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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락원을 지켜라” 대 이은 70년 다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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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박정호 기자 중앙일보 수석논설위원
박정호 문화스포츠 에디터

박정호 문화스포츠 에디터

죽음을 눈앞에 둔 시아버지는 맏며느리에게 간곡한 당부를 남겼다. 이를테면 유언과 같았다. “성락원(城樂園)을 영구히 보전했으면 한다. 관리를 잘해서 문화재로 길이 남겼으면 한다. 절대 혼자 누리지 말고 일반에도 공개해 많은 이들이 우리 정원의 아름다움을 함께 즐겼으면 한다”는 부탁이었다. 며느리는 그 유지를 가슴에 품었다.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정원의 옛 모습을 되찾겠다고 마음을 다졌다.

서울에 남은 유일무이 전통정원 #시아버지 뜻 받든 며느리의 결단 #임시개방 소식에 관람객들 몰려

여기에서 시아버지는 사업가 심상준(1917∼91)씨다. 한국 원양어업의 개척자로 꼽힌다. 6·25 전쟁 직후 피폐해진 경제를 일으킬 방안으로 바다를 선택한 고인은 1951년 사재 10억원을 들여 제동산업을 설립했다. 그리고 57년 6월 한국 최초의 원양어선 지남호(指南號)를 인도양에 띄워 참치 어획에 나섰다. 지난달 중순 은퇴를 선언한 국내 최대 수산업체 동원그룹 김재철(85) 회장은 59년 첫 조업에 나선 지남2호 선장 출신이다.

고(故) 심상준 회장은 한국 전통정원의 숨겨진 지킴이다. 6·25 발발 직전인 50년 4월 살림이 어려워진 의친왕 이강(1877~1955)에게서 성락원을 사들였다. 1790년대 조선 철종 때 이조판서를 지낸 심상응이 별서정원(別墅庭園·자연을 즐기는 정원)으로 만든 것으로, 고종의 아들 의친왕이 이어받아 별장으로 사용해온 곳이다. 심 회장 개인으로는 5대조 조상이 머문 곳을 되찾은 의미가 있지만 그는 200여 년 내려온 전통정원을 가꾸는 데도 갖은 정성을 기울였다.

맏며느리 정미숙(72) 한국가구박물관장은 이렇게 기억했다. “74년에 시집 왔으니 벌써 이곳 생활 46년째입니다. 시아버님께선 생전에 잡목 잔가지 하나라도 자르지 못하게 하셨어요. 이름도 없던 정원에 ‘성 밖의 낙원’이란 뜻의 성락원을 지어 붙이셨고요. 사업을 하면서도 외국 파트너를 이곳에 자주 초대하셨습니다. 우리 정원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신 거죠. 정원을 없애고 번듯한 집을 지을 수도 있었을 텐데 이렇게 물려주셨으니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감사할 뿐입니다.”

서소문 포럼 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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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북동 북한산 자락에 있는 성락원은 현재 서울에 남아 있는 유일한 한국 전통정원이다. 산업화 개발 바람에 서울 시내 전통정원이 하나둘씩 사라지거나, 원형이 크게 망가졌지만 이곳만큼은 주변 경관을 최대한 끌어안는 우리네 정원문화의 정수를 간직하고 있다. 광화문에서 차량으로 10여분 거리, 그것도 면적 1만4400㎡(약 4350평)의 대형정원이 서울 노른자위 땅에 남아 있다는 게 놀라울 뿐이다. 박중선 한국가구박물관 이사는 “대지로 지정됐기에 빌라나 저택을 지었다면 금전적 이득이 막대했을 것”이라고 전했다.

며느리 정 관장도 독하게 마음을 먹었다. 일부 친척들의 반대에도 시아버지의 유지를 받들었다. 92년 사적(史蹟) 등록에 이어 2008년 명승(名勝) 지정을 받았다. 빼어난 경관과 각별한 역사성을 동시에 인정받은 것이다. 그리고 2008년부터 본격 복원에 나섰다. 일제강점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성락원 복판의 넓은 잔디밭을 걷어내며 돌과 물이 어울리는 예전 모습을 찾아냈다. 또 소나무 600여 그루를 심어 옛 정취를 살리려 했다. 50~60년대 지은 정원 내 양옥 건물도 한옥으로 돌려놓았다.

성락원은 지난달 23일 임시 개방됐다. 개방 소식이 알려지자마자 다음 달 11일까지 예정됐던 관람 예약이 순식간에 다 찼다. 예약 e메일만 1만2000통이 몰렸다고 한다. 초록빛 자연에 대한 회색빛 도시인의 그리움이 폭발했다고나 할까. 기자가 성락원을 둘러본 지난 2일에도 여러 사람이 발길을 돌려야 했다. “바로 이웃에 사는 데 한번 볼 수 없느냐”며 청하는 이들도 띄었지만 “가을에 다시 문을 열 예정”이라는 답변에 만족해야 했다.

성락원은 현재진행형이다. 복원 공사가 70% 정도 이뤄졌다. 철문으로 된 입구를 전통 솟을삼문으로 바꿔야 하고, 정원 내 볼썽사나운 콘크리트 보(洑)를 허물고 힘찬 계곡 물길도 되살려야 한다. 1년 365일 상시 개방까진 몇 년이 더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문화재청과 서울시의 공조도 요청된다. 그럼에도 서울에서 이만한 공간을 누리게 된 건 작은 축복임에 틀림없다. 한 걸음 한 걸음 옮길 때마다 돌과 물, 꽃과 나무의 다른 풍경을 보여주는 성락원의 일보일경(一步一景) 미학이 향후 복원 과정에서도 그대로 적용되길 바랄 뿐이다.

박정호 문화스포츠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