 쌓여 아이는 모든 게 자기 탓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나 보다. 남편 탓만 할 게 아니다. 모양은 다르지만 평소의 내 모습하고 다를 게 없다. 아이에게 좋은 부모가 되겠다고 다짐해 놓고, 아이가 자아가 생기고 자기표현을 하자 피곤하고 귀찮게 생각하는 엉망인 부모가 되고 있구나 싶었다.

아이가 작고 귀여울 때 했던 다짐을 나는 잘 지키고 있나 생각하니 하나도 지키는 것이 없다. 아이가 커서 손이 덜 간다는 이유로 모른 체하고 내버려 둔 육아 권태기를 남편의 모습을 통해 이제 막 깨달았다. 이 육아 권태기를 어떻게 극복할지 공부하고 노력해야겠다. 그래야 좋은 어른으로 잘 키워 낼 수 있을 테니까. 낳았으니 노력하고 잘 키워내야지.

[그림 장윤정]

[그림 장윤정]

장윤정 주부 theore_creator@joongang.co.kr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