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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라진 사춘기 ‘안드로메다’에서 온 초등 자녀와 소통하는 법

중앙일보

입력

[어른들은 몰라요➂]

부모의 부정적 감정이 섞인 말은 자녀를 힘들게 한다. [사진 pixabay]

부모의 부정적 감정이 섞인 말은 자녀를 힘들게 한다. [사진 pixabay]

“엄마도 만날 스마트폰 보고 있잖아. 왜 나는 게임하면 안 되는데?”
“어른하고 애들하고 같니. 학생이면 공부를 해야지. 어디서 배운 말버릇이야!”

 이모(39·경기 고양시)씨는 얼마 전 초등학교 5학년 아들과 식사도중 자기도 모르게 버럭 소리를 질렀습니다. 학기 초에 사준 스마트폰이 발단이었죠. 밥 먹을 때는 게임하지 말라고 여러 번 주의를 줬는데 고쳐지지 않자 감정이 폭발했습니다. 이씨는 “화낸 직후 곧바로 후회했지만, 작년까지만 해도 천사 같던 아들이 왜 갑자기 돌변했는지 모르겠다”며 답답해했죠.

 몇 년 전 학부모들 사이에선 ‘중2병’이라는 말이 유행했습니다. 항간에는 전쟁이 나도 중학생이 무서워 적군이 도망간다는 이야기까지 있었죠. 그 만큼 청소년들의 사춘기가 ‘질풍노도’와 같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사춘기 시작 연령이 초등학교 고학년으로 앞당겨졌습니다. 그래서 최근에는 ‘초4병’이라는 말까지 생겼고요.

 초등교육 전문가 김선호씨는 자신의 책 ‘초등 사춘기: 엄마를 이기는 아이가 세상을 이긴다’에서 이 시기 아이들을 ‘지구에 사는 안드로메다인’이라고 비유했습니다. “무조건 자기가 옳다고 우기며 지금까지 배워온 세상의 틀과 규칙을 거부하는 거죠. 자기 안에 꿈틀거리는 뭔가 모를 강한 역동성이 그냥 뚫고 나가라고 자꾸 얘기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 번 뚫어볼 요량으로 일단 들이대는 것이고요.”

 ‘안드로메다’에서 온 초등 고학년 자녀들을 지구인 엄마·아빠의 입장에선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행여 그런 아이에게 ‘꼰대’처럼 ‘우리 땐 안 그랬다’거나 이씨처럼 소리라도 버럭 지르고 나면 아이는 정말 ‘안드로메다’로 떠나버릴지 모릅니다. 이런 상황이 너무 답답하기만 한 부모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이를 그냥 놔둬야 할까요, 아니면 강하게 훈육이라도 해야 할까요.

 제일 먼저 해야 할 것은 부모 스스로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는 일입니다. 언성을 높이는 것은 사태를 악화시킬 뿐입니다. 순간의 감정을 못 이겨 화를 내거나 진심이 아닌 말로 상처를 주게 되면 정작 문제 해결은 못하고 말싸움만 하다 끝납니다. 즉, 자신의 목적이 문제해결을 위한 대화에 있는지, 아니면 감정을 아이에게 표출하고 말 것인지 정확히 구분해야 합니다.

[중앙포토ㆍ연합뉴스]

[중앙포토ㆍ연합뉴스]

 사실 많은 부모들이 자녀와의 갈등 상황에서 자신이 주도권을 쥐고 있다는 사실을 까먹습니다. 김종영 서울대 기초교육원 교수는 “아이에게 부모는 엄청난 ‘갑’이다, 사소한 말 한 마디도 자녀의 마음에 큰 상처가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는 설령 아이가 흥분해서 이야기하더라도 덩달아 감정을 폭발해선 안 됩니다.

