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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난민’ 극우파들 뭉쳤다…‘우향우’로 기우는 유럽의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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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4호 10면

최익재의 글로벌 이슈 되짚기

지난달 25일 체코 프라하 바츨라프 광장에선 보기 드문 장면이 연출됐다. 유럽의회 선거를 앞두고 체코 극우파 정당인 ‘자유와 직접민주주의(SPD)’가 마련한 유세장에 유럽 극우파 거물들이 대거 모습을 드러냈다. 마린 르펜 프랑스 국민연합(RN) 대표, 헤이르트 빌더르스 네덜란드 자유당(PVV) 대표, 토미오 오카무라 SPD 총재 등이 한자리에서 모여 지지자들에게 한 표를 호소했다.

23~26일 유럽의회 선거 #프랑스·이탈리아 등 극우 정당들 #지난주 체코 합동유세로 세 과시 #극우파, 의석 20% 이상 차지 전망 #중도 정당은 위축돼 의석 급감할 듯 #이슬람 반대 등 한목소리 내지만 #경제 정책 등 엇갈려 분열 우려도

이 자리에 참석하진 않았지만 이탈리아 극우 정당 ‘동맹’을 이끄는 마테오 살비니 부총리 겸 내무장관도 영상 메시지를 보내 힘을 보탰다. 선거를 앞두고 국제적 연대를 강화해 세 불리기에 나선 것이다. 이런 공격적 유세에 유럽의회 주류인 중도파 유럽국민당(EPP) 그룹과 사회민주진보동맹(S&D) 그룹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유럽의회 선거는 오는 23~26일 진행된다. 외신들은 이번 선거에서 ‘반(反)난민’과 ‘반이슬람’을 외치는 극우파들이 돌풍을 일으킬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로이터통신 등은 “유럽의회가 최근 설문조사를 토대로 발표한 선거 전망에 따르면 극우파는 전체 751석 중 170석 이상 차지해 2014년 선거보다 35석 이상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헤이르트 빌더르스 네덜란드 자유당 대표와 마린 르펜 프랑스 국민연합 대표, 토미오 오카무라 체코 ‘자유와 직접민주주의’ 총재(왼쪽부터) 등 유럽 극우파 정당 지도자들이 지난달 25일 체코 프라하 에서 합동 유세를 열고 유럽의회 선거 연대를 다짐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헤이르트 빌더르스 네덜란드 자유당 대표와 마린 르펜 프랑스 국민연합 대표, 토미오 오카무라 체코 ‘자유와 직접민주주의’ 총재(왼쪽부터) 등 유럽 극우파 정당 지도자들이 지난달 25일 체코 프라하 에서 합동 유세를 열고 유럽의회 선거 연대를 다짐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총결집하는 유럽 극우파=체코 합동 유세는 르펜과 빌더르스가 체코 극우파를 지원하기 위한 자리였다. 이 같은 극우 정당들의 연대는 지난달 8일 본격화됐다. 살비니 부총리가 ‘독일을 위한 대안(AfD)’과 핀란드인당 대표 등을 이탈리아 밀라노로 초청한 것이다. 참석자들은 유럽의회 선거에 대비해 ‘유럽대중·국가연합(EAPN)’이란 새로운 우파 그룹을 결성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살비니 부총리는 “우리의 목표는 유럽의회 선거에서 최다 의원을 보유한 최대 그룹이 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정치 전문 매체인 폴리티코는 “2015년 유럽으로 난민이 대거 몰려들면서 극우 정당들이 급성장했고, 이젠 주류인 중도파를 위협하는 수준까지 도달했다”며 “유럽연합(EU) 내 극우파의 핵심은 프랑스의 RN, 독일의 AfD, 이탈리아의 동맹 등으로 이들의 연대가 이번 유럽의회 선거에서 큰 변수로 작용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반난민’으로 입지 굳힌 극우파=지난달 14일 실시된 핀란드 총선은 유럽의 극우 돌풍이 특정 지역의 산물이 아님을 여실히 보여줬다. 북유럽의 극우 민족주의 정파인 핀란드인당이 사민당에 이어 2위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결과를 극우 정당이 유럽 전역에서 정치적 기반을 공고히 하고 있는 단적인 사례로 꼽고 있다.

핀란드인당은 총 200석 중 39석을 얻어 사민당에 불과 한 석 뒤졌다. 20% 이상의 의석을 차지한 정당이 없어 핀란드인당은 연립정부 구성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갖게 됐다. AP통신은 “이번 핀란드 총선은 유럽의회 선거를 한 달 정도 남긴 시점에 열려 결과가 상당한 주목을 받았다”며 “유럽의회 선거도 극우파의 약진이 거의 확실시되고 있다”고 전망했다.

이미 유럽 곳곳에선 극우 정당들이 탄탄한 입지를 구축하고 있다. 지난해 6월 이탈리아 총선에선 극우정당인 동맹이 도약했다. 당시 동맹은 반체제 정당인 ‘오성운동’과 연립정부를 구성해 정권을 잡았다. 유럽 주요 국가에서 극우 정당이 집권 세력이 된 것은 처음이다.

그해 4월 열린 헝가리 총선에선 ‘유럽의 트럼프’라고 불리는 극우 정치인 빅토로 오르반 총리가 4선에 성공했고, 6월엔 슬로베니아 민주당이 반난민주의를 앞세워 총선에서 1위를 차지했다. 2017년 3월 네덜란드 총선에선 빌더르스가 이끄는 자유당이 제2당으로 성장했다. 두 달 뒤 프랑스 대선에선 르펜 후보가 사상 처음 결선투표에 진출하기도 했고 그해 9월 독일 총선에선 AfD가 제3당으로 처음 원내에 진출했다.

◆유럽 앞으로 어디로 가나=이번 유럽의회 선거에서 극우파와 포퓰리스트 정당들이 약진할 것이라는 데는 거의 이견이 없다. 반면 유럽의회의 주축인 중도파에 대해선 비관적 전망이 많다. 지난달 18일 유럽의회가 내놓은 선거 결과 예측에서도 중도파는 크게 위축될 것으로 예고됐다. 이번 선거에서 EPP 그룹과 S&D 그룹 정당들이 과반(376석 이상)을 차지하지 못할 것으로 봤다. 유럽의회의 주류인 두 그룹의 의석은 329석에 그칠 것으로 예상됐는데, 이는 2014년 선거 때보다 74석이나 줄어든 수치다.

이에 따라 현지 전문가들은 향후 유럽의 향방이 더욱 ‘우향우’로 기울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극우 정당들이 20% 이상의 의석을 확보할 경우 유럽 정치의 어젠다 세팅과 정책 방향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란 분석이다. 특히 온건 우파인 ‘유럽 보수와 개혁(ECR)’ 그룹 등과 연대할 경우 극우파 목소리는 더욱 강력해질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하지만 일각에선 유럽 극우파의 성장이 한계에 부딪히고 있으며, 향후 노선 투쟁 등으로 내부 분열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반난민과 반이슬람이란 슬로건 밑에선 똘똘 뭉치지만 경제 정책 등에서는 각자의 상황에 따라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기후변화 문제와 러시아 정책 등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실제로 2014년 유럽의회 선거 이후 극우 성향인 영국 독립당 등에 소속된 의원 47명이 다른 정파로 이동하기도 했다.

최익재 기자 ijcho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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