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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실리콘밸리, 판교]게임 개발자 김동건 “학부모 표 얻으려 과한 규제…게임산업 못 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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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셧다운 등 세계서 유례 없는 규제 #게임 개발자 상업적 성공 힘들어 #대작만 히트, 작은 회사 못 버텨

“앞으로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는 게임은 흔치 않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작은 개발사는 버티기 어려운 환경이 되고 있다.”

김동건 넥슨 총괄 프로듀서 인터뷰

대한민국 게임 업계의 대표 개발자인 김동건(45ㆍ사진) 넥슨 데브캣스튜디오 총괄 프로듀서(이하 총괄 프로듀서)가 바라본 오늘날의 게임 개발환경이다. 김 총괄 프로듀서는 김정주(51) NXC 대표, 김택진(52) 엔씨소프트 대표의 뒤를 잇는 한국 게임 개발자의 ‘적장자’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산업디자인학과를 졸업한 뒤 2000년 넥슨에 합류했다. 이후 대작 게임인 ‘마비노기’를 만들었다. 2004년 6월 정식 서비스를 시작한 마비노기는 그해 최고의 게임으로 평가받으며 영화등급위원회가 뽑은 ‘올해의 좋은 영상물’로 선정됐다.

“비범한 재능과 승부욕을 지녔지만, 회사 밖이 아닌 안에서 자기 욕망을 실현하고 있는 자다. (중략) 이를테면 그는 도전적인 야생성을 조직 안에서 발휘하는 또 다른 방식의 승부사다.”

김동건 넥슨 데브캣스튜디오 총괄 프로듀서가 스튜디오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데브캣스튜디오에선 300여 명의 개발자들이 일하고 있다. [사진 넥슨]

김동건 넥슨 데브캣스튜디오 총괄 프로듀서가 스튜디오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데브캣스튜디오에선 300여 명의 개발자들이 일하고 있다. [사진 넥슨]

넥슨의 창업기를 다룬 책 『플레이』에 등장하는 김 총괄 프로듀서에 대한 평이다. 최근 열린 ‘2019년 넥슨개발자콘퍼런스(NDC)’에선 기조연설을 맡았다.
지난달 23일 경기도 넥슨 성남시 판교사옥에서 그는 중앙일보와 만나 게임은 물론 한국 IT산업 전체가 처한 위기와 기회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김동건 넥슨 데브캣스튜디오 총괄 프로듀서. 데브캣스튜디오에선 300여 명의 개발자들이 일하고 있다. [사진 넥슨]

김동건 넥슨 데브캣스튜디오 총괄 프로듀서. 데브캣스튜디오에선 300여 명의 개발자들이 일하고 있다. [사진 넥슨]

기존 IP 갈고 갈아서 새 게임 내는 시대

최근엔 국산 게임 중 히트작이 드물다.  
“게임 뿐 아니라 산업 전반이 성숙해져서 그렇다. 기존 IP(Intellectual Propertyㆍ지적재산권) 중 검증된 것 중심으로 소비가 이뤄지는 현상이 뚜렷하다. 영화 ‘어벤져스’도 결국 그런 것 아닌가. 사실 새로운 장르라고 완전히 새로 태어난 경우는 흔치 않다. 이미 게임을 바라보는 소비자의 눈높이는 높아져 있다. 기존 IP를 새로 갈고 갈아서 새 제품을 출시해야 한다. 그런 과정을 작은 회사가 버텨내기는 힘들 것이다. 게임 개발자 한 사람의 반짝이는 아이디어가 주목받긴 어려운 세상이다.”
요즘 개발자들은 어떤가.  
“과거와 확실한 차이가 있다. 우선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과거엔 ‘유저에게 짧은 시간 내에 강한 임팩트를 주는 게’ 게임 개발의 목표였다. 하지만 지금은 ‘유저가 최대한 시간을 오래 쓰도록 낮은 자극을 길게 쓰도록 하는 데’ 주력한다. 또 과거엔 ‘리스크 테이킹(Risk Takingㆍ위험 감수)’을 하려는 개발자들이 많았다. 하지만 최근은 안정적으로 게임을 개발하려는 이가 더 많다.”
현재 마비노기 모바일 버전을 만들고 있는데.  
“최대한 상업적으로 성공시키고 싶다. 그렇지만 보장이 없는 것 아닌가. 앞으로 상업적 성공은 더 힘들어 질 것이다. 모든 개발자의 고민이다.”

