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폼폼푸린 열광…젊은 한·일은 통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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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일왕시대 한·일 관계 <하>

#최근 경기도 양평·가평 일대에선 일본 료칸(旅館·여관)풍으로 꾸며진 펜션이 인기다. 일본 전통 목조건물을 그대로 재현한 외관에, 내부엔 일본식 다다미방과 히노키탕이 설치돼 있다. 찾는 이들은 주로 20∼30대다. 최근 일본식 펜션에 다녀왔다는 직장인 김소연(27)씨는 “일본 여행을 네 차례 다녀왔고, 평소에도 일본 음식이나 문화를 거부감 없이 즐긴다”고 말했다.

음식·패션 등 함께 소비하며 즐겨 #“역사문제 사라지지 않겠지만 #우리 미래는 지금과 달라질 것”

지난해 12월 22일 오전 한국산 캐릭터 ‘카카오프렌즈’의 도쿄 오모테산도점 개점을 기다리는 현지 소비자 2000여 명이 건물을 에워싸고 줄을 서 있다. [뉴스1]

지난해 12월 22일 오전 한국산 캐릭터 ‘카카오프렌즈’의 도쿄 오모테산도점 개점을 기다리는 현지 소비자 2000여 명이 건물을 에워싸고 줄을 서 있다. [뉴스1]

#지난해 12월 22일 오전 도쿄 오모테산도(表参道)에선 2000여 명의 사람이 건물 두 동을 에워쌌다. 이날 문을 연 캐릭터숍 ‘어피치 오모테산도’와 ‘스튜디오 카카오프렌즈’에 입장하려는 인파였다. 한국 카카오톡의 캐릭터숍인 이곳을 개장 한 달 사이 35만 명이 찾았다. 요즘도 주말에는 줄을 서 입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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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강제징용 배상 판결, 양국 초계기·레이더 논란 등 쉴 틈 없이 터지는 이슈로 한·일 관계는 악화일로다. 하지만 고개를 조금 돌리면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1990년대 후반 시작된 양국 문화 교류로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서로를 접한 한·일의 10~20대는 같은 노래를 듣고, 같은 옷을 입고, 같은 캐릭터를 소비하며 생활한다.

도쿄 한복판에서 ‘어피치’ 열풍이 불었다면 서울에선 일본 산리오사의 캐릭터인 ‘구데타마’ ‘폼폼푸린’이 대박을 쳤다. 지난 17일 한 외식업체가 출시한 산리오 캐릭터 열쇠고리는 출시 하루 만에 전국에서 수만 개 물량이 완판됐고, 이를 사려는 이들이 중고 사이트로 몰렸다.

한국에서 인기가 많은 일본 캐릭터 폼폼푸린. [사진 산리오코리아

한국에서 인기가 많은 일본 캐릭터 폼폼푸린. [사진 산리오코리아

양국 젊은이들의 생각을 알기 위해 지난 24일 찾은 서울 마포구의 ‘한·일 요리교실’. 문화교류 NGO ‘아시아희망캠프기구’의 프로그램으로 한국을 찾은 일본 고등학생들도 자리했다. 나가노(長野)현에서 온 이토 이부키(伊藤依吹·17)는 초등학교 때부터 TV로 한국 음악방송을 봤다.

그는 “친구들 사이에서 ‘트와이스’와 ‘BTS(방탄소년단)’는 국적을 떠나 가장 인기 있는 가수 중 하나”라며 “떡볶이는 보편적인 간식이 됐고, 최근엔 ‘치즈 핫도그 인증샷’을 인스타에 올리는 게 유행”이라고 말했다. 20년 전 ‘욘사마’ 열풍으로 비롯된 1차 한류 붐, ‘동방신기’ ‘카라’ 등 K팝 그룹이 일으킨 2차 한류 붐에 이어 요즘 일본의 ‘3차 한류 붐’은 푸드·뷰티·패션 등 다양한 영역으로 번지며 일본 젊은 세대를 사로잡고 있다.

생활 속에서 한국을 받아들인 청소년들에게 양국의 역사 갈등은 상대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데 큰 변수가 되지 않는다. 나카무라 가쓰키(中村華月·18)는 “어른들과 달리 우리 또래는 한국을 방문하고 한국인과 사귀는 데 있어 역사 문제의 영향을 별로 받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일 젊은이들 직접 만나는 채널 더 늘려야”

지난 24일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열린 요리교실에 참가한 구마야마 아야나 , 나카무라 가쓰키 , 이토 이부키(왼쪽부터 시계 방향) . [우상조 기자]

지난 24일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열린 요리교실에 참가한 구마야마 아야나 , 나카무라 가쓰키 , 이토 이부키(왼쪽부터 시계 방향) . [우상조 기자]

문화 공유뿐 아니라 상호 방문도 양국 젊은이들의 이해도를 높였다. 국제기구 ‘한·중·일 3국 협력사무국(TCS)’과 3국 교육부가 주관하는 ‘캠퍼스 아시아 프로그램’으로 일본 도쿄대에서 1년간 공부했던 서울대 국제대학원 이화영(30)씨는 “한국과 일본에는 한·일 간의 문제에 대해 다양한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며 “하나의 프레임에 가두지 말고 여러 측면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TCS 프로그램을 경험했던 하야시 쇼(林志洋·29)도 “미디어와 인터넷에선 극단적인 사람들만 보이기 때문에 평범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도쿄에서 개인사업을 하는 그는 과거사 갈등을 풀기 위해선 “사과와 반성을 구분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그는 “일본인들은 ‘도대체 언제까지 사과해야 하냐’고 말하는데 사과란 받은 쪽에서 수용해야 끝난다. 한국 측의 포용도 필요하다”며 “이와는 별개로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계속 반성해 나가야 한다”고 피력했다.

일본에서의 인기에 힘입어 한국관광공사 홍보대사로 임명된 카카오프렌즈의 캐릭터 &#39;어피치&#39;. [사진 한국관광공사]

일본에서의 인기에 힘입어 한국관광공사 홍보대사로 임명된 카카오프렌즈의 캐릭터 &#39;어피치&#39;. [사진 한국관광공사]

이들은 지금의 젊은 세대, 청년 세대가 장년이 되면 한·일 관계도 달라질 것으로 기대했다.

일본 금융회사에서 일하는 야마이 순야(山井舜也·24)는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서울 광화문에 있는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을 찾는다고 했다. 초등학교 때 TCS의 ‘한중일어린이동화교류 프로그램’으로 처음 한국 땅을 밟은 후 한국 친구들을 만나면서 양국의 과거사가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그는 “역사 문제는 사라지지 않겠지만 우리 세대가 한·일 관계를 주도하게 될 미래에는 지금처럼 ‘사과하라-못한다’의 무한 반복과는 다른 해법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희망했다.

한·중·일 대학생 연합동아리 ‘OVAL KOREA’에서 활동하는 국민대 정치외교학과 3학년 최인규(22)씨는 “단지 여행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양국 젊은이들이 직접 만나 양국 현안과 장기적인 비전을 논의하는 채널이 늘어났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그래야 “청년 세대가 기성세대가 됐을 때 비전을 현실화할 기회가 열릴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원덕 국민대 일본학과 교수는 “관계 악화는 상대를 정확히 알지 못하는 오해나 편견, 무지에서 기인하는 면이 크다”며 “교환 유학 제도 등 젊은이들이 상호 체험을 통해 객관적인 인식을 갖도록 지원하는 기회를 늘리는 게 한·일 관계 개선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영희·이유정·홍지유·김지아 기자 misqui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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