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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관계 싸늘하지만, 도쿄·오사카 K-POP은 뜨겁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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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4호 26면

전 아사히신문 기자의 일본 뚫어보기 

오사카 쓰루하시의 한 K-POP 카페가 한류 아이돌의 포스터들로 장식돼 있다. [사진 나리카와 아야]

오사카 쓰루하시의 한 K-POP 카페가 한류 아이돌의 포스터들로 장식돼 있다. [사진 나리카와 아야]

근래 최악이라는 한·일 관계에도 불구하고 제3차 한류 붐은 전혀 식지 않고 있다. 도쿄 신오쿠보(新大久保)나 오사카 쓰루하시(鶴橋)에 있는 코리아타운은 10~20대 젊은 여성들로 붐빈다. 2012년 당시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을 계기로 급속히 식어 버린 제2차 붐과는 달리 이번엔 정치적 영향이 그다지 커 보이지 않는다. 일본 신문이나 방송을 보면 실제 이상으로 한·일 관계 악화를 강조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스마트폰으로 정보를 얻고 신문이나 방송을 별로 안 보는 10~20대는 양국 관계가 좋은지 안 좋은지에 별로 관심이 없는 듯하다. 한류 붐 중심 세대는 갈수록 젊어지고 있고 3차 붐은 10~20대가 주도하고 있다.

코리아타운엔 10~20대 여성 북적 #한류팬 젊어져 정치 영향 안 받아 #한국식 고깃집은 평일에도 만석 #치즈닭갈비·치즈핫도그도 불티 #과거사 무관심에 안타까웠는데 #‘ 역사 배우기 투어’ 나와 기대감

일본 언론, 한·일 갈등 실제 이상 강조

지난 4월 초 신오쿠보에 갔을 때 한국식 고깃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평일에도 불구하고 만석이었다. 우삼겹이 유명한 집으로 한국에서 먹는 만큼 맛있었다. 손님들은 익숙한 듯 자연스럽게 고기를 야채로 싸서 먹고 있었다. 원래 일본에서는 고기를 야채로 싸 먹는 문화는 없었지만, 요즘은 한국 스타일로 싸 먹는 것이 주류가 되었다.

고깃집 옆에는 K-POP 공연을 매일 하는 곳이 있고 공연을 마친 그룹이 고깃집으로 식사하러 온다. 그렇게 유명한 그룹이 아닌데도 여성 팬들은 같이 사진을 찍고 대화를 나누며 즐거워했다.

상호에 ‘명동’이 들어간 치즈핫도그 가게. [사진 나리카와 아야]

상호에 ‘명동’이 들어간 치즈핫도그 가게. [사진 나리카와 아야]

신오쿠보에는 요즘 K-POP 관련 가게가 부쩍 늘었다. JYJ 멤버 재중의 사진이 걸려 있는 카페도 만석이었다. 재중이 프로듀스한 카페라고 한다. 재중은 요즘 주로 일본에서 활동하고 방송에도 자주 나온다. 이곳 음식점 주인들 말로는 요즘 주말엔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사람이 많다고 한다. “신오쿠보에서 성공하면 무서울 정도로 많은 사람이 몰린다”고 한다.

대표적인 것이 신오쿠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치즈닭갈비와 치즈핫도그다. 재작년부터 일본에서 한국으로 놀러 오는 친구들은 하나같이 치즈닭갈비를 찾았다. 닭갈비에 치즈가 들어 있는 것인데 나는 먹어 본 적도 없다. 왜 그런가 했더니 신오쿠보에서 유행이라고 한다. 아마도 매운 음식을 잘 못 먹는 일본사람들한테 치즈가 들어가면 덜 맵기도 하고 무엇보다 치즈가 길게 늘어나는 비주얼이 ‘인스타바에’한다는 이유 때문일 것이다. 인스타바에는 인스타그램에 사진이 잘 나온다는 뜻의 ‘미바에(見映え)’를 합성한 말이다.

