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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탈원전·文케어 짊어진 죄···적자 공기업은 죄가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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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성적표로 치면 ‘낙제점’에 가까웠다. 기획재정부가 지난달 30일 발표한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시’ 얘기다. 이날 공개한 공공기관 339곳의 당기순이익은 2017년 7조2000억원에서 지난해 1조1000억원으로 급감했다. 2017년까지 4년 연속 줄던 부채는 지난해 7조7000억원 불어났다. 성적표에선 정부 공공 서비스 정책의 ‘3대 실패’가 도드라졌다.

먼저 탈(脫)원전 정책의 ‘직격탄’을 맞은 에너지 공기업의 실적 악화다. 2년 전만 해도 7조1483억원의 순이익을 냈던 한국전력은 지난해 1조1745억원 순손실을 기록하며 6년 만에 적자 전환했다. 2013년부터 매년 해온 배당조차 못 하는 신세로 전락했다. 매년 수천억 원씩 수익을 내던 한국수력원자력과 한전 산하 발전 5개사도 줄줄이 적자를 기록했다. 한전이 실적 악화 원인으로 공시한 것처럼 “에너지 믹스 전환(탈원전)과 재생에너지 확충 정책에 따른 비용 증가” 때문이다.

실적으로 치면 가장 악화한 곳은 국민건강보험공단이다. 2017년 3685억원 흑자에서 지난해 3조8954억원 적자로 돌아섰다. 이곳은 지난해 7월부터 건강보험 보장성을 강화하는 ‘문재인 케어’를 시행하면서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더 우울한 건 문재인 케어를 지속하는 한 경영상태가 별로 나아질 가망이 없다는 점이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2027년 건보 재정 적자가 7조5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일자리 ‘포퓰리즘’의 부작용도 두드러졌다. 공공기관 수익성이 크게 악화했는데도 전체 임직원 수는 전년 대비 3만6000명(10.5%) 늘었다. 늘어난 임직원 중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정책에 따라 늘어난 숫자만 2만4000명(66%)이다. 직원 수가 늘면서 자연스럽게 복리후생비 지출도 776억원(9.5%) 증가했다. 1인당 평균 연봉은 6798만원으로 ‘2018 국세통계연보’에 나온 2017년 기준 직장인 평균연봉(3519만원)의 두 배 수준이다.

공기업은 정부 정책의 총대를 메는 ‘2중대’가 아니다. 공공기관 특성상 민간 기업처럼 효율성ㆍ수익성을 최우선하지 않을 수 있지만, 정부 정책 실패에 따른 충격을 그대로 흡수하는 ‘실험장’으로 활용해선 안 된다는 얘기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는 “공공기관 경영 실패로 쌓인 적자는 결국 공공요금을 올리거나 국민 혈세로 메워야 한다”며 “기본 수익을 보장해야 공기업답게 지속적ㆍ안정적인 공공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공기업은 죄가 없다는 얘기로 들렸다.

김기환 경제정책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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