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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미세먼지 배출량 조작, 여수산단뿐일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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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지현영 변호사·환경재단 미세먼지센터 국장

지현영 변호사·환경재단 미세먼지센터 국장

미세먼지 해결 임무를 맡은 ‘국가기후환경회의’가 4월 29일 출범했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위원장을 맡아 연말 전에 정부에 대책을 제안할 예정이라고 한다. 탁상공론이 되지 않으려면 현장부터 제대로 챙기라고 조언하고 싶다. 모든 일의 기본은 정확한 현장 파악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미세먼지 문제 해결의 기본은 배출원(源)이 어디에 있는지, 배출량이 얼마나 되는지를 파악하는 일이다. 그런데, 아뿔싸. 배출량이 조작됐다.

대기업의 배출량 조작은 충격적 #오염원 뿜는 현장부터 잘 챙겨야

환경부와 영산강 유역환경청은 여수국가산단에서 미세먼지 원인물질인 먼지와 황산화물 등의 배출량을 조작한 측정대행업체 6곳을 적발했다고 최근 발표했다. 배출량 조작 사업장에는 LG화학·한화케미칼 등 유수 대기업도 포함돼 충격을 줬다.

환경재단 미세먼지센터는 급히 진상조사단을 꾸려 지난달 26일 여수산업단지를 찾아갔다. 적발된 두 대기업 공장에 들어가 담당자를 만났다. 그런데 두 기업 관계자의 태도가 사뭇 달랐다. 한쪽은 문제를 인정하면서도 “측정대행업체의 문제가 더 크다”며 억울해했다. 다른 쪽은 이도 저도 아닌 말로 얼버무렸다. 모든 기업이 배출량을 조작하지는 않았을 것이라 믿고 싶다. 하지만 여수 산단 사건을 보면서 배출량 조작이 결코 한두 기업의 문제가 아니고, 현재의 시스템을 개선하지 않으면 유사한 일이 언제든지 일어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현행 시스템은 이렇다. 대기환경법상 일정 규모 이상 굴뚝의 경우 오염물질 배출 농도를 상시 감시할 수 있는 굴뚝 자동측정기기(TMS) 부착이 의무화돼 있다. 그러나 이를 부착하기 적합하지 않은 작은 굴뚝이나 배출구 없이 대기오염물질을 직접 배출하는 시설을 운영하는 경우 오염물질을 자가측정하거나 측정대행업체에 측정을 맡겨 그 결과를 기록하도록 하고 있다.

측정 결과를 토대로 관할 지자체는 부과금을 물리고 배출기준을 정한다. 대부분의 사업장은 신뢰도를 이유로 자가측정보다는 측정대행업체에 맡긴다. 이때 기업은 측정대행업체를 직접 선정하고 계약을 맺는다. 기업은 규모에 따라 수십억 원이나 되는 대행계약을 측정대행업체와 체결하고, 측정대행업체는 공장에 상주해 1년에 수만 번까지 측정 작업을 한다. 측정대행업체 선정권을 쥐고 있는 기업은 ‘갑’이고 측정대행업체는 ‘을’일 수밖에 없는 구조다. 현재의 시스템에서 측정대행은 사실상 기업이 직접 시험을 보고 ‘가제트 팔’로 채점을 매기는 셈이다.

왜 기업은 측정대행업체와 직접계약을 할까. 차라리 기업이 환경공단 같은 제3의 공공기관에 측정 대행료를 내고, 그 공공기관이 측정대행업체와 계약을 맺은 뒤 기업에 파견을 보내 측정하는 방식을 채택하면 어떨까. 여수 산단에 입주한 두 기업 측에 물어보니 중간에 공공기관이 개입하는 방식이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오염물질 배출 기업과 측정대행업체의 유착을 막을 해법조차 마련하지 않는 정부도 여수 산단 사건의 책임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문제는 더 있다. 측정대행업체가 너무 적고 배출량을 조작해도 처벌규정이 너무 약하다. 굴뚝 자동측정기기의 경우 조작은 어렵다지만, 연한을 넘긴 것이 많은데 실태 파악이 안 되고 있다. 저감장치 관리에도 구멍이 많다. 예컨대 현대제철 당진 공장은 저감장치가 망가진 상태에서 5년간 공장을 돌린 것으로 드러났다.

미세먼지를 해결하겠다며 광촉매 페인트와 사물인터넷(IoT)·인공강우 등 갖가지 아이디어가 거론된다. 첨단기술도 좋지만, 현장부터 제대로 챙겨야 한다. 미세먼지가 어디서 얼마나 배출되는지, 배출량 저감장치는 제대로 작동하는지부터 파악하자. 이것이 국내 배출원을 잡기 위한 기본 중의 기본이다.

지현영 변호사·환경재단 미세먼지센터 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