 물론 감정을 절제하는 것이 쉽진 않습니다. 앞서 이씨처럼 소리를 지르게 되는 주된 이유는 아이가 부모의 권위에 도전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또 말끝마다 꼬박꼬박 말대답하는 것은 반항이나 대드는 걸로 인식하죠. 그러나 이 시기 ‘안드로메다에서 온’ 아이들은 ‘일단 들이대고 본다’는 걸 감안하면, 아이의 언행 하나하나에 상처받을 필요가 없음을 알게 됩니다.

 자, 이렇게 안드로메다인의 공격을 잘 참아냈습니다. 그런 다음에 성숙한 지구인은 무엇을 해야 할까요? 바로 ‘공감대화’입니다. 김창남 경희대 언론정보대학원장은 “사실과 감정을 분리해 말할 것”을 주문합니다. 아이의 인격 자체를 문제 삼지 말고, 구체적인 행동을 콕 집어 지적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말싸움으로 안 번지고 아이도 상처받지 않습니다.

 스마트폰에 빠진 아이에게 “나중에 뭐가 되려고 그러냐”, “누구 닮아 이 모양이냐” 등의 표현은 금물입니다. 대신 “게임한지 1시간 지났다”, “이번 주에만 벌써 3번이나 식사 때 스마트폰을 봤다”고 말하는 거죠. 그러면서 잘못된 행동이 미치는 영향에 대해 설명을 해줍니다. “오래 게임하면 뇌가 빨리 늙고 시력이 나빠진다”는 식이죠. 그 다음엔 차분히 제안을 합니다. “1시간 동안 게임했으니 이젠 운동하거나 공부했으면 좋겠다”고 말이죠.

 그 다음은 부모가 느낀 감정을 차분히 설명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감정을 표현하는 것과 설명하는 매우 다릅니다. 앞서 이씨의 사례처럼 소리를 지르게 되는 것은 아이가 단순히 약속을 어겼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을 무시한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럴 땐 아이에게 솔직히 이야기해주세요. “엄마(아빠)도 너처럼 똑같이 말에 상처받고 힘들어. 네가 자꾸 약속을 어기고 짜증내면 마음이 아파.”

 이렇게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설명하다 보면, 자녀에게 소리를 질렀던 감정의 본질이 무엇인지 깨닫게 됩니다. 엄밀히 말해 자녀에게 화가 나서 소지를 지른 것이 아니라, 상처받은 마음이 아팠기 때문에 격한 표현을 하게 된 것이죠. 이렇게 감정을 즉각 표출하지 않고 설명하는 훈련을 하다 보면 자녀도 사실과 감정을 분리하고, 또 감정을 절제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우게 됩니다. 그러면서 부모와 자녀 사이에 공감대가 형성되는 것이고요.

공감대화법

공감대화법

 하지만 이 같은 방식이 어느 날 갑자기 요술방망이처럼 ‘뚝딱’ 하고 통하는 것은 아닙니다. 만약 평소 흥분을 잘 하던 부모가 자녀에게 차분하게 자신의 감정을 설명하고 있으면 아이들은 오히려 “어디서 전문가 이야기 하나 듣고 왔구먼”하고 시큰둥한 반응을 보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일 중요한 것이 반복과 습관입니다.

 김종영 교수는 “커뮤니케이션은 언어적인 소통과 비언어적 소통 두 가지로 이뤄진다”며 “말로는 진심이라고 하면서도 표정과 몸짓에 진심이 배어나지 않으면 설득력이 없다”고 설명합니다. “비언어적 소통에 진심을 담으려면 수없이 반복하고 생활화해야 한다”는 것이죠.

 처음엔 감정을 표현하지 않고 설명한다는 게 어색하고 간지러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같은 공감대화를 어릴 때부터 훈련하면 성인이 돼 큰 도움이 됩니다. 쉽게 짜증내고 감정을 표출하는 사람, 듣지 않고 제 말만 옳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인간관계에서도 금이 가기 십상입니다. 회사와 조직에선 업무 효율도 떨어뜨리고요. 자신의 아이가 성숙한 지구인으로 커나가길 바란다면, 부모부터 그런 자격을 먼저 갖춰야 하지 않을까요?

윤석만 기자 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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