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 이태호의 잘 먹고 잘살기(35)
일전 언론에 쇼킹한 사실이 보도됐다. 미국에서 유통되는 맥주에 제초제 농약 글리포세이트(glyphosate)가 검출됐다는 소동이었다. 이들 맥주는 한국에도 수입되는 것이라 큰 충격을 주었다. 해프닝으로 끝나버린 별거 아닌 소동의 전말을 소개한다.
이 농약은 다름 아닌 유전자변형식품, GMO(Genetically Modified Organism)를 비난할 때 단골 메뉴로 등장하는 바로 그 제초제다. 우선 논란이 끊이질 않는 GMO에 관해 설명하고 문제가 된 글리포세이트와의 연관성에 대해 알아본다.
GMO란 유전적으로 변형(조작)된 생물이라는 뜻이다. 기존작물에 환경 적응성이 떨어지거나 재배가 곤란할 때 그 성질이나 형질을 인위적으로 바꾼 것이다. 이를 포괄적으로 ‘육종(育種)’이라는 단어로 표현한다.
육종법보다 간편한 ‘유전자재조합’ GMO
과거 수 천 년 동안 인류는 생존을 위해 동식물을 교배해 우량종을 개발했다. 교배 때문에 수정된 유전자를 무작위로 조합하는 과정에서 드물게 나타나는 우수 종을 선별하는 작업이었다. 시간과 비용이 말도 아니게 소요되고 많은 선각자의 노력이 필요했다.
현재도 그런 작업은 계속되고 있다. 사과, 배, 고추, 무, 배추, 심지어 벼까지도. 육종하지 않는 작물은 거의 없다. 이들 모두 자연적으로(진화) 혹은 인위적으로 교배해 DNA를 섞어 만든 옛 버전의 GMO인 셈이다.
그런데 이런 어려운 작업을 비교적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는 수단이 생겼다. 소위 ‘유전자재조합’이라는 기법이다. 교배로 암수 간의 염색체를 섞어 우량종을 개발하던 종래의 육종법 대신 인공적으로 특정 유전자를 열등한 생명체에 삽입해 형질을 바꾸는 기술이다. 과거 육종법과 달리 목적하는 유전자(형질)를 선별적으로 도입해 짧은 시간에 우수 종의 선별이 가능해졌다.
이런 작업은 동물, 식물, 미생물에 구분 없이 행해진다. 동물에는 유전자편집(크리스퍼) 때문에 질병 치료가 가능하고, 미생물에는 인간의 유전자를 집어넣어 인간 인슐린과 성장호르몬의 생산도 가능해졌다. 미생물에는 이런 작업이 수없이 이루어져 인류의 복지에 기여하고 있다. 인간에 대한 적용은 기술적인 것 보다 윤리적인 문제가 더 크다. 중국의 ‘편집 아기(에이즈 내성)’가 그랬다.
식물에의 적용은 30여 년 전 시작됐다. 작물의 재배에 장애 요인이 되는 해충·잡초·추위·질병에 대한 해결방안이다. 기존 작물에 특정 유전자를 넣어 이런 문제를 해결한 것이 이른바 유전자 조작식물이라는 거다. 한국에 수입되는 콩과 옥수수의 대부분이 이런 작물이다.
대표적인 실례가 제초제에 내성을 나타내는 대두 콩이다. 콩에다 특정 미생물의 유전자를 도입해 기존 제초제인 글리포세이트에 죽지 않도록 만든 것이다. 다른 작물에도 당연히 이 제초제는 쓴다. 단 잡초가 우거진 논밭에 제초제를 뿌리고 일정 시간이 지나 잔류 농약이 소멸한 후에 파종한다.
이런 GMO에 대한 위험성이 끊임없이 제기된다. 일부 전문가들은 ‘인류의 멸망이 앞당겨질 것이다’, ‘(조각 난 인체를 꿰맞춰 태어난 소설 속 괴물인간 프랑켄슈타인을 빗대서) 프랑켄 푸드의 등장이다’는 식의 공포 분위기를 조성해 소비자를 겁박한다. 이에 대해 관련 분야 전문가들은 “논리성이 부족한 추측과 괴담에 근거한 것이 대부분이다. GMO에 대한 오해는 상당 부분 마녀사냥식 거부감에서 비롯된다”며 반박한다.
노벨상 수상자 100여 명이 GMO 반대 운동을 중단해야 한다고 요청해도 그들은 귀를 막는다. 자기가 믿고 싶은 것만 믿고 보고 싶은 것만 보는 편집성 때문인 듯하다. 최근에는 미국 학술원이 최고전문가단을 구성해 지난 20여년간 발표된 논문 900여 편을 꼼꼼히 분석, GMO가 안전하며 먹어도 문제없다는 보고서를 냈을 정도다.
