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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광안대교 사고, 책임지는 공무원이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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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이은지 내셔널팀 기자

이은지 내셔널팀 기자

부산 광안대교의 통행 제한이 29일 오후 3시부터 전면 해제됐다. 광안대교는 지난 2월 28일 러시아 선박 씨그랜드호(5998t)와 충돌 사고가 난 후 차량 진입부 2개 차로 중 1개 차로의 통행이 제한돼 왔다. 부산시설공단이 정밀안전진단과 동시에 복구 작업에 착수한 지 60일 만이다.

부산시는 씨그랜드호 선사에 수리비 28억원을 청구할 예정이다. 사고가 발생한 용호부두를 관리·감독하는 부산해양수산청(이하 해수청)은 입·출항 신고 시스템 개선 등 제도적 보완책 몇 가지를 내놨다. 하지만 해수청의 이런 조치에 대해 사고 책임을 제대로 지지 않고 어물쩍 넘어가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높다.

사고의 일차적인 책임은 러시아 선장과 선사에 있다. 하지만 관리·감독을 소홀히 한 기관도 책임을 피할 수 없다. 해수청은 물론 해수청으로부터 부두 입·출항 업무를 위임받은 부산항만공사의 업무 태만이 이번 사고에 상당한 책임이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예를 들어 1000t 이상의 대형 선박은 예인선을 의무적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지난해 용호부두에 입·출항한 1000t 이상 선박 143척 가운데 예인선을 사용한 선박은 11척에 불과하다.

사고를 낸 씨그랜드호도 예인선을 사용하지 않았다. 부산항만공사와 해수청은 이 사실조차 모르고 있어 해경이 알려줬을 정도다. 해경 관계자는 “그동안 항만공사와 해수청이 입·출항 관리를 전혀 하지 않았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해수청은 사후약방문격으로 오는 6월부터 용호부두의 화물 기능을 영구히 폐쇄한다고 한다. 부산에는 북항, 남항, 감천항 등 대형 항만이 많다. 국내 입출항 선박의 26%가 부산항을 오간다. 특히 러시아 선박이 주로 이용하는 감천항은 유독 사고가 잦다. 외국 선박은 국제해사기구(IMO)의 국제법을 따르기 때문에 국내법으로 관리·감독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렇다고 그냥 보기만 해서는 안된다. 외국 선사의 업무를 대신 맡아 선원을 관리하는 대리점을 상대로 사고 예방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씨그랜드호가 광안대교와 충돌하기 20분 전 용호부두에 정박해 있는 요트 3척을 들이받았다. 병원에서 만난 피해 요트 선장은 “좁은 용호부두에 대형 선박이 자주 드나들어 충돌할 뻔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며“수차례 해수청·항만공사를 찾아가서 사고가 날 우려가 크니 대형 선박의 입·출항을 제한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요지부동이었다”고 했다. 최근 몇 년 사이 부경대 해양실습선 2척이 상주하고, 관광 활성화의 명목으로 요트 정박이 늘었지만, 관련 제도와 입·출항 관리 시스템은 바뀌지 않았다는 것이다. 불어난 몸집을 견디다 못해 옷이 터져버린 꼴이다.

항만 관리 감독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제2의 광안대교 사고는 또 발생할 수 있다. 업무를 소홀히 하면 문책당해야 하지만 이번 사고와 관련 해수청이건 항만공사건 책임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역시 철밥통이다.

이은지 내셔널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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