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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뒤 한국은 '배틀그라운드'···말 그대로 약육강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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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게임 배틀 그라운드. [사진 게임 배틀 그라운드]

온라인 게임 배틀 그라운드. [사진 게임 배틀 그라운드]

[2050년의 경고] 국회미래연구원·중앙일보 공동기획

➈인구·사회 

 ‘30년 전 대한민국 젊은이들 사이에 ‘배틀그라운드’(Battlegrounds)라는 온라인 게임이 유명했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2050년 세상은 그 게임이 현실로 변해버렸습니다. 강하고 이기적인 자만 살아남는 '약육강식'의 세계 말입니다. 배틀 그라운드는 시작과 함께 주인공이 비행기에서 낙하산 하나만 들고 고립된 섬에 뛰어내리고,  살아남기 위해 무기를 구해 다른 사람을 죽여야 한다면서요. 지금이 딱 그렇습니다. 협력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철저히 혼자 힘으로 생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은 인간에게 늑대다(Homo homini lupus)'라고 일갈한 토마스 홉스(1588~1679년)의 말이 떠오릅니다.’

국회미래연구원의 중장기 미래예측 보고서를 바탕으로 만들어본 ‘2050년 미래에서 보내온 가상 편지’다. 보고서에 따르면 30년 뒤 대한민국의 ‘인구ㆍ사회’분야 시나리오 중 가장 가능성이 큰 것은 ‘배틀그라운드’ 사회다. 미래 한국 사회는 공동체보다는 개인을 중시하고, 협력보다는 고립을 택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채정 국회미래연구원 연구위원은 “부와 권력은 극소수에 집중되고 대다수는 야만의 경쟁 속에서 자신의 생존만을 최우선하는 시대가 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온라인 게임 배틀 그라운드. [사진 게임 배틀 그라운드]

온라인 게임 배틀 그라운드. [사진 게임 배틀 그라운드]

 2050년 출산율 0.8명 이하로 떨어져

 이 같은 예측의 근거는 최근 한국사회가 맞고 있는 심각한 저출산과 개인주의, 이로 인한 전통적 가족구조 붕괴 현상에 있다. 연구팀은 “2050년에는 출산율이 0.8명 이하로 떨어질 수 있다”며 “1인 가구가 많아지고 결혼 대신 비혼(非婚) 동거가 보편화할 전망”이라고 예측했다. 실제로 1970년 4.53명이었던 출산율은 2018년 0.98명으로 추락했고 감소 추세는 계속되고 있다.

1인 가구의 증가는 개인주의의 심화와 함께 삶의 방식과 가족 구조에도 큰 변화를 가져온다. 사람들은 직접 대면하는 것을 피곤하고 비효율적인 일로 여길 가능성이 크다. 홀로그램ㆍ가상현실 등에 익숙해 직접 만남을 꺼리게 된다. 이미 지금도 카카오톡이나 페이스북 같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는 일이 일상처럼 여겨진다.

미래엔 자식에 대한 개념도 달라질 것

가족의 가장 큰 변화는 ‘자식’에 대한 개념이 달라진다는 점이다. 김중백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전통 사회에서 자식은 노동력을 뜻해 그 수가 많았다”며 “그러나 현대에선 이미 자식에 들어가는 비용이 커 수가 많을수록 부담으로 작용한다, 미래엔 이런 경향이 더욱 심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1월 재단법인 법인 LAB2050이 저출산고령화위원회에서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20대 여성의 72.4%가 결혼에 부정적이었다. 또 72.9%는 결혼해서 아이가 없어도 된다고 답변했다. (2018년 10월 성인 남녀 1047명 조사)

연구 책임자인 최항섭 국민대 사회학과 교수는 “청년들은 혼자 살기도 힘든데 엄마ㆍ아빠로서 의무를 다해야 하는 것에 회의를 느낀다”며 “‘헬조선’에서 아이까지 키우는 것은 자신의 행복에 짐이 된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2050년엔 이런 생각이 사회 전반에 확산돼 나만 생각하는 일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내일을 위해 오늘을 절제하기보다는 현재의 행복 추구를 가장 중시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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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경제위기는 ‘배틀그라운드 사회’의 상황을 악화시킬 또 다른 핵심 동인이다. 이명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청년실업, 비정규직 문제 등 우리가 대비하지 못한 곳에서 위험이 시작될 수 있다”며 “또다시 IMF 외환위기 같은 경제위기가 온다면 한국사회는 야만의 시대로 돌아갈 수 있다”고 경고했다.  현재로선 ‘IMF’까지는 아니어도 대량실업은 충분히 예상된다. “2033년까지 현재 직업의 47%가 사라진다”(영국 옥스퍼드대)는 말처럼 기술발전이 인간의 일자리를 증발시키기 때문이다. 2017년 한국고용정보원도 2030년 국내 398개 직업이 요구하는 역량 중 84.7%는 AI가 인간보다 낫거나 같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일론머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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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산은 비생산인구 수 증가와 같은 말 

테슬라모터스·스페이스X의 CEO 일론 머스크는 2017년 2월 두바이에서 열린 '월드 거버먼트 서밋(World Government Summit)'에서 “미래 사회에선 인공지능(AI)이 상용화돼 인간의 20%만 의미 있는 직업을 갖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저출산으로 인한 총부양비의 증가는 경제에 심각한 압박 요인이 된다. 생산가능인구(15~64세) 100명당 비생산인구 수가 올해 37.6명에서 2030년 53명, 2050년 95명으로 급격히 증가한다. 즉, 2050년에는 100명의 근로자가 일하지 않는 95명의 사람도 먹여 살려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출산율 회복 강조한 정부 정책 변화돼야 

 2050년 한국 사회가 원하는 가장 이상적인 모습은 어떤 것일까. 국회미래연구원은 ‘다중(Multitude) 사회’의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이는 파편화된 개인의 집합인 대중을 넘어, 각자의 자유를 맘껏 누리면서도 타인과 연대해 주도적으로 사회 변화를 이끌어 나가는 사회를 말한다.

국회미래연구원은 이런 사회를 만들기 위한 정책 대안으로, ▶협력과 협업 능력을 키울 수 있도록 교육제도를 개편하고 ▶3~4인 가구에 맞춰진 가족정책을 1인 가구에게도 불리하지 않도록 수정하며 ▶앞으로 보편화할 비혼 동거를 결혼과 같은 수준의 정책적 지원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고 제시했다. 특히 출산율 회복에 방점을 찍었던 정부 정책의 근본적 변화도 촉구했다.

이채정 국회미래연구원 연구위원은  “13년간 143조원의 예산을 출산장려에 투입했지만 효과가 없었다”며 “정부가 인구구조 변화에 직접 개입하려 하지 말고, 변화로 발생할 사회문제를 해결하는데 예산을 집중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석만 기자 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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