게임 규제 학부모 (표) 얻기 위한 거 아닌가

국내 게임 관련 규제가 해외 개발자보다 불리한 여건을 만드는 건가.  
“규제에 반대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억울한 면이 있다. 학부모님의 표를 얻기 위해 (정치권에서) 과도한 규제를 하는 것 아닌가. 셧다운(shut downㆍ오전 0시~오전6시, 청소년의 게임 접속을 차단)제도 과한 측면이 있다. 대한민국의 규제 수준은 전 세계적으로 유래가 없을 정도다. 만화든 영화든 다른 미디어 중 심의를 받은 다음에야만 무언가 만들어 낼 수 있는 건 없지 않나.”

그 역시 7살 딸을 둔 아빠지만, 게임 규제에 대해선 유독 할 말이 많은 듯 했다. 배우자도 게임 업계 출신이다.

게임 관련 아이디어는 어디에서 얻나.  
“20대 이전에 자기가 얻은 경험, 자극들이 아이디어의 원천 아닐까. ‘자기가 어려서 재밌게 한 것’, ‘어려서 갖고 싶었던 것’들 말이다. 난 어려서 집에 혼자 있는 경우가 많았다. 혼자 있으면 심심하니까 친구를 자주 불러 놀았다. 친구가 자기 집에 가지 않고 나와 오래 있도록 여러 놀이를 하면서 살짝살짝 져주기도 하고 시간을 끌었다. 그런 게 게임 개발자에 잘 맞는 부분인 것 같다.”

77년 출시된 애플 컴퓨터로 게임 만들어  

김동건 총괄 프로듀서가 애플2 컴퓨터로 만든 게임. [사진 넥슨]

김동건 총괄 프로듀서가 애플2 컴퓨터로 만든 게임. [사진 넥슨]

그는 최첨단의 선두에 서 있는 사람이지만 옛 것을 중시한다. 올해 NDC 기조연설의 주제도 ‘온고지신(溫故知新ㆍ옛것을 토대로 새로운 것을 앎)’이었다. 김 총괄 프로듀서는 요즘 퇴근 후엔 ‘애플2 컴퓨터(이하 애플2)’로 게임을 만들며 스트레스를 푼다고 했다. 애플2는 1977년 출시된 일체형 개인용 컴퓨터다. ‘아이폰’으로 유명한 애플의 초기 중흥을 이끌어 냈다. 인터뷰 중간 그는 스마트폰을 꺼내 자신이 취미로 만들고 있다는 게임을 보여줬다. 게임은 영국의 천재 개발자 리처드 개리엇이 만든 ‘울티마’와 비슷했다.

다음 세대 유행할 게임, 다음 세대가 만들어주길

화제를 바꿔보자. 요즘 게임이 아닌 블록체인(암호화폐) 등에 관심이 많다고 들었다.  
“김정주 NXC 대표가 관심이 많은 분야다. 개인적으론 블록체인을 활용한 게임에 관심이 많다.”
블록체인을 게임에 접목한다는 건가. 언제쯤 그런 일이 가능해질까.  
“결국 사회적으로 어떤 합의가 이뤄져야 가능한 일이다. 블록체인을 게임에 적용시키면 현재 게임사에 집중된 게임 관련 소유권을 유저에게 분산시키게 된다. 이 소유권을 어떻게 정의할까부터 문제다. 예를 들어, 게임 서버가 다운됐을 때 이 책임은 누가 나누어 질 것인가. 유저 간의 분쟁이 생겼을 때는 누가 책임질 것인가. 현재는 모두 게임사가 책임지는 분야다. 아직 연구 초기 단계다.”

김 총괄 프로듀서는 최근 불거진 NXC 지분 매각설에 대해선 말을 아꼈다. ‘왜 넥슨을 팔려는 건가’란 질문엔 “저도 잘 모르겠다”며 가볍게 넘겼다. 인터뷰 끝자락, 그에게 후배 개발자들에게 하고 싶은 당부를 물었다. 잠시 고민하던 그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 유행하는 게임들은 나처럼 40대를 넘어간 사람들이 만든 것들이다. 다음 세대에 유행할 게임은 다음 세대 밖에 못 만든다. 다음 세대를 위한 새로운 걸 만들어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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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교=이수기 기자 retali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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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슨은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와 함께 이달 11일부터 이틀간 일산 킨텍스 제2전시장 야외광장에서 ‘네코제X블리자드’를 개최한다. 이 행사는 블리자드와 넥슨의 게임팬들이 ‘오버워치’와 ‘메이플스토리’ 같은 두 회사의 IP를 활용해 만든 2차 창작물을 교류하는 콘텐트 축제로 누구나 무료로 방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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