치즈닭갈비에 이어 지난해부터는 치즈핫도그가 신오쿠보의 인기 주인공이 됐다. 핫도그에 치즈가 들어 있는 것인데 이것 또한 치즈가 길게 늘어나는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것이 유행이다. 치즈핫도그가 한국 음식인지는 의문이지만, 신오쿠보에서 유행이 시작하고 전국으로 퍼지고 있다.

3년 전 아사히신문 도쿄본사에 근무했을 당시 신오쿠보에 한국요리를 먹으러 자주 갔다. 그때는 그렇게 사람이 없었는데 최근 2년 사이에 갑자기 늘어났다고 한다. 제3차 한류 붐 시기와 겹친다. 붐의 중심은 K-POP이지만 K-POP을 계기로 한국 음식에 관심을 갖는 사람도 적지 않다. 특히 일본에서 공연한 유명 아이돌이 신오쿠보의 어느 식당에서 먹었다는 소문이 나면 그 식당은 1년 이상 장사가 잘된다고 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과 같은 데서 같은 것을 먹고 싶다는 팬 심리 덕분이다.

헤이트스피치 해소법 시행도 한몫

2016년에 ‘헤이트스피치(증오연설) 해소법’이 시행된 영향도 크다. 특정의 인종이나 민족에 대한 차별을 부추기는 헤이트스피치를 억제·해소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 법률이다. 신오쿠보에서 한때 사람이 없어졌던 이유 중 하나는 헤이트스피치 때문이었다. 주로 재일 코리안을 표적으로 “죽어” “일본에서 나가라” 등 심한 말을 외치면서 걸어 다니는 헤이트스피치는 신오쿠보나 쓰루하시 등에서 되풀이되었지만 해소법이 생긴 후에는 적어졌다.

4월 중순에는 쓰루하시에도 가 봤다. 쓰루하시는 역 앞에도 한국의 식재료나 의류, 침구 등을 파는 시장이 있고 걸어서 15분 정도 떨어진 곳에 코리아타운이 있다. 역에서 코리아타운까지 가는 길에도 아이돌 굿즈샵이 많이 생겼다. 트와이스 달력이나 방탄소년단(BTS) 포스터 등이 보였다. 신오쿠보와 마찬가지로 주말에는 젊은 여성들이 넘쳐 난다고 한다.

K-POP 카페에서 아이돌과 손님의 이름을 접시에 써 주는 서비스가 인기다. [사진 나리카와 아야]

K-POP 카페에서 아이돌과 손님의 이름을 접시에 써 주는 서비스가 인기다. [사진 나리카와 아야]

같이 간 친구는 제1차 붐 때 드라마를 보고 배우 이병헌 팬이 됐으며 지금은 K-POP 팬이다. 쓰루하시 K-POP 카페 안에 들어가 보니 사방의 벽에 아이돌 포스터가 붙어 있고 TV에서는 K-POP 프로그램이 흐르고 있었다. 친구는 케이크 세트를 주문했는데 종업원한테 자기가 좋아하는 아이돌 이름과 자기 이름을 말하면 접시에 한글로 써 줬다. 이걸 또 인스타에 올리면 사람들이 몰리겠구나 싶었다. 친구는 트와이스 사나 이름을 말했다. 같은 오사카 출신이라 응원하고 있다고 한다.

라인프렌즈와 BTS의 콜라보레이션 캐릭터 BT21. [사진 나리카와 아야]

라인프렌즈와 BTS의 콜라보레이션 캐릭터 BT21. [사진 나리카와 아야]

한국 연예계 관계자들은 일본처럼 아이돌 굿즈가 잘 팔리는 나라가 없다고 한다. 쓰루하시에서 가장 많이 눈에 들어온 건 ‘BT21’ 굿즈였다. 라인프렌즈와 BTS의 콜라보레이션 캐릭터로 BTS 인기와 함께 일본에서 히트를 치고 있다. 인형이나 문방구 등 한국에 살면서 이렇게 많은 BT21 상품이 있는 줄 몰랐다. 일본은 카카오톡보다 라인을 많이 쓰기 때문에 라인 이모티콘으로 BT21의 인기가 퍼진 것도 있다.

