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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혈사제' 명품 콤비 쏭삭과 롱드는 어떻게 탄생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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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혈사제’에서 화제가 된 무에타이 포즈를 취하고 있는 배우 안창환과 음문석.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열혈사제’에서 화제가 된 무에타이 포즈를 취하고 있는 배우 안창환과 음문석.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지난달 종영한 SBS ‘열혈사제’(박재범 극본, 이명우 연출)는 여러모로 많은 것을 남긴 드라마다.
금토드라마에 첫 출사표를 던진 SBS로서는 시청률 22%를 기록한 효자요, 일일연속극이나 주말극을 제외하면 한 자릿수 시청률에 고군분투하던 지상파 전체에 새로운 희망을 안겨준 작품이다. 가톨릭 신부를 필두로 검찰ㆍ경찰ㆍ국정원까지 총출동해 악의 카르텔과 맞서 싸우는 장르물도 얼마든지 코믹하고 친근할 수 있음을 보여준 덕이다. 신부 역의 김남길은 물론 모든 배우가 고루 빛났다.
그중에서도 시청자들의 가장 큰 사랑을 받은 것은 태국 출신 중국집 배달원 ‘쏭삭’ 역을 맡은 배우 안창환(34)과 조폭 출신으로 구성된 대범무역의 넘버쓰리 격인 ‘장룡’을 연기한 음문석(37)이다.
장룡은 배달 가는 쏭삭과 마주칠 때마다 ‘간장공장공장장’ 발음 테스트를 하며 티격태격하는 앙숙 케미를 선보였다. 찰랑거리는 단발머리로 장룡의 영어식 이름인 ‘롱드(롱드래곤)’이란 별명을 얻기도 했다. 여기에 쏭삭이 태국 왕실 경호원 출신으로 무에타이 고수였다는 과거가 드러나면서 전복된 두 사람의 관계는 매번 큰 웃음을 선사했다.

“혼자보다 함께일 때 훨씬 재밌는 캐릭터”

‘열혈사제’에서 대결을 벌이는 쏭삭(안창환)과 장룡(음문석). [사진 SBS]

‘열혈사제’에서 대결을 벌이는 쏭삭(안창환)과 장룡(음문석). [사진 SBS]

1일 서울 서소문에서 만난 두 사람의 실제 모습 역시 극 중 캐릭터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음문석이 “연기에 몰입하다 보면 충동적으로 애드리브도 자주 하는 편”이라고 말하는 동안, 안창환이 “그 충동이 너무 자주 일어나서 문제”라고 끼어들자 “뭐여~” 하면서 음문석의 손이 날아오는 식이었다. “촬영이 없는 날에도 오요한 역의 고규필까지 셋이 만나서 얘기를 많이 나눴다”는 이들은 말 한 마디 한 마디에서 서로를 향한 끈끈한 애정이 묻어났다.

태국 출신 쏭삭 연기한 배우 안창환 #6개월간 선탠하며 어눌한 한국어 연습 #충청도 출신 롱드는 음문석 아이디어 #동대문서 가발부터 원색정장까지 구입

“그래서 더 좋았어요. 쏭삭은 혼자 있을 때 재밌는 캐릭터가 아니라 장룡이나 요한이와 함께 있는 상황이 재밌었거든요. 둘이 호흡을 맞추다 보면 재미는 2~3배가 되니 믿고 연기할 수 있었죠.”(안창환) 음문석 역시 “창환이는 리액션이 정말 좋다. 그걸 상대가 받아주지 않으면 못하는 것”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진짜로 때리는데 잘 받아줄 수밖에 없죠. 아들이 4살인데 아빠가 맞는 걸 보면 슬퍼할까 봐 제가 맞는 장면은 빼고 때리는 장면만 보여줬어요. 하하.”(안창환)

오랜 댄서 생활로 다져진 유연함을 활용해 액션신을 소화하고 있는 음문석. [사진 SBS]

오랜 댄서 생활로 다져진 유연함을 활용해 액션신을 소화하고 있는 음문석. [사진 SBS]

이들의 캐릭터는 어떻게 탄생하게 됐을까. ‘열혈사제’의 이명우 PD는 전작 ‘귓속말’(2017)에 음문석이 조폭 보스를 모시는 ‘부하 4’로 출연한 모습을 눈여겨보고 다시 찾았다. “전화를 받고 달려갔더니 대본이 딱 한장 놓여 있더라고요. 쏭삭을 때리면서 ‘간장공장공장장’을 시키는 장면이었는데 장르도, 내용도 전혀 몰랐죠. 그냥 건달이고, 단발머리고, 외국인을 괴롭히는 사람이라고만 하셨어요. 리딩을 했는데 약간 고민하는 눈치더라고요. 그래서 바로 동대문으로 달려가 단발머리 가발을 사서 쓴 모습을 사진 찍어서 감독님께 보냈어요. 그래도 불안해서 그 장면을 영상으로 찍어서 다시 보냈죠.”