노벨상 수상자들 “GMO 반대 운동 중단하라”
GMO가 위험하지 않다는 것을 따져보자. GMO란 개량하고자 하는 대상 식물에 유용한 특정 유전자, 즉 DNA 한두 조각을 선별적으로 넣는 것이다. 기존의 육종법처럼 어떤 유전자가 무더기로 어떻게 들어갔는지 모르는 경우와는 사정이 다르다. DNA 조각이 유전자의 특정 부위에 삽입되면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문제를 철저한 검사를 통해 안전성을 확보한다.
그들이 걱정하는 변형된 유전자 DNA를 우리가 먹는다고 문제는 발생하지 않는다. 우리가 일상 먹는 동식물의 음식에는 당연히 DNA가 들어있다. 매일 이종의 DNA를 끊임없이 먹고 있는데도 탈이 나지 않는 이유는 그 유전자와 우리의 유전자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 배 속으로 들어가면 분해돼 한 종류의 영양성분으로 흡수될 뿐이다.
혹시나 그것이 세포 속으로 들어가 인간의 유전자에 삽입되고 인간 본연의 특성을 바꿀 것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그동안 수없이 먹어 와도 문제가 생기지 않았는데 무엇이 걱정되는지 모르겠다. 그런 상상은 무당이나 하는 소리다. 소고기(DNA)를 계속 먹어도 소를 닮지 않는 것도 그 증거다.
혹자는 식물에다 다른 미생물 유전자를 넣은 게 문제라고 주장할 수 있다. 모든 유전자는 4종류의 핵산염기(A,G,C,T)로 구성돼 있다. 식물을 미생물화해 괴물이 될 것이라는 걱정인가? 유전자는 단백질을 코딩(coding, 암호화)한다. 도입된 유전자로부터 만들어지는 단백질이 그 개체에 거부반응을 보이지 않으면 아무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인간의 인슐린 유전자가 대장균에 거부반응을 일으키지 않기 때문에 대량 생산이 가능한 것도 그런 이치다.
인간끼리도 유전자는 매우 다르다. 유전자가 다르면 거부반응이 나타난다. 장기이식에 면역 적합성을 따지는 것은 유전자의 닮음을 따지는 것이다. 어떤 유전자가 얼마나 도입되는지도 모르는 기존의 개량법인 교배에는 아무런 거부감이 없던 사람들이 한두 유전자를 넣은 GMO 작물은 위험할 수 있다고 꺼림칙하게 여긴다. 이종(異種)이라서 그런가? 같은 식물끼리도 DNA를 넣고 받은 GMO는 있다.
서두에 언급한 제초제 글리코사이드는 GMO와 깊은 관계가 있다. 중앙일보의 기사는 이랬다. ‘4캔 만원 수입 맥주에 농약? SNS 공포, 식약처가 나섰다’라는 타이틀로 “미국 소비자단체인 PIRG(Public Interest Research Group)가 미국에서 유통되는 맥주 15종과 와인 5종에 글리포세이트 함량을 검사한 결과 맥주 1종을 제외한 모든 제품에서 검출됐다. 그 양은 칭다오 49.7ppb, 버드와이저 27ppb, 코로나 25.1ppb, 하이네켄 20.9ppb, 기네스 20.3ppb, 스텔라 18.7ppb였다”가 그 내용이다. 우리도 수입해 마시고 있는 맥주라 큰 충격이었다.
신문에는 “글리포세이트가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가 지정한 발암 물질(2A 그룹)로 분류돼 있다”라고도 했다. 다만 “2A 그룹에는 쇠고기·돼지고기 등 붉은 고기와 뜨거운 음료, 교대 근무 등과 같은 등급”이라며 일단은 별거 아닌 인상을 주는 내용도 실었다. 이런 소동에 우리 식약처도 화급하게 “국내 유통 중인 수입 맥주 30개 제품을 포함해 총 41개 제품을 검사한 결과 모두 글리포세이트가 불검출되었다”고 확인해 줬다.
그런데 미국의 분석법과는 다른 방법으로 측정했다는 발표다. “미국이 행한 항원항체반응 검사법(ELISA)은 간섭물질의 영향 등으로 실제보다 높은 결과치를 보일 수 있어 이 방법은 국제적으로 잔류농약검사 등 공인된 분석법으로 활용되지 않는다. 대신 국내 전문가 자문회의가 ELISA 법보다 더 정확한 분석법이라 확인한 LC-MS/MS 법으로 국제기준에 따라 측정했다. EU·일본 등에서 불검출 수준으로 관리하는 10ppb(0.01㎎/㎏)를 적용해서 나온 결과”라고 소개했다.
