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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일 중 165일 '감금'···실종신고 들어왔던 '공시' 출제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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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박재현
박재현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 

인사혁신처 공개채용 1과 최재혁 행정사무관이 직원들과 함께 26일부터 예정된 9급 공무원 면접시험에 대비한 회의를 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인사혁신처 공개채용 1과 최재혁 행정사무관이 직원들과 함께 26일부터 예정된 9급 공무원 면접시험에 대비한 회의를 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20만명가량이 응시하는 9급 공무원 시험은 대학입시(55만여명), 공인중개사 자격시험(33만여명)과 함께 우리나라 3대 시험에 속한다. 특히 취업난이 계속되면서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9급 공시로 전환하는 고졸 응시생과 퇴직 이후를 대비하는 중장년층이 크게 늘고 있는 추세다. 검찰직과 교정직에 지원하면서 형사소송법이나 형법 대신 사회와 수학을 선택하는 바람에 ‘검찰 기소’ 등 기본적 용어도 모르는 9급 공무원 얘기가 화제가 됐다. 시험을 출제하고 감독하는 이들의 고심도 그만큼 커지고 있다.

[박재현 논설위원이 간다] #음식물 쓰레기 내부서 말린 뒤 처리 #합숙 생활 중 각종 질환 호소 잦아 #전문성 위해 시험과목 조정하고 #컵밥 먹는 현장의 목소리 들어야

지난달 29일 세종시 인사혁신처의 공개채용 1과 사무실. 최재혁 집행계장과 5명의 직원이 스크린을 보며 도상훈련을 하고 있었다. 이달 26일부터 열리는 면접시험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지난달 6일 치러진 1차 시험에 합격한 7000여명을 상대로 이뤄질 면접시간, 면접위원들의 질문 내용을 점검하고 있었다. 최 계장은 “수험생들의 동선을 동일하게 맞춰야 하고, 면접위원도 1500여명이나 되기 때문에 준비할 게 너무 많다”고 말했다. 9급 출신인 김동석 주무관은 “시험이 어려워지고 면접절차도 더 까다로워지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이들에겐 “면접이 불공정했다” “관리 부실로 면접을 망쳤다”는 불만의 목소리를 잠재우는 게 가장 큰 숙제다. 2000여명은 탈락하기 때문이다.

이날 회의에 앞서 만난 이광열 시험출제과장은 9급 공무원 시험이 출제되기까지의 과정을 설명했다. 정년이 얼마 남지 않은 그는 황서종 인사혁신처장의 부탁을 받고 올 1월 자리를 옮겼다. 이 과장은 9급 시험을 위해 15일간 ‘감금’된 것을 포함해 올 한해 165일 정도 과천의 국가고시센터에서 합숙을 해야 한다. 그만큼 힘든 보직이다. 그는 사실상 감금이라는 질문에 “연금(軟禁) 정도가 아닐까요”라고 했다.

지난해 시험출제과장은 181일 동안 연금이 됐었다. 국가고시센터에 들어가면서 핸드폰은 물론 일체의 연락 장비를 압수당하고, 이메일 등은 전혀 사용할 수 없다. 센터에서 나오는 음식물 쓰레기조차 외부로 나가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자체적으로 말려서 처리하는 것이다. 100여명의 시험문제 선정위원과 재검토 요원 50여명, 관리 직원 및 생활요원 40여명, 보안과 간호를 담당하는 30여명 등 모두 220여명이 사실상 감금 상태로 생활한다. 한 출제위원은 상(喪)을 당해 인사처 직원과 보안요원의 감시를 받으며 장례를 마쳐야 했다. 보안요원이 폐소공포증이 있는 것을 뒤늦게 알고 소동을 빚은 사례도 있었다. 한 직원은 집에 들어오지 않는 날이 잦아지자 집주인이 실종신고를 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들의 합숙에 앞서 문제를 출제하는 위원들도 마찬가지다. 과목별로 4명의 출제위원은 합숙을 하며 각각 15문제씩을 출제한 뒤 위원 간 교차검토를 통해 문제를 확정한다. 시험 문제들은 출제관리 종합시스템에 입고되며, 이는 수년 치를 모아서 문제은행 형태로 관리된다. 9급의 경우 인사혁신처에서 관리하는 전체 출제위원이 1만4000여명 정도 된다. 하지만 보안을 이유로 명단은 일체 비밀에 부쳐지고 있다.

