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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국민통합은 누가 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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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서승욱 기자 중앙일보 정치국제외교안보디렉터
서승욱 도쿄총국장

서승욱 도쿄총국장

나루히토(德仁) 일왕 즉위와 레이와(令和) 시대 개막에 일본 열도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생전 퇴위’로 왕이 바뀌는 건 202년 만이다. 왕(히로히토)의 죽음으로 새 시대가 열렸던 30년 전 헤이세이(平成) 원년의 초상집 분위기와는 딴판이다. 퇴위를 결단한 아키히토(明仁) 전 일왕(지금의 상왕)에게 보내는 일본 국민의 시선은 그래서 더 애틋하다. 국민들이 특히 선명하게 기억하는 장면이 있다. 요즘에도 NHK 뉴스에 자주 등장한다. 재위 초기 도쿄의 노인시설을 찾은 아키히토 왕 부부의 모습이다. 가위바위보에서 진 사람이 승자의 어깨를 안마해 주는 게임에 왕이 직접 참가했다. 게임에서 진 왕은 상대편 할머니의 어깨를 양손으로 주무르는 시늉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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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엔 이 모습이 너무나 파격적이어서 왕실 내부의 충격이 컸다고 한다. 다년간 왕실 취재를 담당해온 마이니치 신문의 베테랑 기자는 칼럼에서 “쇼와(昭和)시대 일왕(히로히토)을 오랫동안 모셔온 측근들이 특히 충격이 컸고 (일왕과 동행한) 왕비를 비판하는 보도까지 흘러나왔다”고 회고했다. 패전 이듬해인 1946년에야 신격을 부인하는 ‘인간 선언’을 했던 부친 히로히토의 시대엔 상상도 못 했던 일이었다. 하지만 아키히토 왕은 멈추지 않았다. 체육관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지진 피난민을 위로하며 스스로를 계속 낮췄다. 국민들도 이 모습에 점점 익숙해졌다. 일본 헌법상 ‘국민통합의 상징’인 그가 자신만의 스타일로 ‘국민통합의 일왕상(像)’을 정립해 나간 것이라고 일본 언론들은 평가한다. 지난 1일 나루히토 왕의 첫 다짐도 “항상 국민을 생각하며 국민에게 다가가면서, 헌법에 따라 일본국과 국민통합의 상징으로서 책무를 완수할 것을 맹세한다”였다.

메이지(明治)시대에 나라를 빼앗기고, 쇼와 시대에 전쟁의 광기에 신음했던 한국인들에게 일왕을 향한 일본인들의 획일적인 열광은 분명 어색하다. 하지만 국민통합 상징의 존재감, 새로운 시대를 맞아 사회 전체에 넘쳐나는 활력이 부러운 것도 사실이다.

정권이 출범한 지 2년이 지났지만 한국에선 아직도 ‘적폐냐 아니냐, 우리 편이나 아니냐’는 논란이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게다가 국민통합의 듬직한 언덕이 되어야 할 이들이 오히려 편 가르기 논란의 발화점이 되고 있다. 최근 ‘레이와 시대 한·일관계’를 주제로 인터뷰했던 나카니시 히로시(中西寬) 교토대 교수는 “일본이 한국 사회의 다양성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인들조차 한국 사회의 다양성을 더욱 존중하겠다는데, 정작 한국에선 그 다양성이 존중받지 못하는 현실이 우울하기만 하다.

서승욱 도쿄총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