좀 어려워 풀어쓰자면 ‘10ppb를 적용했다’는 것은 아마도 10ppb 정도의 미량이라면 이 방법으로는 검출이 되지 않을 수도 있고 또 이정도의 양은 불검출로 해석할 수 있다는 뜻인 듯하다.
그럴 수도 있겠지만 미국에서 유통되는 맥주가 미국에서는 검출되고 수입한 한국에서는 검출되지 않았다는 것은 소비자에게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그래도 별문제는 없다. 어찌 됐건 인체에 유해한 수준이 아님은 자명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1ppb란’ 맥주 1리터에 1μg, 즉 100만분의 1g이 들어있다는 뜻이다. 미국 소비자단체가 우려할 양이 아닌데도 난리를 친 셈이 됐다. 유해성분에는 기준(허용)치가 있다. 양이 적으면 인체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뜻이다. 현재는 분석기술이 지나치게 발전한 것이 문제일 수 있다.
그럼 제초제 글리포세이트란 뭘까? GMO 논란을 부추기는 물질이다. 몬샌토가 개발한 GMO 콩은 글리포세이트란 제초제(상품명 라운드 업)에만 죽지 않는다. 몬샌토는 GMO 콩 씨앗을 팔 때 이 농약을 끼워 판다. 다른 제초제를 쓰면 콩도 같이 죽기 때문이다. 콩을 키우면서 잡초가 나면 이 농약을 뿌려 제거하라고 말이다.
글리포세이트는 1974년 몬샌토가 개발한 제초제이나 GMO가 나오기 훨씬 전부터 사용됐다. 2000년에는 그 독점권이 풀렸다. 비교적 독성이 낮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농약이다. 그런데 GMO 반대론자들은 악덕 기업(?) 몬샌토만이 발암물질인 글리포세이트를 GMO와 함께 독점·제조·유통하는 걸로 선전한다.
지금은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농약이라 우리가 먹는 농산물의 양의 차이는 있겠지만 대부분 미량 검출될 가능성이 높다. GMO도 아닌 맥주에서조차 나오는 걸 보면.
글리포세이트, 암 유발 가능성 낮아
그런데 이 농약이 발암물질 2군 A(발암물질 가능성 높음)로 지정돼 있으나 그렇게 해롭지는 않은 듯하다. 우리가 늘 먹는 튀김 음식, 붉은색 살코기와 동급이다. 실제 잔류농약 분야에서 세계적 권위인 JMPR(Joint FAO/WHO Meeting on Pesticide Residues)은 글리포세이트가 사람에게 암을 유발할 위해성이 낮다고 밝히고 있다.
JMPR은 유엔 식량농업기구와 세계보건기구(WHO)가 공동으로 운영하는 국제 전문가 단체로,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의 농약잔류허용기준을 설정하고 적합성 여부를 판단하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도 반대 측에서는 이 제초제 농약 글리포세이트를 GMO와 연관 지어 항상 어마 무시한 물질로 묘사한다.
CODEX가 정하는 글리포세이트의 일일 섭취 허용량은 체중 1kg당 1mg이다. 60kg 기준 60mg에 해당한다. 이를 채우려면 가장 많이 들어있다는 칭다오맥주를 하루 1000L, 버드와이저는 약 2000L를 마셔야만 겨우 허용치에 도달한다는 계산이다. 이번에 국산 맥주는 검사하지 않는다고 했다. 식약처는 국산 맥주는 보리·밀·홉 등 맥주 원료를 수입할 때 통관 단계에서 기준치를 넘지 않도록 관리하고 있어 안전성에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참고로 글리포세이트에 대한 1일 국제허용치를 나열하고 긴 글 끝낸다. 우리 식약처는 1.0ppm, EU 0.3ppm, 미국 2.0ppm, 일본 0.75ppm,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 1.0ppm이다. 1ppm은 물 1리터에 1mg(1/1000그램, g)이 녹아있는 양이라는 뜻이다. 문제의 맥주에 사용된 ppb 단위는 ppm의 1000분의 1이다. 가장 많이 들어있다는 칭다오의 49.7ppb는 허용치의 약 20분의 1에 불과하다. 괜한 소동이었나.
이태호 부산대 명예교수 theore_creator@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