합숙 기간 동안 출제 위원과 직원들은 1일 차에는 문제은행에 있는 시험문제를 선정한다. 이후 선정 문제가 기출 문제 및 일부 모의문제 등과 유사한지 또는 중복되는지 여부를 검토하고 확인하는 절차를 거친다. 각 과목별 문제에 대해 재검토 요원들이 다시 한번 교차로 검토를 한 뒤 오·탈자와 편집에서의 오류사항을 확인하게 된다. 보통 일주일 뒤 문제지가 인쇄되고 그 문제지는 시험 장소로 이동하게 된다. 지난해 기준 모두 3865개의 객관식 문제지가 출제됐다.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신분 노출과 보안을 이유로 인사혁신처 대변인실을 통해 전달된 출제 위원의 의견서에서 대부분은 “국가 공직자를 선발하는 과정에 일조하는 것에 대해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다만 “개인적인 심리적, 정서적 긴장 상태와 가족들의 안위를 둘러싼 정서적 불안이 조금은 불편했다”고 말했다. 건강에 대한 배려를 주문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럼, 9급 공시를 준비하는 이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짧은 취재 기간에 느낀 서울 노량진 공시촌의 풍경은 잿빛이었다. 노량진수산시장 인근의 컵밥거리엔 커피를 비롯해 순대, 닭강정, 볶음면, 쌀국수, 멸치얼큰 수제비, 황제 컵밥 등 수십 가지의 길거리 음식이 컵밥 행태로 팔리고 있었다.

4000원 안팎의 컵밥이 주식인 이들에게 ‘미래’에 대한 질문은 어찌 보면 사치처럼 느껴졌다. “당장 이 지긋지긋한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많은 듯했다. 어떤 이는 냉소적이었고, 어떤 이는 도발적이었다. 인근 재수학원을 다니다가 공시학원으로 옮겼다는 한 수험생은 “필수과목인 국어, 영어, 한국사는 이미 고등학교 때 했던 공부여서 큰 어려움이 없을 듯했고, 선택 과목에도 사회, 과학, 수학 등이 들어있어서 좀 위안이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막상 시험 결과는 좋지 않았다고 했다. 또 다른 수험생은 “지방대를 나와 취직이 안 돼 공시로 전환했다. 솔직히 국가를 위한다는 생각보다는 일단 눈앞에 닥친 생활고부터 해결하고, 불안정한 노후도 대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들에겐 한 평 남짓한 고시원 방도 사실상 연금이나 마찬가지였다. 부산에서 올라왔다는 수험생은 “서른살이 다 됐지만 취직을 못 해 노동일까지 했다. 보다 못한 어머니가 강제로 9급 공시를 하라고 해 시험 준비는 하고 있지만 제대로 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문제를 제출하는 공무원과 교수들이나 시험을 준비하는 20, 30대나 합숙생활이란 명분으로 연금과 감금에 가까운 생활을 하는 것이다.

국가가 개인의 직업까지 보장할 수는 없지만 정치논리에 빠져 일자리와 먹거리를 만들지 못할 때 국민들이 얼마나 처량해질 수 있는가를 볼 수 있는 현장이었다. 이들에게 소득주도 성장이나 주 52시간 근무는 정치적 수사(修辭)에 불과한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다. “일자리만 있으면 이렇게 아무 생각 없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겠어요”라는 지방 출신 수험생의 하소연이 쉽게 가시지 않는다.

“공공기관 채용비리 막기 위한 전담 기구 필요”

1949년 공무원 채용이 시작된 이후 올해로 70년을 맞고 있다. 공직을 향한 꿈과 도전은 과거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 삶이 팍팍해지면서 오히려 공직을 원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때문에 채용 시스템도 그만큼 변화하고 발전해야 한다. 이 정부의 주장처럼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워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그동안 쌓인 자료와 경험을 충분히 활용할 필요가 있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공공기관 채용 비리나 문제 출제 오류에 따른 수험생들의 불만을 없애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등의 채용을 전담으로 지원할 수 있는 전문기관의 설립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전문기관 설립을 통해 그동안 공공기관이 개별적으로 민간기업에 위탁한 채용업무를 대폭 줄여 공정성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투명한 채용은 물론 장애인이나 저소득층과 같은 소외 계층을 위한 별도의 선발제도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취재 과정에서 나왔다. 인사혁신처의 롤 모델을 적극 활용하는 것도 한 방안이다. 컵밥으로 끼니를 때우는 수많은 공시생들을 아픔을 보듬는 것은 역시 평등과 공정한 절차를 확보하는 것이다.

박재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