"빨노파 정장, 처음 서울왔을 때 내 차림" 

이름 있는 배역을 처음 따낸 그는 장룡에게 나름의 전사를 쌓았다. “대본엔 표준어로 되어 있었는데 충청도 사투리를 쓰면 더 잘 어울릴 것 같아서 제안을 드렸죠. 빨강ㆍ노랑ㆍ파랑 등 원색 정장을 입고 나오는 것도 제 경험에서 나온 거예요. 지방에서 왔다고 무시당하지 않으려고 서울에 처음 왔을 때 제가 그렇게 입고 다녔거든요. (극 중 의상은)직접 동대문 가서 맞춘 거라 지금도 제 방에 걸려있어요. 시즌 2, 시즌 3 계속할지도 모르잖아요.” 그는 충남 온양에서 태어나 중3 때 상경, 량현량하ㆍgod 등 백댄서로 활동한 이력이 있다.

쏭삭 역을 맡은 안창환은 리얼한 연기로 ’진짜 태국인 아니냐“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사진 SBS]

쏭삭 역을 맡은 안창환은 리얼한 연기로 ’진짜 태국인 아니냐“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사진 SBS]

반면 안창환은 20회 내내 ROTC라고 쓰인 파란색 트레이닝복 한 벌만 입고 등장한다. 장룡의 단발머리처럼 쏭삭의 운동복도 정해져 있던 콘셉트였다. 태국 오지에서 온 순수한 청년 쏭삭 테카라타나푸라서트라는 이름 뒤에 ‘한국 사람이 연기해야 함’이라고 쓰여 있는 부분에 반해 오디션에 도전했다. “대사가 정해져 있는 게 아니라 상황과 대사를 직접 만들어 가야 하는 오디션이었어요. 고민하다가 한국어가 서툰 외국인 느낌을 살리기 위해 1차 오디션 때는 기계음으로 녹음된 ‘안녕하세요’ 같은 말투를 연습해 갔어요. 2차 때는 고향에 있는 엄마에게 영상 편지를 보내는 내용이었는데 다행히 반응이 좋았어요. ‘우리 엄마 한국말 모르는데 자막 나가요?’ 하니까 다들 빵 터졌죠.”

태국 대신 태국음식점 찾아가 억양 익혀

정작 태국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는 그는 태국 음식점에 찾아가 종업원을 인터뷰하며 영상을 찍어 연습에 활용했다. “외국어라기보다 서툰 한국어를 연습하는 거잖아요. 억양도 억양이지만 눈빛이 정말 선하더라고요. 도움이 많이 됐죠.” 까무잡잡한 피부를 위해 6개월 동안 주 3~4회씩 선탠도 강행했다. 덕분에 전작 ‘슬기로운 감빵생활’(2017)에서 민머리 똘마니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음에도 첫 촬영 당시 ‘진짜 태국인’이라는 감독의 농담에 모두 속아 넘어갔다. 삭발 투혼에 이은 선탠 투혼인 셈이다.

무에타이는 두 사람의 합작품이다. 체육관에서 두 달 동안 무에타이를 배운 안창환은 오랜 경력의 음문석에게 현장에서도 특훈을 받았다. “지인 소개로 무에타이를 처음 했을 때 3분 30초씩 3라운드를 하고 실신했어요. 어릴 때부터 하키도 하고, 춤도 춰서 체력엔 자신 있었는데 깜짝 놀랐죠. 그 후로 너무 재밌어서 13년 동안 쭉 하다 보니 무에타이의 매력을 알리고 싶은 마음도 있었어요. 장룡은 싸움을 잘 못 하는 설정이라 관장님한테 자세가 그게 뭐냐고 혼났지만, 쏭삭이라도 멋있게 나가면 좋잖아요. 덕분에 (금)새록이의 패러디 장면도 탄생하고. 뿌듯했죠.”(음문석)