신오쿠보에서 퍼진 치즈핫도그 가게도 쓰루하시 주변에만 10개 이상 생겼다. 주말에는 줄 서서 먹는다고 한다. 가게 이름에는 ‘홍대’ ‘명동’ 등 일본 관광객들이 잘 찾는 지명이 들어가는 가게가 많았다. 서울에서도 유행이라고 착각할 만하다.

이러한 현상을 NHK 정보프로그램 ‘아사이치(あさイチ)’에서 “중고생들 사이에서 한국 문화가 인기”라고 보도했더니 그것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쏟아졌다고 한다. “우리 아이는 한국을 안 좋아한다” “전혀 들어본 적 없는 이야기다” 등의 의견이다. 어른 중에는 한국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나의 주변만 봐도 한국 문화를 좋아하는 중·고생들이 많다.

나(1982년생)의 친구의 아이들은 대부분 초등학생이다. 초등학생들 사이에도 K-POP 인기는 대단하다. 학교 급식 시간에 트와이스 노래가, 그것도 일본어 버전이 아닌 한국어 버전 노래가 흐르고 초등학생들이 그 한국어 가사를 외워서 같이 노래한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한국어를 배우고 싶다는 초등학생 딸과 함께 NHK 한글강좌를 듣기 시작했다는 친구도 있다. 중고생들 사이에서는 한글로 라인 메시지를 주고받는 것도 유행이라고 한다.

정치적인 한·일 관계와 상관없이 일본인들이 K-POP이나 한국 음식, 한글 등에 관심을 갖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양국 역사에 전혀 관심이 없는 젊은 사람이 대부분이라고 하면 그래도 되나 싶긴 하다.

쓰루하시 코리아타운을 찾은 젊은 여성들. [사진 나리카와 아야]

쓰루하시 코리아타운을 찾은 젊은 여성들. [사진 나리카와 아야]

원래 코리아타운에는 재일 코리안들이 많이 살고 있었고 지금과 같은 한류타운으로 변하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들어서다. 쓰루하시가 있는 오사카시 이쿠노쿠(生野區)에서 태어나서 자라고 지금도 살고 있는 오광현씨(61)에 따르면 지금 코리아타운이라고 불리는 지역은 원래 ‘조센이치바(朝鮮市場)’라고 불렸다고 한다. 오씨는 “특히 연말에는 설날 때 먹는 식자재나 떡을 사러 전국의 재일 코리안들이 찾아왔다”고 말했다.

초등교 급식시간에 트와이스 한국어 노래

2000년대 들어서 드라마 ‘겨울연가’ 욘사마(배용준) 붐을 계기로 한류타운처럼 변하기 시작했다. “활기차고 좋긴 하지만 젊은 사람들은 너무 역사를 몰라 깜짝 놀랄 때가 있다”고 한다. 최근 코리아타운을 걸어가는 젊은 여성이 “나 한국사람이 되고 싶다”고 하는 말을 들은 오씨는 “일본 사회의 차별과 싸워왔던 재일 코리안으로서는 솔직히 복잡한 심정”이라고 한다. 오씨는 그런 상황을 조금이라도 바꾸고 싶어서 역사를 배우는 투어를 기획했다. 오씨는 “일본 젊은 사람들이 재일 코리안의 역사도 알고 코리아타운을 즐기면 더더욱 기쁘겠다”고 말했다.

나리카와 아야 전 아사히신문 기자
나리카와 아야(成川彩) 2008~2017년 일본 아사히신문에서 주로 문화부 기자로 활동한 후, 동국대 영화영상학과 석사과정에 유학. 한국영화에 빠져서 한국에서 영화를 배우면서 프리랜서로 일본(아사히신문 GLOBE+ 등)과 한국(TV REPORT 등)의 여러 매체에 영화 관련 칼럼을 집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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