춤꾼·가수·배우...반전있는 과거도 화제 

음문석은 ’단발머리 가발을 벗으면 사람들이 잘 못 알아본다“며 ’안타깝게도 내가 소장한 가발은 다른 헤어스타일이고 쓰고 나온 똑단발 가발은 SBS 분장실에 있다“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음문석은 ’단발머리 가발을 벗으면 사람들이 잘 못 알아본다“며 ’안타깝게도 내가 소장한 가발은 다른 헤어스타일이고 쓰고 나온 똑단발 가발은 SBS 분장실에 있다“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이들의 ‘반전 과거’도 주목받고 있다. 음문석은 2005년 발라드 가수 SIC으로 데뷔해 일렉트로닉 그룹 몬스터즈, 복고 프로젝트 그룹 베베몬에 이어 ‘댄싱9’(2013)까지 다양한 장르를 섭렵했다. 2017년엔 단편영화 ‘미행’의 감독이자 ‘아와어’ 배우로 칸 국제영화제에 초청되기도 했다. “제가 춤을 추다가 가수 더원 형을 만나서 노래를 하게 됐거든요. 제대하고 연기를 해보고 싶다 생각했을 때 고준 형을 만났어요. 그때 형 연습실이 반포동 709-7번지였는데 다들 모여 연기하다 보니 ‘7097 액터스’가 된 거예요. ‘열혈사제’에서 형님으로 모신 고준 형이 제 연기 스승님인 셈이죠.”

2013년 ‘댄싱9’에 출연한 음문석. 블루아이 캡틴을 맡아 팀을 이끌었다. [사진 Mnet]

2013년 ‘댄싱9’에 출연한 음문석. 블루아이 캡틴을 맡아 팀을 이끌었다. [사진 Mnet]

그는 “연기를 늦게 시작했기 때문에 제대로 배우고 싶어 편집ㆍ촬영ㆍ극본ㆍ연출까지 관심을 갖게 됐다”고 했다. 가수 데뷔 직후 ‘상상플러스’ ‘야심만만’ 등 예능 프로그램에도 출연해 주목받았지만 곧 잊히는 걸 겪으며 연기를 오래 하기 위해선 기초가 탄탄해야 한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연기는 이제 시작이라 뭘 해도 처음 맡는 역할이라 너무 신난다”는 그는 인터뷰 내내 눈빛이 초롱초롱 빛났다.

안창환은 ’태닝 끊어놓은 게 모자라서 마지막주엔 선탠을 못했다“며 ’6개월을 투자해서 까매졌는데 너무 급속도로 원상복귀되니 조금 아쉽다“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안창환은 ’태닝 끊어놓은 게 모자라서 마지막주엔 선탠을 못했다“며 ’6개월을 투자해서 까매졌는데 너무 급속도로 원상복귀되니 조금 아쉽다“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이와 달리 안창환은 수원대 연극영화학부 재학 시절 처음 무대를 경험한 이후 “나는 계속 연극만 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마음이 바뀐 건 2013년 배우 장희정과 결혼하고 아이가 태어나면서. 두 사람은 2011년 연극 ‘됴화만발’을 통해 만났다. “그때 박해수씨랑 와이프는 주인공이고, 저는 완전 단역이었어요. 그때도 ‘열혈사제’처럼 분위기가 너무 좋았어요. 2016년까지 계속 연극 무대에 섰는데 아무래도 가장의 책임감이 생기더라고요. 돈을 벌어야겠다기 보다는 방송이나 영화 등 다른 도전도 해봐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던 것 같아요.”

‘슬기로운 감빵생활’에서 똘마니 역할을 맡은 안창환. [사진 tvN]

‘슬기로운 감빵생활’에서 똘마니 역할을 맡은 안창환. [사진 tvN]

그는 “러시아에서 유학한 와이프가 직접 겪은 타지생활에 관한 조언이 쏭삭을 연기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과거에 쌓아온 것들이 어떤 형태로든 다시 돌아와서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과거를 돌이켜본다거나 지금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이예요. 연극 ‘관객모독’을 할 때 언어유희가 굉장히 많았는데 그것도 쏭삭의 말투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됐거든요. 끊어 읽기를 한다거나 낯설게 들리게 한다거나 하는.” 경험파 음문석과 사색파 안창환이 다음 작품을 끝내고 나면 또 얼마나 성장해 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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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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